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 3.6 리미티드

[ 오토카 한국판 2011년 8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훌륭한 연비, 착한 값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갖춘 미니밴

국내 미니밴 시장은 과거에 비하면 많이 규모가 축소되었다. 11인승 미만의 차를 승용차로 분류해 높은 자동차세가 매겨지도록 세제가 개편된 이후의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전 메리트를 느낄 수 없으니 매력이 떨어진다. 미국 시장에서 7인승으로 팔리는 기아 그랜드 카니발이 국내 주력 모델은 11인승으로 나오는 이유다. 한동안 수입차 시장에서 제법 자리를 잡았던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가 빛을 잃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니밴의 역사를 쓴 그랜드 보이저는 오랜 역사만큼 든든한 저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 새 단장과 함께 다시 국내 시장을 두드리는 그랜드 보이저는 특히 미니밴의 원조로서 다양한 강점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고, 이전 모델에서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겉모습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뒤 범퍼,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디자인을 바꾸었지만 눈썰미가 좋지 않다면 차이를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사실 단순한 면과 각을 강조한 차체 디자인은 공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변화가 차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뚜렷하게 나타나는 존재감과 크라이슬러의 새로운 아이덴티티에 비해 고급스러운 느낌은 그리 크지 않다.

실내 역시 기본구성은 이전과 같지만, 겉모습의 변화에 비하면 훨씬 효과가 뛰어나다. 다른 부분을 제쳐놓고라도, 플라스틱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에도 대시보드는 더 이상 값싼 느낌은 주지 않는다. 크롬 링을 두른 두 개의 원형 계기 사이에 새로 더해진 차량 정보 디스플레이는 세련미는 적지만 여러 모로 쓸 만하다. 전체적으로 높이 배치된 센터 페시아의 각종 장비들은 맨 아래에 있는 2열 및 3열 좌석용 DVD 플레이어를 빼면 알아보기 쉽고 조작하기도 편리하다. 계기판 바로 옆에 놓인 기어 레버도 쓰기 좋다. 도어에 있는 스위치류에서는 결별한 메르세데스-벤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크라이슬러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1열 좌석 사이의 센터 콘솔은 2단으로 슬라이딩 되어 2열 좌석에 앉은 사람도 컵 홀더를 쓸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2열 좌석 뒤쪽을 위한 공기조절장치와 접이식 스크린, 무드 조명이 있는 다기능 콘솔, 파워 윈도우가 포함된 전동 슬라이딩 도어와 리어 게이트 등 미니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편의장비가 기본으로 달려 나온다.

그랜드 보이저의 가장 큰 특징인 스토앤고 시스템은 여전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2열 좌석과 3열 좌석 모두 비교적 간단한 조작으로 바닥에 집어넣을 수 있다. 좌석을 접지 않아도 934L나 되는 짐 공간은 좌석을 모두 접고 나면 3천912L로 커진다. 화물용 밴이 부럽지 않다. 다만 접이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좌석 자체는 썩 편안하지 않다. 2열 좌석은 크기가 작고, 3열 좌석은 허벅지가 답답해진다. 그리고 천장의 모니터를 내리고 2, 3열 좌석 헤드레스트를 세워 놓으면 뒤를 전혀 볼 수 없다.

새로 개발한 V6 3.6L 펜타스타 엔진은 그랜드 보이저에 처음 올라가는 것이다. 진동이 적은 엔진은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다. 휘발유 엔진 치고는 토크가 약하지 않지만, 차의 덩치가 있기 때문에 2천500rpm 이상 올라가야 힘이 붙기 시작하는 엔진은 차체를 부드럽게 끌고 나간다. 스티어링 휠과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페달은 모두 묵직하게 움직이고, 주행감각도 요철에서 뒤쪽이 살짝 튀기는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듯 승용차 느낌이다. 실내 바닥이 높은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변속기는 비교적 낮은 rpm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언덕에서는 아랫단으로 자주 변속되지만 변속 충격이 크지 않아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주행 때 엔진 회전계의 바늘은 시종일관 2천rpm을 밑돈다. 배기량과 차의 무게에 비해 비교적 좋은 연비를 이끌어내는 이유다. 공인연비는 7.9km/L이지만 263.5km를 시승하며 얻은 평균연비는 8.5km/L였다.

휘발유 엔진 특유의 부드러운 주행감각과 다른 차에서 누릴 수 없는 좌석배치의 자유 같은 혜택들은 분명하다. 그러나 새 그랜드 보이저의 가장 큰 약점은 값이다. 수입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이전에 비해 경쟁력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평점: 6.0/10 – 미니밴의 원조답게 뛰어난 꾸밈새와 풍부한 장비로 소비자들을 유혹하지만 높은 값이 발목을 잡는다

  • 장점: 풍부한 편의장비와 수납공간, 부담 없는 주행감각, 매력적인 스토앤고 시스템
  • 단점: 떨어지는 가격경쟁력, 디젤 엔진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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