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콜벳 쿠페 (C6)

[ 오토카 한국판 2012년 6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쉐보레 콜벳을 글로벌 모델로 키우려는 GM의 노력이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탁월한 성능을 표현하는 과정이 거칠기는 해도, 이 값에 대배기량 엔진의 강력함과 고성능 뒷바퀴 굴림 쿠페의 재미를 모두 누릴 수 있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자동차 평론가 류청희의 결론이다

스포츠카 세계에서 포르쉐 911은 역사와 전통을 이어나가며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각별한 차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워낙 출중한 911의 그늘에 가려 곧잘 과소평가되는 차가 있다. 쉐보레 콜벳 이야기다. 일찌감치 글로벌 모델을 지향한 911과 달리, 콜벳은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를 담고 있는 ‘아메리칸 스포츠카’였다. GM은 2005년에 데뷔한 6세대, 이른바 C6 모델을 데뷔시키면서 콜벳을 글로벌 모델로 키우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이제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실 2005년에 처음 데뷔한 C6 콜벳은 이제 모델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모델이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 늦어도 내후년 상반기면 7세대 콜벳이 나올 예정이다. 어찌 보면 국내에 들어온 콜벳은 ‘막판 떨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대에 상관없이 콜벳은 나름의 가치가 충분하다.

시대를 앞서간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스타일의 매력부터 좀처럼 빛이 바래지 않는다. 이번에 국내에 들어온 C6 모델도 1984년에 나온 C4 콜벳 이후로 거의 비슷한 비례와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혀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롱 노즈 숏 데크의 전형적인 비례과 굵직하고 대륙적인 선과 면은 세대를 아우르는 미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낮고 넓은 차체가 유난히 길어 보이는 이유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콜벳이 훨씬 큰 차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최근 데뷔한 신형 911(991)과 비교하면 두 차는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길이˟너비˟높이가 4,435˟1,845˟1,245mm로 911보다 약 55mm 짧고 37mm 넓으면서 50mm 낮다. 2,685mm인 휠베이스는 235mm 짧다. 

겉모습과 달리 실내가 어느 정도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내 구성과 내장재는 데뷔 당시와 별 차이가 없다. 시승차에 쓰인 300만 원짜리 프리미엄 블랙 가죽/스웨이드 패키지는 실내의 품질감을 높이는 데에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300만 원이라는 값어치를 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다른 쉐보레 브랜드 차들과 비교해도 낡은 느낌은 피할 수 없다. 공간적으로는 두 명이 타기에 적당히 알맞은 정도이고, 천장이 낮지만 그만큼 좌석도 낮아 머리 위 공간도 충분하다. 페달과 스티어링 휠의 위치는 미국인 체형에 맞춰져 있는지 편안한 자세를 잡기가 그리 쉽지 않다. 탈착식 루프는 머리 위가 탁 트인 시원함을 즐기며 달릴 수 있도록 해 준다. 떼어낸 천장을 트렁크에 얌전하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탈착 작업을 혼자서 하기에는 무게가 부담스럽다.

국내 판매 모델이 중간급이어서, 기본형 모델보다 주행 특성과 관련된 몇몇 기능들이 더 많다. 우선 스티어링 휠에는 6단 자동변속기를 위한 변속 패들이 마련되어 있다. 작동방식은 포르쉐 팁트로닉/DSG와 비슷해서, 엄지손가락이 닿는 부분을 밀면 윗단으로, 다른 손가락으로 뒤쪽을 당기면 아랫단으로 변속이 이루어진다. 수동기능은 D 모드에서도 작동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동 모드로 전환되는 D 모드와 달리 S 모드를 선택하면 기어 단수가 고정된다. 기어 레버로는 수동변속이 불가능하다. 기어 레버 뒤쪽의 다이얼은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댐퍼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서스펜션 모드를 투어(Tour)와 스포트(Sport) 2단계로 선택할 수 있다. 실제 주행에서는 투어 모드에서 승차감이 약간 부드러워지는 것 외에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장비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다. 2005년에 C6 모델이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비교적 앞선 장비였지만, 타 메이커들이 해상도 높은 컬러 HUD를 손보이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는 시각적으로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든다. 하지만 기능상으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드라이빙에 가장 중요한 정보들인 엔진회전과 속도가 기본적으로 표시되는 것은 물론, 계기판 왼쪽의 버튼을 이용해 표시되는 정보를 바꾸고 높이도 조절할 수 있다. 

HUD 조절 버튼 반대쪽, 그러니까 계기판 오른쪽에는 트립 컴퓨터 표시를 바꿀 수 있는 버튼들이 나열되어 있다. 도트 매트릭스 방식을 쓰고는 있지만 표시되는 정보들은 여전히 유용하다. 오디오는 보스(Bose) 9 스피커 시스템이고, 스마트키가 기본이어서 버튼으로 시동을 걸고 끌 수 있다. 시동 버튼의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액세서리 전원 모드를 확실하게 선택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좋다. 그 밖에도 듀얼 존 에어콘과 2단 조절이 가능한 시트 열선, 런 플랫 타이어를 쓰는 차의 필수장비인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 등 기본적인 편의장비는 잘 갖춰져 있다.

이번에 국내에 들어온 콜벳에 얹힌 LS3이라는 이름의 V8 6.2L 엔진은 C6 콜벳이 처음 데뷔했을 때 쓰인 LS2 V8 6.0L 엔진의 개량형으로,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GM 스몰 블록 V8 엔진의 최신 업그레이드 버전 중 하나다. 스몰 블록 V8 엔진은 작고 가볍고 신뢰성이 높으면서, 무엇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출력을 얻을 수 있어 오랫동안 애용되어 왔다. 요즘은 흔치 않은 OHV 방식의 밸브계통 때문에 저평가되곤 하지만, 특별한 단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숙성되어 있다. 실린더도 보어에 비해 스트로크가 짧아 반응이 빠른 편이다. 430마력의 최고출력, 58.7kg·m의 최대토크는 단위 배기량당 수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콜벳은 그런 수치를 들이대며 차의 성능을 논할 성격의 차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공차중량은 PDK가 달린 911 카레라 S와 같아서, 중량대 마력비는 최고출력이 430마력인 콜벳이 400마력인 911 카레라 S를 뛰어넘는다.

전통적으로 플라스틱 보디를 쓰고 있는 콜벳이지만, 견고한 섀시와 서스펜션 덕분에 중저속에서 코너링이 제법 민첩하다. 차체 뒤쪽에 비해 앞쪽의 움직임이 가벼워 액셀러레이터를 잘 다루면 꽤 쏠쏠한 운전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앞 18인치, 뒤 19인치의 광폭 런 플랫 타이어는 가속 때에는 비교적 만족스럽지만, 제동 때에는 브레이크의 강력한 제동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 6단 자동변속기는 비교적 변속속도가 빠른데도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꽤 매끄럽게 변속이 이루어진다. 공인연비는 7.1km/L. 고속도로 연비는 9.2km/L로 배기량을 생각하면 비교적 우수한 편이고, 실제 주행연비와 공인연비의 차이가 거의 없다.

직진 가속의 통쾌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반적인 조건 즉 모든 주행안정장치가 작동하는 상태라면, 서 있는 콜벳의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았을 때 출발하는 느낌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가속감을 비교하자면, 여느 고성능 차들이 몸을 등받이에 내던지는 느낌인데 비해, 콜벳은 거대한 쇳덩어리가 상체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전신에 느껴지는 압박감을 이겨내며 제때 패들에 걸린 손가락을 놀려 변속하는 일도 익숙해지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쉽지 않다. 한마디로, 느껴지는 힘의 무게가 다르다. 최대토크는 4,500rpm에서 나오지만, 정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거의 모든 회전영역에 걸쳐 토크가 풍부하게 펼쳐진다. 

사실 처음 타이어가 정지마찰력을 극복하고 구르기 시작할 때에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가 만들어내는 밋밋함은 그처럼 높은 토크가 갑자기 바퀴로 전달될 때 차체가 몸서리치는 것을 기계적인 방법만으로는 다스리기가 힘들어서다. 텅 비고 안전한 공간에서 단 한 번만 주행안정장치를 해제하고 급출발을 해 보면 섣불리 껐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변속기가 자동 모드에 있지 않다면 윗단으로 변속하는 것만도 바쁘다. 시속 100km까지 가속되는 시간도 짧고, 잠시만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어도 어느새 헤드업 디스플레이의 속도계는 아무렇지 않게 초고속 영역에 해당하는 수치를 표시하고 있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초고속 영역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커브에 진입하는 순간부터다. 시속 100km 이하에서는 끈끈하게 노면을 잡고 듬직하게 몸을 추스르던 차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볍게 느껴진다. 스티어링 휠로 느껴지는 차의 움직임이 희미해지면서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 자연스레 두 손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갑자기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도록 액셀러레이터 조작도 신중해진다. 아무리 길이 잘 뚫려 있어도 섣불리 최고속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충분히 걸맞은 세팅을 했다 하더라도, 이런 고속주행 특성을 가진 차를 갖고 만든 경주차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는 레이서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생각해 보면 이 값에 이런 성능을 내는 차는 무척이나 드물다. 슈퍼카의 성능을 저렴한 값으로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넘치는 성능을 발휘하는 과정이 거칠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기에는 너무 아까운 차다. 2005년 C6 콜벳 출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C5 콜벳을 몰아봤지만, 색깔의 차이를 느꼈을 뿐 여전히 훌륭한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C6을 대체할 C7 콜벳이 새로 나온다 하더라도 C6 콜벳은 그와 같은 느낌을 줄 것이 틀림없다. 

궁금한 것은 한국지엠의 콜벳의 가치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다. 콜벳이 과거 G2X나 스테이츠맨, 베리타스처럼 단발성 모델로 그친다면 원래 한국지엠이 의도했던 이미지 리딩 모델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비록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도 접하기 힘든 가치 있는 모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의지가 있다면 보여주어야 옳다. 그래야 콜벳의 가치는 불론 쉐보레의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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