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2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랜드로버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첫차인 랜드로버 시리즈 1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농장에서 농기계를 대신해 쓸 차로 만들어졌다. 승용차 생산에 필요한 밑천을 대기 위한 수단이었던 랜드로버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성공적인 모델의 반열에 올랐다.

자동차 생산 역사는 길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던 영국의 로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쟁 중 군수품 생산에 쓰였던 대규모 공장 두 곳과 수많은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이들에게 꾸준히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는 새 차의 개발과 생산이 필요했지만, 전후 경제난으로 앞날이 불투명했다. 전쟁 전에 고급차를 주로 만들었던 로버는 수요가 많은 대중적인 차를 만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버의 경영담당 이사였던 스펜서 윌크스(Spencer Wilks)와 설계 책임자였던 그의 동생 모리스 윌크스(Maurice Wilks)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트랙터와 픽업트럭의 기능을 모두 갖춘 차 

마침 모리스는 웨일스 지방에 있었던 자신의 농장에서 쓰기 위해 군에서 불하된 윌리스 지프를 한 대 갖고 있었다. 지프의 견고함은 농장에서 여러 작업을 하는 데 매우 유용했지만, 차가 낡아 대체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모리스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군에서 민간에게 양도된 윌리스 지프는 많았지만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고, 부품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자동차 설계자로서 외국 차를 사야 한다는 것이 껄끄럽기도 했던 그는 직접 지프를 대체할 차를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트랙터와 픽업트럭의 기능을 모두 지니고 있는 차라면 영국 곳곳의 농장에서도 충분히 환영받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고급 SUV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랜드로버지만, 처음에는 농기계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47년 초부터 시작된 개발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어, 여름에 시제차가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진 시제차는 운전석과 스티어링 휠이 실내 중앙에 놓인 형태였다. 섀시는 윌리스 지프의 것을 썼지만, 엔진과 변속기, 뒤 차축은 승용차인 P3의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개발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생산되고 있던 로버의 생산설비와 부품을 최대한 활용했고, 차체 패널도 간단한 판금작업만으로 가공할 수 있도록 했다. 전후 철강재 공급부족 때문에 차체는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이후 랜드로버의 전통으로 굳어졌다.

구동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동력을 앞바퀴로도 전달하기 위한 트랜스퍼 케이스와 구동력이 전달되는 앞차축, 그리고 동력인출장치뿐이었다. 페인트 역시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군 불하품인 군용 녹색 페인트를 썼다. 테스트 끝에 운전석과 스티어링이 불편하다는 결론을 내린 개발진은 일반 차와 마찬가지로 운전석을 한쪽으로 옮겼다. 차체 앞쪽에 있던 동력인출장치도 뒤쪽으로 옮겨졌다. 프레임과 서스펜션도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독자적으로 새롭게 설계하면서 완전한 영국 차가 되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작업 끝에 1948년 4월에 랜드로버 첫차가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일반인에게 판매된 첫 모델은 접이식 소프트톱을 갖춘 픽업트럭이었다. 모터쇼에서 예상 밖으로 큰 호응을 얻고 주문이 밀려들자 로버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승용차 수요가 늘어날 때까지 2~3년 정도 임시방편으로 생산하려던 계획을 접고, 로버는 랜드로버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로버는 첫 1년 동안 판매목표를 5,000대로 잡았지만, 실제 팔린 랜드로버는 8,000대에 이르렀다. 1951년까지 랜드로버는 로버가 만드는 다른 승용차 판매대수의 두 배 정도가 팔렸다. 뛰어난 실용성과 범용성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던 덕분이었다. 경찰, 군대, 건설업자, 탐험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랜드로버를 샀다.

소비자 요구로 차체 점점 커져

1.6ℓ 51마력 휘발유 엔진과 함께 처음부터 풀 타임 4륜구동 시스템을 갖췄던 랜드로버 시리즈 1은 1950년이 되어서야 실내에서 기어를 이용해 굴림방식을 전환하는 파트타임 4륜구동 구조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모든 바퀴에 구동력이 전달되고 휠 허브 잠금장치를 풀고 해제하는 것으로 동력전달을 선택했다.

1952년에는 저속 기어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4륜구동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술이 추가되었다. 간단한 도그 클러치 구조를 통해 작동되는 이 장치는 이후에 나오는 모든 시리즈 랜드로버에 쓰이게 된다. 또한, 더 강력한 2.0ℓ 휘발유 엔진이 올라가면서 변속기에도 손질이 이루어졌다. 그즈음에 7인승 스테이션 왜건 모델도 추가되었다.

실용성이 매우 높았지만, 초기 랜드로버는 휠베이스가 짧아 적잖은 소비자들은 적재공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로버는 1954년 휠베이스를 80인치(2,032mm)에서 86인치(2,184mm)로 키웠고, 이후 휠베이스가 107인치(2,718mm)인 4도어 롱 휠베이스 모델도 추가되었다.

그러나 점차 디젤 엔진을 원하는 수요가 늘면서 새 엔진을 얹기 위해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했고, 1956년에 엔진 룸에 디젤 엔진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한 휠베이스 88인치와 109인치(2,769mm) 모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디젤 엔진은 이듬해인 1957년이 되어서야 추가되었다. 

1958년에 엔진과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손질한 시리즈 2 랜드로버가 등장할 때까지 10년 동안 랜드로버 시리즈 1은 21만 대 이상 생산되었고, 그 중 70% 정도가 영국 이외의 지역으로 팔려나가 전 세계에 랜드로버의 이름을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생산이 중단된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차체 덕분에, 랜드로버 시리즈 1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아직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