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매거진 2013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란치아 풀비아는 소형차의 앞바퀴 굴림 시대를 연 모델이다. 풀비아 세단을 바탕으로 만든 풀비아 쿠페는 세련된 스타일과 높은 수준의 기술이 돋보이는 소형 쿠페였다. 특히 탁월한 핸들링과 성능에 힘입어 랠리 무대에서 크게 활약했고, 란치아에게 여러 차례 우승컵을 안겨 준 주역이었다.

란치아가 1963년에 내놓은 풀비아 베를리나(세단)는 란치아 소형차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모델이었다. ‘소형차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안토니오 페시아(Antonio Fessia)의 설계로 이전 모델인 아피아(Appia)까지 썼던 뒷바퀴 굴림 방식에서 벗어나 앞바퀴 굴림 방식을 도입했고, 앞서 출시된 중형차 플라비아의 기술적 특징을 이어받음으로서 소형차로서는 화려한 기술이 담겨 있었다. 네 바퀴 모두에 쓰인 디스크 브레이크는 1960년대의 소형 양산차로서는 아주 드문 것이었다. 피아트에 흡수되기 전까지 이어진 란치아의 기술 우선주의가 살아있는 모델임을 입증하듯, 높은 수준의 기술과 더불어 완성도도 독일차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란치아 내부에서 디자인한 멋진 차체 

그리고 1965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세단의 휠베이스를 150mm 줄이고 세단보다 큰 엔진을 얹은 풀비아 쿠페가 선보였다. 평범하고 각진 모양의 세단과 달리, 쿠페는 날렵하고 스포티한 모습으로 바뀌어 좋은 평을 얻었다. 전혀 다른 디자인에서도 알 수 있듯, 쿠페는 세단과 공유하는 차체 패널이 하나도 없었다.

란치아는 대개 이태리 카로체리아에게 디자인을 맡겼지만, 풀비아 쿠페는 순수하게 란치아 내부에서 작업을 했다. 알도 카스타니오(Aldo Castagno)의 설계와 피에로 카스타니에로(Piero Castagnero)의 디자인이 어우러진 차체도 멋있었지만 세단에 바탕을 둔 2+2 좌석 구성의 실내는 쿠페로서는 공간이 넉넉했고 트렁크도 여유 있었다. 얇은 필러는 안팎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탁월한 시야에 일조했다. 카로체리아 자가토(Zatago)가 풀비아 쿠페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디자인의 패스트백 모델인 풀비아 스포트도 나왔지만, 많은 이들이 오리지널 모델의 디자인을 더 좋게 평가한다.

풀비아 쿠페에는 란치아의 자랑 중 하나였던 V4 엔진이 쓰였다. 자코네 미나(Zaccone Mina)가 풀비아를 위해 새롭게 설계한 이 엔진은 뱅크각 13도로 설계되어 크기가 아주 작았을 뿐 아니라 DOHC 방식의 밸브계이면서도 실린더 헤드를 공유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런 구조는 나중에 폭스바겐의 VR6 엔진에서도 쓰였다. 두 개의 카뷰레터가 달린 1.2L 엔진은 80마력의 힘을 내었다. 엔진은 앞 차축 앞쪽에 세로로 놓였지만 엔진 크기가 워낙 작아 앞 오버행이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았다. 

배기량이 크지도, 출력이 아주 높지도 않았지만 길이 4m에 무게가 900kg에 불과한 가벼운 차체 덕분에 가속력이 매우 뛰어났다. 이는 앞바퀴 굴림 차로서는 스포티한 핸들링 특성과 어우러져 유럽의 여러 랠리 무대에서 풀비아 쿠페가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위시본 방식의 앞 서스펜션은 긴 판 스프링을 가로로 배치해 좌우 바퀴 사이를 잇는 구조였고 뒤 서스펜션은 판 스프링과 파나르 로드를 결합한 빔 액슬 방식이었다. 또한 쿠페에는 없는 스태빌라이저도 뒤 서스펜션에 추가되었다. 소형차에 스태빌라이저가 일반화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여기에 드 카르봉 방식 고압 모노튜브 가스 댐퍼와 절묘하게 조율된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이 어우러져 빠르고 정확한 스티어링 반응과 스포티한 핸들링이 돋보였다.

랠리 무대에서 좋은 성적 거두어

1976년까지 생산이 이어지면서 풀비아 쿠페는 꾸준히 업그레이드되었다. 엔진 배기량은 1.2L에서 1.3L로, 최종 버전에서는 1.6L로 커졌고 변속기도 4단에서 5단 수동으로 바뀌었다. 엔진은 종류에 관계없이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45도 기울어져 놓였다. 고성능 버전인 HF 모델은 엔진을 튜닝해 출력을 높였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보닛과 트렁크, 도어와 플렉시글라스 유리 등 경량 소재와 더불어 경주차 스타일의 꾸밈새가 더해졌다. 히터와 에어 클리너 케이스 등 불필요한 장비를 떼어낸 HF 경주용 버전의 무게는 겨우 790kg이었다.

풀비아 쿠페가 가장 빛을 발한 곳은 랠리 무대였다. 출시 직후부터 랠리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풀비아 쿠페는 당시 여러 스포츠카들을 제치고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0년 타르가 플로리오 경주에서는 9대의 포르쉐 911을 제치고 9위를 차지했는데, 풀비아 쿠페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차들은 페라리 512, 포르쉐 908, 알파로메오 티포 33 등 양산차가 아닌 경주 전용으로 만들어진 차였다. 그 밖에도 1972년에는 란치아에게 처음으로 국제 랠리 선수권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1969년 및 1973년에는 유럽 랠리 선수권 우승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후기에 등장한 1.6 HF 파날로네(Fanalone)는 1.6L 엔진을 얹은 가장 강력한 풀비아 쿠페로 스트라토스 HF를 대신해 WRC에 투입되기도 했다.

높은 인기와 랠리에서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풀비아 쿠페는 바탕이 된 세단이 1972년에 생산이 중단되었음에도 1976년까지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생산대수 역시 약 14만4,000대로 세단(약 19만2,000대) 못지않았다. 하지만 1969년에 피아트가 란치아를 인수하면서 풀비아의 후속 모델인 베타는 피아트 설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풀비아 쿠페는 오리지널 란치아의 색깔이 살아있는 마지막 소형 쿠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