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트랙스 1.4 터보 LTZ

[ 오토카 한국판 2017년 1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쉐보레 트랙스는 국내 소형 SUV 시장을 개척한 차나 다름없다. 그러나 페이스리프트한 지금은 시장에 경쟁차가 수두룩하다. 외모에 치중해 이루어진 변신만으로 경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UV는 틈새 차종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적어도 한두 모델은 내놓고 있는 주류 차종으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한국지엠은 꽤 오랫동안 빈약한 라인업으로 SUV 시장에서 버텨왔다. 처음에는 윈스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캡티바는 10년째 생산되어 시장의 관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나름 규모가 큰 시장에서 충분한 몫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한국지엠에게 큰 문제다. 당장 시장에 알맞은 캡티바 후속 모델을 투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013년 선보인 트랙스는 기아 쏘울을 제외하면 경쟁 모델이 드물었던 소형 SUV 시장이라도 선점하자는 노림수였다. 

그러나 트랙스는 장점도 많았지만 내수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기에는 허점도 적지 않았다. 나중에 르노삼성 QM3, 쌍용 티볼리 같은 경쟁 모델이 나오면서 트랙스는 적잖은 풍파를 겪었다. 몇몇 허점은 희석되었지만 무난한 디자인이나 편의사항 구성처럼 오히려 부각된 허점들도 있었다. 톡톡 튀는 디자인과 풍부한 편의장비를 갖춘 경쟁차들 속에서, 트랙스는 보편적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특히 디젤 엔진 모델을 제때 투입하지 못한 것은 트랙스가 내수 시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 출시한지 2년하고도 절반이 흘러갈 무렵에 디젤 엔진 모델이 나와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가 크지 않은 탓에 시장 입지를 바꿀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자동차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고, 그 변화가 바람직하고 알차야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 데뷔 후 3년 반을 조금 넘긴 시점에 트랙스가 나름 크게 달라진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스리프트라는 표현에 걸맞게, 새 트랙스는 차의 얼굴인 앞부분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단순하고 비교적 평면적이었던 이전 모델과 달리, 최신 쉐보레 패밀리 디자인을 따른 새 트랙스의 앞모습은 훨씬 더 강렬하고 공격적인 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페이스리프트 전 트랙스처럼 순둥이 같은 인상을 주는 차의 인기가 적은 편이어서, 달라진 모습이 소비자들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비칠 듯하다. 

최상위 트림인 LTZ에 모든 선택사항이 다 들어간 시승차에는 LED 주간 주행등이 들어간 프로젝션 방식 헤드램프가 얇고 넓게 펼쳐져 있고, 라디에이터 그릴도 옆으로 넓어지면서 위아래가 또렷하게 구분되는 디자인으로 차체를 넓어 보이게 만든다. 테일램프도 전체적인 형태는 거의 유지한 채 최상위 모델은 LED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밖에 앞뒤 범퍼를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손질한 정도로 겉모습을 꾸미는 일은 마무리했다. 미니밴이나 해치백 비슷한 이미지를 지닌 경쟁차들과 달리 SUV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차체 형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앞부분에 변화가 집중되기는 실내도 마찬가지다. 하위 모델 값이 전보다 낮아진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실은 원가절감과 더불어 몇몇 편의사항을 뺀 결과이기도 하다. 전반적인 장비 구성과 선택사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고급스러워진 느낌이 드는 것은 달라진 대시보드의 영향이 크다. 대시보드 위쪽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투박함은 사라지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결치듯 대시보드를 흐르는 곡선이 작은 차의 실내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넓게 펼쳐진 인조가죽 장식과 가늘게 들어간 크롬 장식은 이전보다 더 비싼 차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물론 도어 트림을 비롯해 나머지 내장재는 디자인과 재질 모두 달라지지 않았고, 디자인이 좋아지면서 대시보드에 있던 수납공간들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게다가 천장 마감재는 거칠게 마무리된 끝부분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터사이클 스타일 계기판은 스파크, 아베오와 비슷하게 다기능 디스플레이가 담긴 평범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애플 카플레이가 내장된 쉐보레 마이링크. 내비게이션은 스마트폰에 브링고 앱을 설치하거나 아이폰에 설치된 지도 앱을 써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최상위 모델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보스(Bose) 오디오는 꽤 괜찮은 아이템이다. 공기조절장치는 여전히 반자동이고, 바닥에 낮게 깔린 네 개의 컵홀더는 운전 중에 쓰기에는 조금 무리다. 

실내 꾸밈새는 무난하고, 앞좌석은 차 크기에 비해 넉넉한 느낌이다. 앞좌석 시트는 등받이에 비해 앉는 부분이 좁게 느껴지만, 보기보다 몸을 잘 잡아준다. 중간급 모델에는 패키지 선택사항으로, 최상급 모델에는 기본으로 들어가는 운전석 전동조절 기능은 등받이 각도 조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뒷좌석 공간은 어른 두 명이 타기에 딱 알맞다. 머리나 어깨 공간은 여유 있지만 무릎 공간은 동급에서 인기 높은 티볼리보다는 확실히 좁다. 가장 아랫급 모델부터 220V 인버터가 센터 콘솔에 내장되어 나오는 것을 빼면 뒷좌석을 위한 편의사항은 없다. 트렁크 공간은 꾸밈새와 크기 모두 평범하다. 6:4 비율로 나누어진 등받이를 접으면 트렁크 바닥과 이어지지만 평평해지지는 않는다. 

시승차의 보닛 아래에는 1.4리터 터보 140마력 엔진이 들어 있다. 직접 연료분사 시스템이나 가변 밸브 기구도 없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으로, 처음 나왔을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수치상의 출력이나 최대토크,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탁월한 면을 찾기 어려운 무난한 엔진이다. 대신 2015년 하반기에 디젤 엔진이 추가되면서 트랙스에 쓰이기 시작한 Gen III 6단 자동변속기가 페이스리프트와 더불어 가솔린 모델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GM의 승용차용 자동변속기가 대부분 그렇듯 변속은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변속이 늘어지고 힘이 새는 느낌이 줄어드는 것은 반갑지만 여전히 스포티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차의 성격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데, 다만 이번 시승에 앞서 잠깐 디젤 모델을 몰아볼 수 있었는데, Gen III 변속기와의 궁합은 가솔린보다 디젤 엔진 쪽이 더 잘 맞는 느낌이다. 디젤 엔진 모델은 상대적으로 큰 저속 토크가 너그러운 변속기와 어우러져 상쇄되는 덕분에 가속이  자연스럽다. 반면 가솔린 엔진은 공회전 상태에서 시작해 최대토크 영역까지 회전수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초반에는 조금 힘이 약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오르막길이나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는 구간에서는 회전수를 2,000rpm 이상으로 묶어두는 것이 자연스럽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변속기가 알아서 변속하게 내버려두면 회전수가 2,000rpm을 넘어가는 일이 드물어 달리기가 조금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기어비 간격이 저단쪽은 가속 위주로 좁고 고단쪽은 연비 위주로 넓어, 저속보다 고속에서 가속감이 더 밋밋하다. 시속 100km에서는 기어 6단에서 엔진 회전계 바늘이 2,000rpm을 가리키지만, 5단으로 내려도 가속감은 딱 아쉽지 않을 정도다. 기어 레버를 M 위치로 옮기고 버튼을 눌러 원하는 단을 선택하는 수동 기능은 여전히 불편하다. 달리는 동안에 실내는 비교적 조용한 편인데, 시속 100km 전후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트랙스는 다루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특정한 특성만 두드러지는 국내 브랜드 동급 다른 모델들과 비교하면 안정감과 민첩함, 편안함의 균형을 부드럽지만 정확한 쪽으로 잘 맞췄다. 달리는 동안 미세한 진동이 꾸준히 이어지기는 하지만 거슬리지 않고, 충격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는다. 커브에서는 차체가 기울어지기는 해도 하체가 잘 억제하는 느낌을 줘 불안하지 않다. 약간 묵직한 파워 스티어링도 부드럽게 돌아가면서도 방향을 비교적 정확하게 바꾼다. 짧은 휠베이스 때문에 장거리 주행은 조금 피곤할 수 있지만 복잡한 시내나 적당히 굽은 국도에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몸놀림으로 보답한다. 공인 복합연비는 12.2km/리터이지만, 실제 달려보니 도심 연비는 공인연비(11.1km/리터)와 비슷한 수준이고 고속도로 연비는 공인연비(14.1km/리터)를 웃돌 때가 많았다. 시승을 위해 241.9km를 달리는 동안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평균연비는 12.6km/리터였다.

자동차 업계와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서 출시 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승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 시승 전까지 페이스리프트된 트랙스의 판매량은 이전을 크게 웃돌고 있다. 처음 트랙스가 출시되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소형 SUV 시장에 경쟁체제가 탄탄히 갖춰졌다. 그럼에도 변화가 눈에 보이는 부분으로 제한된 트랙스의 판매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이 시장에서  어떤 특성을 지닌 차가 소비자에게 먹혀드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다. 동급 베스트셀러인 쌍용 티볼리도 마찬가지지만, 소비자는 작을수록 실속 있는 차를 원한다. 꾸미는 즐거움은 다른 차에 비해 조금 덜하지만, 트랙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장점인 탄탄한 기본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현대차가 어떤 무기를 들고 나올지 궁금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쟁을 보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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