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XT5 프리미엄

[ 오토카 한국판 2017년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캐딜락 유일의 크로스오버 SUV였던 SRX는 꽤 괜찮은 차였음에도 국내에서 존재감이 희미했다.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브랜드의 야심에 힘입어 이름까지 바꾼 후계차 XT5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 자동차 평론가 류청희가 확인해 본다

언제 틈새시장에 속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할 만큼, 많은 사람이 차를 구매할 때 SUV 또는 크로스오버를 고려 대상에 쉽게 포함시키고 있다. 이제 더는 보수성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는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SUV와 크로스오버 라인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을 정도다. 이미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거의 모든 차급에 한두 모델씩은 갖고 있고, 일본 브랜드들도 빈틈을 대부분 채워가고 있다. 

그에 비하면 미국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은 여전히 소극적인 느낌이다. 에스컬레이드의 존재감이 워낙 큰 탓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크로스오버 SUV 장르로는 SRX가 홀로 자리를 지킨 영향이 크다. 정말 성격이 애매했던 1세대에 비하면 2세대 SRX는 꽤 괜찮은 차였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GM이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다른 회사들이 경쟁력 높은 모델을 시장에 쏟아 붓지 않았다면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물론 역사에서 ‘만약’은 의미 없는 가정이고, 앞서 이야기한 일련의 사건들은 SRX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실질적으로 SRX의 뒤를 잇는 XT5는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브랜드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모델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달라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달아오른 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큼 XT5는 신선함을 지니고 있을까? 이제 천천히 그 의문의 답을 찾아보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이제 캐딜락 디자인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뚜렷한 개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21세기 들어 시작된 아트 앤 사이언스(Art and Science) 디자인은 두 세대의 SRX에 이어 XT5에서 진화의 3단계를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2세대 SRX의 흐름을 이어받아 SUV와 미니밴의 크로스오버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얇고 날카로운 디자인 요소들로 속도감을 부여했다. 앞뒤 램프는 가늘고 길게 수직 방향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수평 방향의 디자인 요소를 넣어 차체가 넓고 안정되어 보인다. 특히 헤드램프 바깥쪽에서 가늘게 흘러내리듯 범퍼를 파고든 주간주행등 겸 방향지시등은 70년대 각진 캐딜락의 이미지를 색다르게 구현한 듯하다. 초대형 SUV인 에스컬레이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전 SRX보다 훨씬 더 커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캐딜락 세단 라인업보다도 더 두드러진다. 이처럼 대담한 디자인에서 비롯되는 존재감은 비슷한 개념의 차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XT5를 돋보이게 만든다.

간결하고 대담한 선과 단순한 면이 어우러지는 디자인은 실내에서도 이어진다. 대신 실내는 좀 더 화려하다. 미국차 기준으로는 질감 좋은 가죽이 내장재 대부분을 감싸고, 힘 있게 뻗은 금속 느낌의 선들이 검은색 내장재를 배경 삼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평적 디자인의 대시보드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공기조절 장치가 위아래로 간결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스포크마다 버튼이 빼곡이 자리를 잡은 스티어링 휠 너머로 세 구획으로 나뉜 계기판이 보기 좋게 담겨 있다.

캐딜락에 처음 쓰인 전자식 기어 노브, 조작감을 살린 터치식 공기조절 장치 버튼, 스마트폰 통합 기능이 포함된 터치스크린 CUE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무선 충전 기능 등은 현대적인 고급차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전반적으로 내장재 조립 완성도와 마감은 좋은 편이지만 모서리 부분의 가죽 마감이나 재봉선은 깔끔하지 않은 부분들도 눈에 뜨인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물론 계기판 다기능 디스플레이의 표시 내용도 대부분 한글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쉽지만, 글꼴 때문인지 자연스럽지 않게 표시되는 항목들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앞좌석과 뒷좌석의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앞좌석에 앉으면 크로스오버 카로서는 비교적 스포티한 분위기가 약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뒷좌석은 느긋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시각적 요소들은 뒷좌석에 비해 대시보드가 있는 앞좌석 쪽이 훨씬 더 자극적이고, 무엇보다도 뒷좌석의 공간 여유가 주는 영향이 크다. 긴 휠베이스에 힘입어 뒷좌석 무릎 공간이 넉넉하기도 하지만, 낮은 실내 바닥에 비해 높이 올라앉은 좌석이 주는 혜택은 뒷좌석이 훨씬 더 크게 누린다. 등받이 구석과 트렁크 벽면의 레버를 당기면 60:40 비율로 나누어 접을 수 있는 뒷좌석은 거리 조절도 되고, 공기조절 기능은 물론 가정용 전원 소켓과 USB 포트도 있다. 쿠션도 푹신함과 탄탄함을 고루 갖추고 있어 편안하다.

등받이를 접었을 때 바닥이 평평해지도록 트렁크 바닥을 높여 놓았는데, 바닥 덮개를 들면 아래에 비교적 깊은 수납공간이 드러난다. 리어 카고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포함된 카고 펜스를 쓰지 않을 때 넣어둘 수 있도록 구획도 만들어져 있다. 트렁크 안쪽은 깔끔하지만 적재공간 길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짧다. 뒷좌석 공간을 키운 탓이라기보다는 짧은 뒤 오버행의 영향이 커 보인다.

시승한 프리미엄 모델보다 한 달 늦게 출고가 시작된 플래티넘 모델에는 정지 후 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 주차 기능 등 안전 기술과 풀 컬러 헤드업디스플레이, 서라운드 카메라, 스트리밍 카메라 룸 미러 같은 편의장비가 추가된다. 그러나 프리미엄 모델만 해도 반발력으로 원래 경로로 복귀하도록 돕는 차로이탈 방지장치와 차간거리 경고 기능을 비롯해 적잖은 안전장비가 갖춰져 있다. 보스(BOSE) 14스피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과 애플 카플레이 등 핵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두 모델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사이에 있는 시동 버튼을 누르면 힘이 있으면서도 시끄럽지는 않은 배기음과 함께 엔진이 살아난다. 기어 레버를 당겨 D 모드를 선택하고 액셀러레이터를 가볍게 밟으면 공회전 상태에서의 희미한 진동은 거의 사라진다. 속도를 점점 더 높여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이른 뒤에도 한동안 실내는 조용하다. 아래쪽에서 235/55 R20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올라오기는 하지만 거슬리지 않을 만큼 잔잔하다. XT5의 V6 3.0리터 직접분사 엔진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가속하는 만큼 고르게 힘이 커지는 자연흡기 엔진 고유의 특성은 잘 살아 있다. 그러나 회전수가 낮을 때에는 연료소비를 줄이려 힘을 아끼는 느낌이 강하고, 높을 때에는 제법 박력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일상적으로 차를 쓸 때에는 부드럽고 매끄럽게 달리고, 일부러 차를 몰아붙이면 은근히 스포티한 색깔을 드러낸다. 

작정하고 얌전하게 몰면 XT5의 엔진은 알아서 검소한 자세를 취한다. 특정 상황에서 실린더 여섯 개 중 두 개의 작동을 멈추는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AFM)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한다. 다만 시스템이 자주 개입하지는 않는다. 내리막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거의 밟지 않아도 V6 모드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곳에서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신 국내에 들어오는 가솔린 엔진 차로는 드물게 스톱 스타트 기능이 들어 있는데, 최신 시스템인 만큼 냉각수가 어느 정도 뜨거워진 뒤에는 영하의 기온에서도 꽤 오랜 시간 시동이 꺼진 상태를 유지한다. 참고로 공인 복합연비는 8.9km/리터이고, 시승한 266.9km 구간에서 트립컴퓨터로 계산한 연비는 9.0km/리터였다. 이 정도 크기의 차체에 AWD 시스템과 이 정도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을 얹은 차로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양면성의 반대편을 확인하려면 기어 레버 뒤에 있는 드라이브 모드 선택 버튼을 눌러 투어, AWD, 스포트 모드 중 스포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스포트 모드는 AWD 모드에 파워트레인이 빠르게 반응하는 특성이 더해진 것이다. AWD 모드를 선택할 때부터 이미 차체 뒤쪽에서 전해지기 시작하는 힘은 스포트 모드에서 더 뚜렷해진다. 기어 레버를 M 위치에 놓고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로 높은 회전수 영역을 유지하면 가속도, 고속도 아쉽지 않을 만큼 힘차게 차선 사이로 치고 나간다. 물론 8단 자동변속기가 시종일관 힘을 부드럽게 걸러서 전달하는 만큼 스포티한 크로스오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강력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비교적 낮은 무게중심과 끈끈한 접지력이 듬직하게 달리기를 뒷받침하고, 요철을 지날 때 충격은 전해지지만 속도에 관계없이 차의 움직임은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안정된 몸놀림과 깔끔한 스티어링 감각에 정직하고 세련된 제동감각 덕분에 차를 다루기도 쉽다. 코너에 들어서고 빠져나올 때 마치 탄력이 붙듯 스티어링 반응이 달라지는 것은 세단보다 높고 무거운 차라는 것을 증명하지만 핸들링은 여전히 잘 조율된 세단에 가깝다. 미끄러운 코너에서 타이어가 슬쩍 옆으로 밀릴지언정 AWD 시스템이 있는 이상 식겁할 순간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캐딜락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직접 비교하기보다는 같은 미국 출신인 링컨이나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하는 쪽이 더 어울려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는 링컨 MKX와 렉서스 RX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XT5의 경쟁상대다. 개념은 비슷하지만 색깔은 다른 세 모델 사이에서 XT5는 듬직하고 정직하면서 안정감 있는 주행감각을 내세우는 쪽에 가깝다. 흔히 요즘 캐딜락에서 독일차에 가까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XT5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흐름이 이어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독일 브랜드의 SUV나 크로스오버와 달리 XT5에서는 앞바퀴 굴림 기반의 플랫폼의 특성이 주행감각에서도 어느 정도 느껴지고, 그런 특성은 캐딜락 세단 라인업과도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미묘한 차이는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중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차급에서 이런 성격의 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부분들에서는 강점이 될 만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20세기 캐딜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차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XT5의 경쟁상대들은 SRX를 상대하던 시절보다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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