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5월 21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지난 5월 12일,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인 NIO는 자사의 전기 슈퍼카인 EP9이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퍼(Nürburgring Nordschleife) 서킷에서 새로운 랩 타임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뉘르부르크링은 독일 서부 산악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인 뉘르부르크 주변에 있는 자동차 경주장이다. 이 서킷은 현대적인 자동차 경주장인 GP 슈트레케(GP Strecke)와 1927년에 완공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르트슐라이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노르트슐라이퍼는 2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이 170개 이상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해발고도 차이가 300미터에 이르는 등 달리기 까다로운 서킷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노르트슐라이퍼는 자동차 경주 선수는 물론 애호가들에게도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기복이 심하고 복잡한 코스 구성 때문에 짧은 시간에 가혹한 주행시험을 하기에 알맞아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새차 개발 시험에 활용하기도 한다. 여러 차례 개선되기는 했지만, 코스 기본 구성이 오래 된 탓에 요즘 나오는 고성능 차들에게는 노르트슐라이퍼의 변화무쌍함에서 오는 충격과 압박이 다른 서킷이나 일반 도로보다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속능력뿐 아니라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스티어링 등 섀시 개별 요소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운동특성(핸들링)이 제대로 조율되어야 코스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이 본격 스포츠카나 스포티한 특성을 지닌 차를 개발하거나 차의 스포티한 성격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FIA 공인 서킷이어서 안전 및 구난시설이 갖춰진 환경에서 시험할 수 있다는 점도 자동차 회사들이 테스트 코스로 활용하는 이유 중 하나다. 

NIO의 발표에 따르면, EP9은 20.832킬로미터 길이의 노르트슐라이퍼 한 바퀴를 6분 45.900초 만에 달렸다. EP9이 노르트슐라이퍼 랩 타임 기록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6년 10월에 있었던 비공개 테스트에서 7분 5.120초를 기록하면서 전기차 랩 타임 기록을 깼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전까지 전기차가 세운 최단 랩 타임 기록은 토요타 TMG EV P002가 2012년 8월에 세운 7분 22.329초였다. 주목할 점은 토요타 TMG EV P002가 기록 도전과 시험을 위해 경주차 형태로 특별히 만든 프로토타입(시험제작)인 반면, EP9는 판매를 목적으로 소량 생산하는 차여서 일반 도로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EP9가 세운 기록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그동안 내연기관(엔진)을 쓴 양산 스포츠카들이 세운 여러 기록을 모두 깨뜨렸기 때문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진출입로 일부를 제외한 20.600킬로미터 구간만 측정한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EP9의 기록은 기록 도전용으로 개조한 래디컬 SR8 LM이 2009년 8월에 세운 최단 랩 타임 기록인 6분 48.28초보다 2.38초, 지난해 10월에 양산 스포츠카로 람보르기니 우라칸 LP 640-4 퍼포만테가 기록한 6분 52.01초보다 6.11초, 2013년 9월에 포르쉐 918 스파이더가 하이브리드 스포츠카로서 세운 6분 57초의 기록보다 11.1초 빠른 것이다. 나아가 2010년 6월에 파가니 존다 R이 20.832킬로미터 구간에서 세운 비공식 최단 기록인 6분 47.50초보다도 1.6초를 앞당겼다.

가속을 비롯해 동력 활용 관점에서는 전기 모터를 쓰는 전기차가 엔진을 쓰는 차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 엔진은 최대토크가 나오는 영역이 특정 회전수 범위 안으로 제한되므로 변속기를 통해 속도에 따라 높은 토크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에 엔진 회전수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전기 모터는 거의 회전수에 관계없이 최대토크를 고르게 낼 수 있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동력 계통에서의 에너지 손실도 엔진을 쓰는 차보다 전기차가 적다. 따라서 자동차에 고성능을 구현하기에는 전기차가 더 효율적이다. 테슬라의 첫 모델이 2인승 스포츠카였고, 현재 생산되는 모델에 가속력을 극대화하는 루디크러스 모드를 넣은 것도 전기차의 특성을 성능 과시용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다만 전기 스포츠카가 탁월한 성능을 내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은 갖춰야 한다. 우선 전기 모터의 출력이 높고 배터리의 충전 전력량이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무게를 고려하면 무조건 큰 배터리를 쓸 수도 없기 때문에, 무게와 전력량의 균형을 찾아야 하고 차체 나머지 부분을 가급적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전기차 개발에도 노하우가 중요한데, 그런 관점에서 신생 업체 NIO가 만든 전기차가 기존 스포츠카의 노르트슐라이퍼 랩 타임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정도의 성능을 보여준 것은 자동차 만들기의 흐름이 전기차 시대에는 과거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자동차 업계에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생존의 열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에는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채울 수 있는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과거의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생존과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환경이 뒷받침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르트슐라이퍼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울 전기차나 전기차 업체가 나와 성공을 거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