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르반떼 S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7년 8월호 ‘The Giant Tourer’ 특집 기사에 포함된 제 글입니다. 메르세데스-AMG GLE 63 S 4매틱, 레인지 로버 스포트 SVR과 함께 GT 성격의 고성능 SUV 기준에서 우열을 가려본 기사였습니다. ]

GT가 갖춰야할 덕목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을 몇 가지 꼽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빠름. 편안함. 고급스러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제대로 만든 GT라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그 세 가지 특징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차에 탄 사람에게 풍요로움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움 관점에서는 SUV만큼 현대적 개념의 GT에 잘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공간의 여유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기도, 안정감에서 비롯되는 편안함을 만들어내기도 불리하다. 그런 핸디캡을 얼마나 잘 극복했는가가 GT 성격을 지닌 SUV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애초부터 SUV로 만들어진 나머지 두 모델과 달리, 르반떼 S는 스포츠 세단인 기블리의 키를 높인 접근 방식이 남다르다. 적어도 개념 면에서는 GT 개념에 비추어 가장 이상적이다. 전통적 스포츠카 스타일인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이 반영된 SUV는 르반떼 S 이외에는 흔치 않다. 눈에 들어오는 고급스러움 면에서도 그리 부족하지 않다.

자극적일 정도로 스포티하면서 고급차다운 존재감이 느껴지는 겉모습, 소재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이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실내도 마찬가지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와 질감 좋은 가죽이 섞인 시승차의 실내는 차에 탄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물론 값싸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디자인과 고급 내장재의 카리스마가 전체적 분위기를 압도한다. 파워트레인 계통 중심으로 장비 조작성이 조금 떨어지고, 디지털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아쉬운 점을 빼면 편의장비와 수납공간처럼 장거리 주행을 편안하게 돕는 배려들도 잘 갖춰 놓았다. 살짝 여유가 부족한 뒷좌석에서 깎인 점수는 차 크기에 비해 비교적 넉넉한 앞좌석과 충분한 적재공간이 만회한다. 

가장 중요한 달리기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세 차 가운데 가장 차체와 무게중심이 낮은 르반떼 S는 몸놀림이 가장 민첩하다.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에 여유가 더해진 기블리를 모는 느낌이다. 4륜구동이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뒷바퀴 굴림 차의 특성이 나타나고, 제법 날카롭게 코너를 파고든다. 서스펜션을 잔뜩 조여 무게중심 이동을 억제시킨 GLE 63 S와 비교하면 르반떼 S의 코너링 때 몸놀림은 훨씬 더 자연스럽다. 다른 두 차와의 출력 차이가 제법 나지만 무게는 가장 가벼운 덕분에 가속감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저속이나 스포트 모드에서 간혹 강한 충격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빠르고 매끄러우면서 힘을 잘 전달한다. 방음 처리도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웬만큼 속도를 높여도 실내에는 엔진음과 배기음만 듣기 좋은 음량으로 울려 퍼진다. 엔진음과 배기음의 톤은 가속할 때 짜릿함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정속 주행 때에는 약간 걸걸하게 귓전을 긁는다.

서스펜션의 어댑티브 댐핑 시스템은 승차감보다는 접지력에 초점을 맞춘 움직임을 보여준다. 노면 요철을 지날 때 종종 차체는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바퀴는 ‘툭’하고 떨어지면서 충격을 준다. 특히 저속으로 거친 길을 달릴 때에는 적잖이 거슬린다. 에어 서스펜션을 세련되게 조율했는데도 자잘한 진동이 끊임없이 스티어링 휠과 시트로 전달되는 것이 거슬리는데, 거슬리는 느낌을 줄이는 방법은 차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이다. 전반적 주행감각은 고속도로를 쾌속질주하기보다는 굽이치는 산길에서 핸들링의 묘미를 즐기기에 더 잘 어울릴 듯하다. 

일반적인 SUV와 비교한다면 르반떼 S는 분명 GT의 색깔이 잘 반영되어 있는 차다. 그러나 오늘 나온 다른 차들과 비교하면 자극적이고 거친 부분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몇 세대에 걸쳐 숙성된 차와 그렇지 않은 차의 차이가 드러나는 셈이다. 만약 마세라티가 르반떼에 V8 엔진을 얹은 GTS 버전을 더하면서 서스펜션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는다면? 그때는 르반떼가 지닌 GT의 잠재력이 정말 화끈하게 드러날 것이다.

* 다른 두 대의 차는?

메르세데스-AMG GLE 63 S 쿠페 4매틱

메르세데스-AMG는 컴팩트 모델을 빼면 GT 성향이 뚜렷한 브랜드다. 큰 모델로 갈수록 더 그렇고, SUV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조금 이질감이 드는 모델 중 하나가 GLE 63이다. 잘 달리기는 하지만 초조함과 긴장감도 함께 느껴지기 때문이다. GLE 쿠페는 GLE SUV보다 주행감각은 더 세련되지만, 슬슬 실내 인터페이스와 섀시에서 나이든 티가 나는 것은 어느 쪽이나 비슷하다. GLE SUV보다 지붕은 낮아졌지만 시트 높이는 별반 차이가 없어, 머리 공간 여유는 확실히 적다. 그럼에도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단 시승차가 좀 유별나게 느껴질 정도다. 

백미는 대배기량 고출력 V8 터보 엔진이 쏟아내는 풍성한 힘과 시원한 가속력이다. 지나치게 조여 놓은 느낌의 서스펜션이 움직임을 답답하게 하지만, 그만큼 빠른 속도에서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 차들은 대부분 섀시가 엔진을 이겨왔는데, GLE 63 S는 쿠페와 SUV 모두 엔진 힘이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섀시가 엔진 힘을 떠받칠 여유가 적기 때문에 서스펜션을 한껏 조여 안정감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든든하기는 해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GT 성격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인지 로버 스포트 SVR

레인지 로버 스포트 중 가장 강력하고 과격한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 SVR이다. 원래 단순 간결한 겉모습은 고성능을 강조하려 손질한 앞뒤 범퍼가 과장되지 않고 잘 어울리는 대신 카리스마는 강력하지 않다. 헤드레스트 일체형 버킷 시트가 차의 성격을 말해주는 실내도 시트를 빼면 일반 모델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물론 실내와 적재 공간은 가장 넉넉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차체 덕분에 시야도 좋다. 수납공간과 편의장비를 잘 갖춰 놓은 것도 장거리 여행 때 유리한 점이다. 아무리 고성능 모델이어도 실용성에 관한 랜드로버의 센스는 훌륭하다.

레인지 로버 스포트 5.0 수퍼차저보다 성능은 한층 더 높아졌지만, 성능 차이를 뚜렷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다. 워낙 덩치가 크고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의 질감은 꽤 좋은 편이다. 큰 힘을 고르고 꾸준하게 내는 엔진, 큰 덩치가 움직이는 것을 차분하게 잘 억제하는 서스펜션, 날카롭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머리를 돌리는 스티어링이 어우러졌다. 차의 무게가 느껴지기는 해도 깔끔하게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도 합세해 고성능을 편안하게 뽑아낼 수 있다. 어느 한 곳 두드러지게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 균형 면에서는 세 차 가운데 가장 조화가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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