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1월호 ‘New Comer’ 지면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토요타가 캠리를 뼈대부터 갈아엎어 다시 만든 것은 잘 한 일이다. 하이브리드처럼 느껴지지 않는 하이브리드가 됐고, 무색무취였던 주행감각은 감칠맛이 살짝 더해졌다. 반찬 없이 먹기 힘든 쌀밥 같던 캠리가 이제는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일품요리가 됐다

“차 정말 괜찮아.”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새 캠리 하이브리드를 시승한 선배가 다른 후배에게 남긴 글이다. 사실 뭔가 크게 바뀌었다고 하니 궁금하긴 한데, ‘캠리가 그래봐야 캠리지’라는 선입견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선배의 글 덕분에 새 캠리 하이브리드 시승차를 받을 때의 마음은 과거 캠리를 앞에 두었을 때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캠리는 미국 브랜드보다 더 미국 소비자에 맞춰 만든 차다. 1990년대 이후 줄곧 그래온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미국 중형 세단 시장에서 판매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렉서스(그래봐야 같은 토요타 계열이지만)를 빼면 일본 브랜드가 썩 기를 펴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이유도 사실은 그 영향이 크다. 무난한 성능과 상품성에 높은 신뢰성과 내구성을 지닌 캠리는 소비자에 대한 포용력이 아주 큰 차다. 대신 반찬 없이 먹는 쌀밥처럼 개성이나 모는 맛을 기대하기 어려운, 밍밍한 차라는 이미지가 있다. 꼭 그런 이미지를 의식해서는 아니겠지만, 토요타는 TNGA라는 새 플랫폼을 개발해 새 캠리의 뼈대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캠리를 만든 것이 몇 세대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걸 보면, 뭔가 크게 달라지기는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외모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과격하고 날렵해졌다. 현대 YF 쏘나타가 나올 때 자동차 디자인계에 준 ‘쏘나타 쇼크’로 방향전환을 한 이전 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보다 더하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전보다 분위기가 젊어진 것은 분명하다. 휠베이스와 길이, 너비가 이전 세대보다 커졌지만 언뜻 봐서는 오히려 작아진 느낌이다. 차체와 더불어 보닛이 크게 낮아진 영향이 크다. 가운데를 아래로 파놓은 옆 유리로 3박스 세단 특유의 비례감을 유지한 것도 그런 느낌에 힘을 보탠다. 그 덕분에 휠 지름이 18인치인데도 큰 덩치에 알맞아 보인다.

독특한 비대칭 대시보드가 시선을 끄는 실내도 과거의 고루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면을 잘라놓은 듯한 상투적 디자인 대신 가늘게 가로 놓은 모양의 버튼들은 매끄러운 평면에 터치스크린을 담은 센터 페시아를 돋보이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계기판 구성은 고전적이다. 원형 에너지 모니터와 속도계 사이에 컬러 스크린을 놓았고, 엔진 회전계는 없다. 해상도가 높아 글씨와 그림이 또렷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터치스크린보다 계기판 안의 스크린 해상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쉽다. 주요 기능은 스티어링 휠 왼쪽 스포크에 있는 버튼으로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다.

대시보드와 센터 콘솔은 동급 다른 차들과 비슷한 높이인데 시트가 낮은 편이어서, 시선을 앞으로 두면 살짝 파묻히는 느낌이 든다. 가족용 세단으로는 앉는 자세가 스포티하고, 유독 짧은 기어 레버가 그런 느낌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면서도 턱이 낮은 옆 유리 덕분에 시야는 좋다. 넉넉한 크기의 컵 홀더와 깊은 센터 콘솔 등 수납공간도 아쉽지 않다. 앞뒤 좌석은 모두 적당히 두툼한 쿠션과 공간 덕분에 편안하다. 하이브리드 차에 필수인 대용량 배터리는 트렁크 대신 뒷좌석 아래에 놓았다. 그 덕분에 적재공간은 가솔린 모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뒷좌석 등받이를 접어 길고 큰 짐도 실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실내 구성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이라서 감수해야할 핸디캡 같은 것은 없다고 봐도 좋다.

2.5리터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이 178마력. 전기 모터 출력은 이전보다 살짝 낮아진 120마력. 복잡한 구동계를 거쳐 나오는 시스템 출력은 엔진과 모터를 합한 것에서 87마력이 빠지는 211마력. 최대토크는 22.5kg‧m으로 3,600~5,200rpm에서 나온다. 엔진만 놓고 보면 출력은 그렇다 쳐도 토크는 배기량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자연흡기 엔진이면서도 비교적 넓은 회전영역에서 최대토크가 이어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효율을 높이면서 조금 허전한 성능을 내는 엔진은 전기 모터가 보완한다. 전기 모터가 내는 최대토크는 20.6kg‧m으로 엔진과 큰 차이가 없다. 시스템 특성상 출력과 마찬가지로 토크도 단순 합산할 수 없지만, 토요타는 시스템 토크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다.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다면 속도계 바늘이 시속 30km 정도를 가리키기 전까지 엔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모터만 열심히 움직일 때가 많다. 경사로를 오르거나 조금 빨리 가속하고 싶을 때 액셀러레이터를 조금 힘주어 밟으면 엔진이 깨어난다. 시동이 걸리는 것은 소리와 진동으로 알 수 있지만,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저속으로 달릴 때뿐이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고 나면 일부러 감각에 날을 세우지 않는 이상 시동 전후를 구분하기 어렵다. 특히 막힘없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때에는 더 그렇다. 방음처리로 적당히 여과되어 들어오는 구동계와 배기쪽 소음에 비해 차체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상대적으로 덜 걸러지는 탓이다. 그래도 실내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전자제어 CVT는 가상 6단 수동 기능이 있다. 센터 콘솔에 있는 기어 레버를 운전자쪽으로 당기면 수동으로 변속할 수 있다. 실제 변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작동은 아주 매끈하다. 수동 모드로 변환하면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무단변속이 제한되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는 효과가 생긴다. 그 때 계기판 왼쪽 에너지 게이지는 감속 에너지가 배터리를 재충전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요즘 토요타나 렉서스 하이브리드 모델이 대부분 그렇듯, 구동계와 배터리가 전기 에너지를 주고받는 상태는 계기판은 물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대형 화면에도 표시할 수 있다. 

기어 레버 뒤에는 주행 모드 선택 버튼이 있다. 에코, 노멀, 스포트의 세 개로, 선택한 모드에 따라 파워트레인 반응과 더불어 계기판 가운데 있는 다기능 디스플레이의 테마 색이 바뀐다. 물론 아날로그 방식인 속도계와 에너지 모니터는 그대로다. 에코 모드에서는 가속 반응이 상당히 무뎌지고 공기조절장치 등 주요 편의장치들이 전기를 아껴 쓰는 티를 낸다. 연료소비가 줄어드는 만큼 정체가 심한 곳에서 쓰면 좋지만, 한겨울이나 한여름에는 실내가 금세 식거나 데워지는 것이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겠다. 

스포트 모드에서는 액셀러레이터 반응이 빨라지고 변속기가 CVT인데도 엔진 회전을 꽤 높은 영역까지 끌고 간다. 노멀 모드에서도 급가속하거나 액셀러레이터를 깊이 밟은 상태를 유지하면 스포트 모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반응하지만, 오른발에서 힘을 빼면 서둘러 절약 정신을 되찾는 노멀 모드와 달리 스포트 모드에서는 활기찬 상태가 어느 정도 유지된다. 재미있는 점은 노멀 모드보다 스포트 모드가 감속 에너지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에는 더 적극적이다. 마치 가속 때 낭비한 에너지를 최대한 보충하려 애쓰는 느낌이다. 

시승하는 동안에는 노멀 모드로 주행한 시간이 가장 길었는데,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다면 하이브리드 차를 몰고 있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을 만큼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작동 변화는 아주 매끄러웠다. 토요타 하이브리드 기술이 잘 숙성되었다는 증거이고,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쓰는 모든 차들이 지향해야할 특성이기도 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기술의 복잡성을 사용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좋은 UX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것이 캠리 하이브리드가 주는 달리기 느낌의 전부였다고 해도 사실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살 사람은 샀을 테니까. 그러나 새 캠리 하이브리드에는 전에 없던 감각이 하나 더해졌다. 바로 ‘차짐’이다. 물론 대체로 충격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대륙적 서스펜션 세팅의 틀이 어느 정도 이어지고는 있지만, 텅 빈 듯 헐거웠던 스티어링 반응과 차체 움직임은 이제 조금은 진득해졌다. 현대 쏘나타가 YF에서 LF로 넘어가면서 주행질감이 크게 좋아진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캠리는 LF 쏘나타보다 반응과 움직임의 밀도가 더 짙어졌다. 유럽 특히 독일 차의 정갈한 움직임을 좀 더 부드럽고 넉넉하게 다듬은 느낌이다. 적당한 선에서 다루는 재미와 승차감의 편안함을 좋은 뜻으로 타협했다는 뜻이다. 과거 캠리에서 부족했던 점을, 그것도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느낄 수 있을 만큼 채운 것은 분명 뼈대부터 새롭게 만든 토요타의 저력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토요타가 국내에 새 캠리를 내놓으며 ‘와일드 하이브리드’라고 한 것은 분명 마케팅 차원의 과장이다. 그럼에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캠리는 무난한 가족용 이동수단으로서 훌륭한 차에 그쳤고 하이브리드는 더 그랬지만, 이제는 확실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기술은 특별하다는 이질감이 거의 없는데다가 조금은 모는 이를 부추기기도 하는 주행감각까지 더해졌다. 물론 필부필부에게 걸맞은 차의 영역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점차 줄어들고 있는 세단 시장의 크기를 고려하면 이번 캠리에 쏟아부은 토요타의 노력은 조금 과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결과물이라면 전동화 시대가 본격화되어도 캠리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좋게 이어가는 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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