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F-타입 P300 쿠페

[ 오토카 한국판 2018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재규어 F-타입 라인업에 뒤늦게 뛰어든 4기통 2.0L 터보 엔진 모델이 엔트리 모델 자리를 꿰찼다. 늦둥이 막내 F-타입은 과시욕은 강하고 지갑은 가벼운 이들을 위한 염가형 F-타입인 걸까?

재규어 F-타입이 영국 버밍엄 공장에서 처음 출고된 때는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과 주요 디자인 요소는 재규어의 아이콘인 E-타입의 혈통을, 알루미늄으로 만든 뼈대와 누가 봐도 이언 컬럼의 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는 차체 비례는 이전 세대 XK의 혈통을 이어받은 재규어 스포츠카의 적통이 F-타입이다.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칠 때까지 슈퍼차저를 더한 V6와 V8 가솔린 엔진을 품고 있던 F-타입은 데뷔 4년여 만에 다른 엔진을 새롭게 받아들였다. 시기상으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은 P300이 엔트리 모델로 V6 엔진 모델 아래로 비집고 들어선 것이다.

P300의 엔진은 F-타입 라인업 중 가장 배기량이 작을 뿐 아니라, 재규어가 스포츠카에 처음으로 얹은 4기통 엔진이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 재규어 브랜드 역사가 80년이 넘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놀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재규어 스포츠카의 엔진은 늘 6기통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낯선 엔진은 아니다. 인제니엄(Ingenium)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은 국내 판매되는 다른 재규어 중에도 이미 XE에 200마력 버전이, XF에 250마력과 300마력 버전이 올라가고 출시를 앞둔 E-페이스에도 같은 엔진이 쓰인다. F-타입에는 가장 강력한 300마력 버전이 쓰이고, 긴 보닛을 앞쪽으로 기울여 열면 실제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커버 아래에 놓여 있다. 

엔진을 빼면 엔트리 모델이라고는 해도, 윗급 모델과 비교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나머지 부분의 차이는 소소한 편이다. 앞 범퍼가 조금 얌전한 모습이고, 18인치 크기의 휠이 조금 옹색해 보인다. 화려한 치장은 가급적 배제한 탓에 다른 F-타입에 비하면 꽤 검소한 분위기다. 뒤 범퍼 아래 한가운데에 달린 넓은 사각형 배기구 정도도 얌전한 인상을 준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2도어 뒷바퀴 굴림 쿠페의 차체 비례와 절제된 표현으로 강력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표현한 디자인은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겉모습보다는 조금 보수적 분위기인 실내도 마찬가지다. 꾸밈새와 장비구성은 큰 차이를 두지 않은 대신, 가변 배기 스위치를 비롯해 몇몇 장비가 빠져 있고 내장재도 부분적으로 값비싼 소재를 가려서 썼다. 시승차인 쿠페의 운전석에 앉으면 고정식 선루프와 수동 햇빛 가리개가 머리 위에 펼쳐져 있다. 낮고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 좌우 분위기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센터 페시아 옆의 바, 배치가 간결하고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비롯해 웬만한 것들은 고루 갖춰 놓은 편의장비 등은 사실 윗급 모델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전동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해치를 열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임시 예비 타이어와 OVM 공구가 트렁크 바닥 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편인 트렁크에 부피가 있는 짐은 아예 실을 수가 없다. 런 플랫 타이어나 파손 수리 키트를 쓰지 않은 것이 의외다. 엔트리 모델에 대한 홀대라고 하기에도 어색해서 의문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F-타입이 보여주는 2인승 뒷바퀴 굴림 스포츠 쿠페의 정통파다운 모습은 이미 익숙하니 이쯤에서 정리해도 용서하기 바란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인 엔진은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모두 의외인 면을 보여준다. 좋은 쪽부터 이야기하면, 예상보다는 힘이 좋고 차를 다루기 좋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제원상으로는 1,500rpm부터 4,500rpm까지 40.8kg‧m의 최대토크가 고르게 이어지는데, 최대토크 영역을 벗어나 회전한계에 다가가도 토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엔진의 능력을 한껏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통쾌하지는 않아도 가속이 빠르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이어지는 가속감은 자연흡기 엔진이 썩 부럽지 않을 정도다. 8단 자동변속기는 가속하는 내내 정확하고 부드럽게 기어를 다음 단으로 옮겨 가속감을 꾸준히 이어 나간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약간 반응이 둔하고 다이내믹 모드에서 가끔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거슬리지 않는다.

나쁜 쪽 이야기를 하자면, 그처럼 좋은 특성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4기통 엔진 고유의 단점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특히 배기음이 그렇다. 물론 좋은 느낌을 주는 측면도 있기는 하다. 시동 때 꽤나 굵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 엔진은 공회전 때에는 제법 거칠다가 회전수를 높일수록 치밀해지는 진동과 더불어 스포츠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공회전에서 회전수를 높여 나가면 배기구에서는 굵은 톤의 소리를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회전계 바늘이 4,000rpm 근처에 다가가기 전에는 날카로운 음색과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색깔의 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4,000rpm을 넘긴 고회전 영역으로 들어서거나 다이내믹 모드로 설정했을 때 내는 소리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정통 스포츠카치고는 조금 너그러운 승차감은 타이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스프링과 댐퍼도 부드러운 쪽으로 조율한 덕분이기도 하다. 세련미에서는 독일 차에 미치지 못해도, 일상용으로 쓰더라도 크게 피곤하지 않을 정도다. 정체된 도심에서는 엔진 진동이 조금 거칠게 실내로 들어오지만, 더디긴 해도 차가 움직이는 구간에 들어서면 허리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극적 진동은 차츰 누그러진다.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나 콘크리트 노면에서는 의외로 충격을 매끄럽게 흡수하고, 빠른 속도로 달릴 때에도 요철에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차가 지닌 특성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역시 커브다. 윗급 모델들보다 조금이나마 스티어링 휠 움직임에 차체 앞 부분이 더 빠르게 반응한다. 윗급 모델에 비해 편평비 높은 타이어가 반응을 조금 희석하기는 해도, 좀 더 풍부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두 손에 전달한다. 감각의 풍요로움을 키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유 있지만 폭발적이지는 않은 힘을 내는 엔진 덕분이기도 하다.

확실한 비교를 위해 예를 들면, V8 엔진을 얹은 R 모델은 일단 커브로 차를 집어 던진 다음 스티어링 휠과 액셀러레이터로 쉴 새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차의 움직임을 끌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4기통 엔진의 P300은 액셀러레이터로 알맞은 구동력을 이끌어내면서 차분히 스티어링 휠로 방향을 잡아 나가면 된다. 엔진이 좀 더 뒤로 물러나 프론트 미드십 배치가 되었다면 반응이 더 날카로워지겠지만 그만큼 다루기는 더 까다로워졌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대단한 박력은 없어도, 손과 발을 놀리는 순간마다 일어나는 섬세한 변화를 통해 차와 호흡하며 스포츠 드라이빙의 맛을 즐기기에는 제격이다. 훨씬 더 성능이 뛰어난 F-타입 모델들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달리기 품새는 넘치는 부분을 모두 걷어낸 P300에서 오히려 재규어 본래의 감성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게다가 약간 묵직한 페달은 제동력을 정확하게 조절하기 좋고, 속도를 줄이는 느낌도 무척 세련되다. 이 역시 재규어 전통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모든 움직임이 어우러진 결과를 요약하면 고성능 뒷바퀴 굴림 스포츠카 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을 위한 교과서 같은 달리기 감각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국 또는 재규어 스포츠카의 특징이 잘 드러난 차라는 점에서 F-타입 P300은 꽤 개성과 매력이 있는 차다. 이전까지 엔트리 모델이던 V6 3.0L 340마력 엔진 버전보다 1,700만 원 이상 낮은 8,880만 원부터 값이 시작한다는 점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러나 영국차나 재규어의 골수 팬이 아니라면, 여러 면에서 볼 때 핵심 경쟁차인 포르쉐 718이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없다. 달리기의 세련미, 신뢰성 등 관점에 따라서는 F-타입이 극복할 수 없는 특성도 718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F-타입 P300의 승부수는 ‘재규어다움’이다. 낯선 방식의 파워트레인 해법을 통해 재규어 특유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든 차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염가형 F-타입으로 깎아내리기에는 F-타입 P300이 전하는 재규어의 맛은 기대 이상이다. 흔한 그리고 뻔한 선택이 지루한 사람에게 유별난 선택이 주는 즐거움을 잘 가르쳐줄 차다.

제원

Jaguar F-Type P300 Coupe

길이x너비x높이 4482x1923x1311mm 휠베이스 2622mm  엔진 직렬 4기통 2.0리터 가솔린 터보  최고출력 300마력/5500rpm  최대토크 40.8kgm/1500~4500rpm  변속기 자동 8단  공차중량 1650kg  최고속도 시속 250km(제한)  0-시속 100km 가속 5.7초  복합연비 9.8km/리터  CO2배출량 172g/km  에너지소비효율 4등급  기본값/시승차 8,88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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