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터진 수입 소형 상용차 출시의 의미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은?

[ 2018년 9월 17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최근 국내 상용차 시장에 새차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이베코코리아가 데일리를 선보인데 이어, 르노삼성은 10월 중 르노 마스터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럽 상용차 시장의 LCV(경량급 상용차)에 속한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모델로는 현대 쏠라티가 이 차급에 해당하고, 수입 모델로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를 꼽을 수 있다. 다만 쏠라티나 스프린터가 미니버스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베코 데일리는 폐쇄형 적재공간을 갖춘 상용 밴과 특장 제작의 바탕이 되는 섀시캡이, 르노 마스터는 상용 밴이 판매된다. 

총중량 기준으로 이베코 데일리는 3.5~7.2톤, 르노 마스터는 3.5~4.5톤이고, 국내 판매 모델의 적재중량은 이베코 데일리가 1.5톤(밴 기준), 르노 마스터가 1.3~1.35톤이다. 따라서 이들은 밴 부문에서는 현대 스타렉스보다는 윗급, 쏠라티 밴과는 같거나 윗급으로 포진하게 되고, 트럭 부문에서는 실질적으로 현대 포터2와 기아 봉고3이 양분하고 있는 1톤급 트럭과 현대 마이티가 독점하다가 최근 이스즈 엘프가 뛰어든 2.5~3.5톤 트럭 사이의 틈새 시장에 놓인다. 간단히 말해 틈새 시장을 노린 모델이라는 뜻이다.

르노삼성이 르노 마스터 출시계획을 밝히며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용차 시장 규모는 연간 약 25~25만 대 수준으로 1톤급 트럭이 약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아울러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판매된 현대 포터2는 10만 1,423대, 기아 봉고3은 4만 9,101대,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미니버스 포함)가 4만 5,776대로 19만 6,300대에 이른다. 이 세 차종의 판매량은 대형 버스와 트럭을 포함한 전체 국내 상용차 판매량 27만 1806대의 72.2퍼센트다. 해당 차급 상용차를 기준으로 삼으면 시장 과점 정도는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트럭 시장에서는 수입차 판매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수입차 업계의 중형 트럭 출시 러시에서도 볼 수 있듯 상용차 부문에서 수입차의 공세는 꾸준히 아랫급으로 내려오고 있는 모양새다. 경상용차 부문에서는 한국지엠 라보와 다마스가 버티고 있지만, 출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상품성이 많이 약화되었고 최근 중국산 소형 상용차가 경상용차와 1톤급 트럭 사이의 틈새시장을 조금씩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이베코 데일리와 르노 마스터는 그동안 수입차가 발을 들여놓지 못한 소형 상용차 시장의 위쪽 틈새를 노리고 있다. 실질적으로 수입차가 파고들지 못한 시장은 철옹성과 다름 없이 버티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1톤급 트럭과 중소형 밴만 남는 셈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서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읽을 수 있다. 긍정적 측면 중 하나는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현대기아차가 시장을 독점하면서 제품 구성을 단순화한 탓에, 소비자의 폭넓은 수요가 모두 소수의 제품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능은 물론 안전성과 편의성 등에서 발전의 속도가 무척 더뎠다. 비교적 단순한 구성의 제품을 오랫동안 생산하면서 가격상승이 억제된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거의 매년 꾸준히 값이 올랐고 가격 인상 폭이 크건 작건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완벽하게 기존 1톤급 트럭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도, 화물을 주로 나르지만 굳이 1톤급 트럭까지는 필요 없거나 1톤급 트럭보다 적재능력이 좀 더 넉넉한 차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앞서 이야기한 틈새 모델들이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성공여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다면 국내 업체가 시장 요구에 맞춰 제품을 다양화하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긍정적 측면 중 하나는 안전성과 편의성 높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국내 1톤급 트럭의 탑승공간은 모두 탑승자가 엔진 위에 올라앉는 듯한 COE(Cab-over-engine) 구조다. 구형 스타렉스 바탕의 현대 리베로가 한때 틀을 깨기도 했지만, 당시 여건상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단명했다. 대다수 1톤 트럭 소비자가 짧은 차체에 적재능력은 뛰어난 차를 원하는 것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당시와 비교했을 때 소형 상용차의 사용형태나 운송환경의 폭이 넓어지고 안전성과 편의성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현재 팔리고 있는 중국산 소형 상용차는 물론 데일리와 마스터 같은 유럽형 LCV도 모두 보닛이 돌출된 형태의 차체에 국내 법규에서 정한 기본 안전장비는 모두 갖추고 있다. 아울러 유럽형 LCV들은 밴의 경우 적재공간과 적재중량 모두 그랜드 스타렉스 밴보다 넉넉하고, 택배 등에 주로 쓰이는 1톤 트럭 특장 탑차들보다는 적재공간 바닥이 크게 낮아 주행안정성이 높고 화물 상하차 편의성도 훨씬 더 뛰어나다.

물론 부정적 측면도 있다. 수요가 불분명한 틈새 모델이라는 점과 더불어, 데일리와 마스터는 수입 또는 도입 모델이라는 특성 때문에 소형 상용차로서는 값이 비싸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데일리의 값은 섀시 캡이 5,300만~5,670만 원, 상용 밴이 6,300만~6,550만 원이다. 이와 같은 가격대는 1,500만~1,900만 원(싱글캡 2륜구동 기준) 선에서 판매되는 1톤급 트럭이나 2,100만~2,200만 원(3인승 밴 기준) 선인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와 차이가 너무 크다. 적재중량 500~700kg인 중국산 소형 밴은 1,500만 원대여서 적재중량 600~800kg인 그랜드 스타렉스보다는 싸지만, 실질적 수요를 대체하고 있는 다마스 밴(적재중량 450kg, 1,000만 원대)보다는 비싼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일한 동급 모델인 현대 쏠라티 밴의 값이 6,390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실제로 생산 비용이 큰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쏠라티 밴이 화물 운송용으로 판매되어 쓰이는 사례가 많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앞서 국내 판매를 시작한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가 상용차보다는 컨버전 밴으로 주로 판매되고 있는 이유도 상용차로서 가격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구매 이외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제성이나 신뢰성, 기타 서비스 등 혜택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실제 화물운송이나 작업용도로 구매할 만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아울러 국내 업체가 자극을 받아 비슷한 개념의 틈새 제품을 내놓을 때에도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사실 소형 상용차는 제조업체의 수익성이 낮아, 유럽에서도 여러 브랜드가 공동 개발해 하나의 차종을 각 브랜드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용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승용차보다 유지관리 비용과 인프라에 더 민감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어 시장에 새로 진출하기가 무척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게다가 단순히 이미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국내 기준에 맞춰 들여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국내 시장의 특수성과 맞지 않아 실패하기 쉽다. 결론은 간단하다. 틈새를 노리고 다양한 상품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국내 시장에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실수요자들이 만족할 만큼 설득력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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