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마스터, 도전은 가상하나 현실은 만만찮다

[ 2018년 10월 21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르노삼성자동차가 10월 15일부터 상용 밴인 르노 마스터의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르노 마스터는 지난 9월에 공식 출시한 이베코 데일리와 더불어 국내 시장에 완성차 브랜드를 통해 공식 판매되는 세 번째 유럽 기준 경량운송용 상용차(LCV, Light Commercial Vehicle)다. 첫 번째는 2016년에 판매를 시작한 현대 쏠라티 3인승 윈도우 밴이다. 그러나 현대는 쏠라티를 미니버스와 컨버전 밴 판매에 치중하고 있어 판매량은 지극히 미미하다. 심지어 쏠라티가 화물용 밴으로 팔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현대자동차 웹사이트에서도 쏠라티에 관한 제품정보는 소형상용이 아니라 별도의 ‘트럭 및 버스’ 메뉴에 포함되어 있다.

르노삼성이 발표한 마스터 관련 자료를 보면 국내 판매에 앞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출시를 알리는 언론대상 행사에서 안전성, 편의성을 앞세워 ‘국내 상용차 시장 문화를 바꾸겠다’고 강조한 데에서 그런 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모두 국내 소형 상용차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모델들 즉 현대기아 1톤 트럭 기반 내장탑차와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이론상 경쟁 모델인 현대 쏠라티 밴이나 이베코 데일리는 비중이 작은 경쟁상대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르노삼성은 르노 마스터를 들여오면서 모델을 3인승 패널밴으로 단일화했고 차체와 적재공간 크기가 다른 두 가지만 우선 내놓는다. 크기가 작은 S 모델은 적재공간 높이가 1.75m, 너비가 1.705m, 길이가 2.505m로 부피는 8.0세제곱미터, 적재중량은 1.3톤이다. 그보다 큰 L 모델은 적재공간 너비는 S 모델과 같고 높이는 1.94미터, 길이는 3.015m로 S 모델보다 각각 19cm, 51cm 크며 부피는 10.8세제곱미터, 적재중량은 1.2톤이다. 적재공간 부피는 현대 쏠라티(12.7세제곱미터)나 이베코 데일리(일반루프 9세제곱미터, 하이루프 12세제곱미터)보다 작지만 적재중량(쏠라티, 데일리 모두 1.3톤)은 같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랜드 스타렉스 3인승 밴은 적재공간 부피가 약 5.2세제곱미터에 적재중량 800kg, 현대기아의 1톤 트럭 기반 내장탑차는 적재공간 부피가 약 7.5~9.3세제곱미터에 적재중량 1톤이다. 마스터 S는 그랜드 스타렉스보다, 마스터 L은 1톤 트럭 기반 내장탑차보다 적재공간 부피나 적재중량 면에서 유리하다.

발표 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값은 예상보다 크게 낮았지만 이미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 놓은 소형상용 모델들에 비하면 값 차이가 작지 않다. S 모델이 2,900만 원, L 모델이 3,100만 원이어서, 같은 차급인 쏠라티(6,390만 원)와 데일리(6,300만~6,550만 원)의 절반 수준이고 한 차급 아래인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 3인승 밴의 값이 2,110만~2,195만 원(자동변속기 등 옵션 포함시 최대 2,442만~2,517만 원) 보다는 기본가격 기준으로 30~40퍼센트 비싸다. 

르노삼성이 르노 마스터의 강점으로 내세운 내용을 요약하면, 1톤 기반 내장탑차보다는 안전하며 화물 상하차가 편하고,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보다는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고 실내와 적재공간 내 작업이 편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옳은 이야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상품성 면에서 틈새 모델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실용성이나 기능 측면에서는 국내 시장을 과점하는 모델과의 비교우위를 내세우면서, 목표 고객층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는 실제 소비자가 구매 과정에서 고려하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가장 크게 좌우되는 것이 가격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같은 성격의 차들이 판매되고 운행되는 국내 소형화물 운송환경 특성상 그만한 가격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마스터에 뚜렷한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변속기가 6단 수동뿐인 것은 양날의 칼이다. 연비나 효율 및 성능, 유지관리 등 비용 측면에서는 수동변속기가 나은 면도 있지만, 운행조건에 따라 잦은 변속과 조작성 때문에 운전자의 피로감이 큰 경우도 있다. 흔히 ‘고바위길’이라고 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나 정체가 심한 도심 도로에서 속도변화가 클 때가 대표적이다. 수치상 출력(145마력)과 토크(36.7kg・m)은 현대기아의 1톤 트럭 기반 내장탑차(133마력, 26.5kg・m)나 그랜드 스타렉스 수동(140마력, 36kg・m)보다는 높지만 그랜드 스타렉스 자동(175마력, 46.0kg・m)이나 쏠라티(170마력, 43.0kg・m)보다는 낮다. 

아울러 상용차에서 가장 중요한 유지관리 측면은 마스터가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국내에 처음 판매되는 르노 상용차인 만큼 부품도 전량 수입되지만 주요 부품 가격은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 수준으로 맞췄다고 한다. 서비스 네트워크도 기존 르노삼성 서비스 센터와 협력업체 중 일부를 활용하고, 차츰 취급 업체를 늘려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주요 국내 경쟁 모델에 비하면 서비스 네트워크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상태인 것은 분명하고, 처음 판매되는 모델인 만큼 정비인력의 해당 모델에 대한 정비 숙련도는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120년 전통의 르노가 만들어 유럽 시장에서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품질이나 신뢰성에 자신감이 있다고는 해도, 그쪽 시장과 우리 시장 사정은 엄연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과거 삼성상용차와 르노삼성은 별개의 업체였던 만큼 사실상 르노 마스터는 르노삼성이 상용차 시장에 내딛는 첫 발걸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롭게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에, 그것도 이미 굳어진지 오래인 과점 상태의 시장을 파고들어보려는 르노삼성의 도전은 한편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많이 팔기보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시장에 작은 자극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관계자의 말은 겸손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르노삼성이 아니라 르노 브랜드로 들여오는 첫 상용차이기도 한 만큼, 마스터의 어깨는 만만찮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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