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언제든 몰 수 있는 특별한 페라리! 그러나 가상공간에서만! –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

가상공간이 좋은 점 중 하나는 현실 세계에서 해보거나 겪을 수 없는 일들을 내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많은 자동차 애호가가 드라이빙 게임이나 시뮬레이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죠.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등장한 이후 수많은 자동차 관련 게임과 시뮬레이터가 하나의 장르를 이루고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 부담 없이 – 물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차들을 몰아볼 수 있고, 사고가 나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만 나쁠 뿐 현실 세계처럼 뒷감당 때문에 곤란할 필요가 없죠.

그런 점에서 폴리포니 디지털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용 드라이빙 게임 그란 투리스모(Gran Tursimo) 시리즈는 드라이빙 게임과 시뮬레이터의 차원을 바꾼 게임 체인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1997년에 처음 나와 25년 동안 시리즈가 이어지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드라이빙 게임으로 자리를 잡은 대형 프랜차이즈입니다.

첫 출시 25주년이 되는 2022년 3월에 나온 그란 투리스모 7 티저 이미지

주관적으로 그란 투리스모의 성공 비결은 자동차 애호가의 이상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상공간에 구현한 데 있었다고 봅니다. 폴리포니 디지털은 그란 투리스모를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애호가의 운전 중심 자기계발 육성 시뮬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차를 몰거나 경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험을 쌓고 수준을 높이며 차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 재미를 더하니까요.

물론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가 전 세계에 탄탄한 팬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많은 사람에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져진 팬층이 그란 투리스모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자동차 업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죠.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차들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선을 넘어, 자동차 업체들이 오직 그란 투리스모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차들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바로 ‘비전 그란 투리스모’라는 이름의 협업 모델들입니다. 2013년에 메르세데스-AMG가 처음 참여한 이후로 지금까지 현대 N을 포함한 20여 완성차 브랜드는 물론이고 피닌파리나 같은 디자인 업체까지 참여해 가상공간 전용 모델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 11월 27일. 세계적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가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공개하며 그 대열에 동참한다고 밝혔습니다.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그란 투리스모로 치르는 e스포츠 대회인 그란 투리스모 월드 시리즈 2022년 시즌 최종전이 열린 모나코에서 처음 공개되었는데요. 페라리의 첫 가상공간 전용 모델이면서, 페라리의 첫 경주차인 125 S의 공개 75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합니다. 차체에 붙은 75라는 숫자가 그런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이고요.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의 기본 개념은 1인승 클로즈드휠 경주차입니다. 모터스포츠가 뿌리인 페라리 브랜드로서는 경주차 성격과 이미지만큼 내세우기 좋은 특징이 없죠. 디자인은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페라리 첸트로 스틸레가 참여해, 1960~70년대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330 P3, 512 S 등 유명한 페라리 경주차들의 스타일을 참고해 미래지향적으로 구현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납작하고 간결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차체와 돌출된 휠 등 전반적인 형태는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512 S 모둘로(Modulo)도 떠오릅니다. 물론 공기역학 특성을 차체 형태에 최대한 반영하고, 차체 위쪽은 단순하게 만들면서 아래쪽은 다소 복잡한 모습을 구현해 기술을 강조하고 무게 중심이 낮아 보이는 모습으로 만드는 요즘 페라리의 디자인 흐름도 읽을 수 있습니다. 뒷바퀴 뒤로 길게 뻗은 차체 뒤 부분과 뒷바퀴 위에서 시작해 위로 도드라지게 솟은 리어 스포일러는 조금 과장된 느낌이고요.

가상공간의 차지만 차체를 이루는 조형 요소들을 보면 공기역학에 대한 고려가 많이 반영되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차체 앞의 공기 흡입구들과 뒷바퀴 옆의 커다란 공기 배출구 등이 대표적이죠. 그런 부분들도 차체 형태를 통해 양력과 항력을 제어함으로써 주행 안정성을 높이고 고속 및 가속 성능을 높이는 요즘 페라리의 디자인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개념이 개념이다 보니, 실내 디자인은 아주 간결합니다. 경주차의 전형적 요소들을 담아 운전자가 차의 상태와 경주에 관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표시하고, 역시 포뮬러나 프로토타입 경주차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스티어링 휠을 달았습니다. 실내 나머지 요소들은 아주 간결하게 처리했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이 들도록 다듬었습니다.

가상의 존재긴 하지만, 기술적인 개념은 꽤 현실적입니다. 우선 동력원은 현재 판매 중인 296 GTB와 296 GTS, GT3 경주차인 296 GT3과 내년 세계 내구 선수권(WEC) 및 르망 24시간 하이퍼카 클래스에 출전할 499P 경주차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기반의 하이브리드 AWD 파워트레인을 얹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전기 모터는 세 개가 들어가는데, MGU-K(Motor-Generator Unit-Kinetic)로 발전기 역할을 겸하는 하나는 엔진 뒤에서 엔진과 함께 뒷바퀴로 동력을 전달하고, 나머지 두 개가 양쪽 앞바퀴를 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030마력, 전기 모터 세 개의 합산 출력은 326마력(240kW)고 엔진과 전기 모터가 합세해 뒷바퀴에 전달할 수 있는 최대토크는 112.2kg・m(1,100Nm)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는 얘기죠.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최신작인 그란 투리스모 7 사용자들은 2022년 12월 23일부터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보다 앞서 11월 28일부터 진행되는 게임 속 캠페인 퀴즈에 참여해 우승하면 12월 15일부터 몰아볼 수 있다고 하네요.

한편, 페라리가 만든 실물 크기 목업도 12월 15일에 공개되어 2023년 3월까지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있는 페라리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페라리 비전 그란 투리스모의 실물을 보려면 이탈리아에 가야 하지만, 직접 몰 수 있는 곳은 오직 가상공간의 그란 투리스모 세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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