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 발표를 보고

2022년 11월 24일, 현대자동차가 현대자동차그룹 마북 인재개발원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몇 분은 직접 참석해 현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보셨는데, 저는 SNS에 올라온 참석자들의 게시물과 보도자료, 관련 기사들을 보고 알았습니다. 오리지널 포니와 포니 쿠페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참여해, 포니 브랜드의 시발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포니 쿠페 콘셉트카를 되살리는 프로젝트입니다.

뜻깊고 반가운 일입니다. 부실했던 헤리티지 관련 토대를 탄탄하게 다지려는 최근 현대의 여러 행보에서 느꼈듯, 이번 작업도 잘 진행되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올해로 84세인 주지아로에게도 생전에 거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상징적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지아로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을 양산한 자동차 업체와 브랜드 가운데 현대차처럼 뒤늦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글로벌 상위권으로 성장한 곳은 없으니, 20세기 산업 디자인의 거장인 그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오랫동안 ‘현대차에 남아있는 과거 유물이나 자료들이 많지 않다’는 소문이 있었죠.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의외로 많은 자료들이 남아는 있다고 합니다. 찾아서 정리하는 작업들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요. 실제로 그동안 열린 ‘헤리티지 라이브’나 지난 7월에 N 비전 74가 처음 공개된 ‘현대 N 데이(N Day)’와 같은 행사에서 공개된 몇몇 자료들이 좋은 예입니다. 이번에 이루어질 포니 쿠페 콘셉트 프로젝트도 그런 자료들이 바탕이 될 테고요.

그런데 보도자료를 보니 ‘…포니 쿠페 콘셉트는 비록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실됐지만…’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잃어버렸다’는 뜻의 유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간 전해 들은 이야기들로 짐작은 했지만 포니 쿠페 콘셉트 실물이 남아있지 않은 건 확실한 사실로 여겨집니다. 다들 그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적어도 현대차의 관리 범위 안에서 실물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이번 기회에 공식적으로 못박은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만들 필요도 없었겠지요. 즉 물리적 관점에서 보면 ‘있었지만 없는 것을 다시 만든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셈입니다.

과거에는 카로체리아들이 프로젝트성으로 만든 콘셉트카들이 완성된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개인에게 팔려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은 그냥 소장용으로 전시나 보관되기도 했고, 움직이는 것들 가운데에는 산 사람이 직접 몰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클래식카 경매에 출품되거나 창고에 방치된 것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특이한 사례로는 주지아로가 1970년에 만든 포르쉐 타피로 콘셉트카를 꼽을 수 있는데요. 산 사람이 몰고 다니다가 화재로 파손된 것을 이탈디자인이 다시 사들여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해 박물관에 전시한 사연이 유명합니다. 그런 식으로 포니 쿠페 콘셉트카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 숨어있다가 ‘짠’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극적 반전에 대한 기대는 이제 접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있듯, 포니 쿠페 콘셉트는 양산차로 개발된 포니의 섀시와 동력계 및 구동계 위에 이탈디자인이 차체를 디자인하고 실내를 꾸며 만든 찹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만든다는 차는 이미 완성된 상태의 포니를 뜯어내고 옛 디자인을 되살려 다시 만든 차체와 실내를 얹는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질 듯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미 존재하는 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restoration)보다는 원래 것과 똑같은 것을 다시 만드는 복제(reproduction)나 재건(reconstruction)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작업이 되겠죠. 화재로 부서진 남대문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작업보다는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을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만드는 작업에 가까우니까요.

(update: 현대자동차가 배포한 영문 보도자료에는 ‘rebuild’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사실 포니 쿠페 콘셉트는 사진이나 영상, 문헌 등이 남아있으니 실물이 없다고는 해도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차를 다시 만드는 일을 반가운 마음으로 기대하면서도 생각 한 편에는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현대차 55년 역사라는 큰 그림에서 희미해진 부분을 다시 칠해 선명하게 작업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명 작가의 그림을 빛이 바랬다고 해서 후대의 누군가가 다시 칠한다면 그것을 순수한 원본이라고 하기 어렵고 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나마 이번 포니 쿠페 콘셉트 프로젝트에 원작자인 주지아로를 참여하게 했다는 점이 그런 걱정을 조금은 덜어줍니다. 오히려 더 시간이 흘러 주지아로의 참여가 불가능해지기 전에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창피한 과거를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결과의 교훈을 받아들이며 창피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역사를 받아들이고 이어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석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떠나 이번 포니 쿠페 콘셉트 프로젝트가 역사적 유산으로서 헤리티지의 의미를 깊이있게 생각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기 위한 선택이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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