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201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포르쉐 카이엔은 ‘스포츠카 순혈주의’를 신봉하는 필자같은 이들에게 늘 천덕꾸러기였다. 스포츠카 전문 메이커가 웬 SUV란 말인가. 먹고 살기 위해 폭스바겐의 힘을 빌려 잘 팔릴, 아니 많이 남겨먹을 수 있는 차를 만든 포르쉐에 배신감이 들었다. 아마 오래 전, 포르쉐가 914나 924를 내놓았을 때에도 포르쉐는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에 난감해 했을 것이다. 다만 잔뜩 욕을 들어먹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914, 924와는 달리 카이엔은 꽤나 잘 팔렸고, 포르쉐의 배를 충분히 불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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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엔이 개척한 시장도 이제는 경쟁이 치열해져, 새로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2세대 카이엔을 국내 공식 출시에 앞서 몰아본다. 시승차는 국내 인증용으로 사전반입된 카이엔 터보. 2세대 카이엔 역시 1세대와 마찬가지로 폭스바겐 패밀리 대형 SUV 플랫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커진 차체에 대한 포르쉐의 변명은 교묘하게도 매력적으로 포장되어 있다. 실용성을 높이면서 조금 더 퍼포먼스 지향으로 다듬었다는 말이다.

그런 모습은 우선 둔한 고래 같던 1세대에 비해 한층 균형 잡히고 스포티해져 조금은 상어에 가깝게 바뀐 겉모습에서 두드러진다. 범퍼의 공기흡입구가 강조된 앞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애스턴 마틴 분위기도 풍기고, 측면은 필요한 부분의 양감이 강조되어 밋밋해 보이던 1세대보다 박력이 더 느껴진다. 뒷모습은 이전보다 덜 뚱뚱해 보이지만 적당히 무게감을 가진 독특한 모양의 테일램프는 호불호가 갈릴 모양새다.

실내는 파나메라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전형적인 SUV 스타일이라 왠지 멍청해 보이였던 센터 페시아와 기어 레버 주변은 이제야 포르쉐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시트도 적당한 쿠션이 편안하면서도 몸을 감싸는 느낌은 스포츠카의 그것이다. 게다가 앉는 위치가 약간 높은 점을 빼면 시각적으로는 SUV가 아니라 해도 믿을 정도다. 가죽으로 도배한 실내의 조립품질과 감성품질은 모두 수준급. 뒷좌석도 공간이나 편의장비가 대형 세단 못지않다.

V8 4.8L 트윈 터보 엔진의 출력은 1세대 최신 모델과 같은 500마력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개선된 연비와 향상된 성능이다. 특히 새로운 8단 자동변속기의 역할이 큰데, 오버드라이브 기어인 7단과 8단이 고속 정속주행할 때 연료소비를 줄이면서 1단부터 6단까지는 기어비 범위가 좁아 차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스포트 모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면 기어는 6단, 회전수는 2,000rpm인데, 스포트 모드를 해제하면 8단 1,400rpm으로 회전수가 뚝 떨어진다. 여기에 스톱-스타트 기능까지 달아놓은 것을 보면 연비향상에 포르쉐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대략 6km 안팎으로 나온 시승 중 연비는 성능이나 주행조건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수준이다.

8단이나 되지만 변속기는 PDK 같은 듀얼 클러치 방식이 아닌 전통적인 토크 컨버터 방식 팁트로닉 S다. 변속이 매끄러운데도 변속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인상적이다. 8단으로 크루징하다가도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으면 8단에서 3단으로 뚝 떨어지며 맹렬한 가속이 시작된다. 시속 100km까지 4.6초밖에 걸리지 않는 정지가속도 살벌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고속에서의 재가속 능력이 살떨리게 만든다. 앞에 펼쳐진 교통상황과 차의 속도계를 번갈아 신경 쓰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우렁찬 배기음은 차 밖의 사람들에게는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지만 차에 탄 사람들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급가속이나 급제동, 급차선 변경 때에도 흐트러짐 없는 예리한 핸들링은 시속 200km를 넘는 크루징도 편안하게 느끼게 해준다. PASM의 댐퍼 조절기능을 어느 쪽으로 놓든지 승차감은 적당히 여유 있으면서도 깔끔한 든든함을 유지한다. 넉넉함 속에서 은근히 깔려 있는 포르쉐 승용 모델들과의 공통분모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다. 저속 기어를 없애면서 오프로드 주행능력의 하드코어한 부분이 깎여나간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전자식 센터 디퍼렌셜 록 기능과 에어 서스펜션의 마운틴 모드는 살아 있다. 조만간 시험해 볼 기회가 생기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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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량과 관계없이 포르쉐 내에서 카이엔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가져왔다. 그러나 새 카이엔 터보를 몰아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리고 파나메라의 등장도 카이엔의 입지를 제대로 잡아주었다. 2세대로 접어들며 ‘포르쉐 DNA’가 제대로 스며 든 카이엔을 이제 더 이상 욕할 수 없다.

평점: 8.5 / 10

포르쉐 색깔이 더 강해진 덕분에 스포츠카 브랜드의 SUV로서 존재가치가 분명해졌다.

  • 장점: 포르쉐다운 주행감각, 뛰어난 파워트레인, 훌륭한 실내 품질
  • 단점: 호박같은 뒷모습, 파나메라와 구분되지 않는 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