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0년 9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노매드(유목민) 기질을 공유하는 와이프와 나의 공통된 꿈 중 하나는 쓸 만한 캠핑용 차를 갖는 것. 오토캠핑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편하게 유랑할 수 있으면서 일상적으로 쓰기에도 무리 없는 차를 그려 왔다. ‘어쩌면 짚 랭글러 언리미티드도 그런 목적에 어울리는 차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원래 생각했던 차와는 차이가 있지만 한 번 겪어보기로 한다.

랭글러의 디자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한 느낌을 더해간다. 단순하고 꾸밈새 없는 모습은 마치 유기농 채소와 같은 신선함이 있다. 독보적인 개성을 지닌 겉모습은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 4도어 보디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다. 깔끔한 겉모습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느낌이 가득한 실내도 상큼하다. 하드 스킨 플라스틱과 강철 패널만으로 꾸민 순수함을 요즘 어느 다른 차에서 느낄 수 있겠는가. 대충 씌워 놓은 듯한 롤바 커버도 다를 바 없다.

2도어 숏보디보다 좋은 점은 역시 도어가 4개여서 타고 내리기 편리하다는 점과 뒷좌석 공간이 조금 더 크다는 점. 그리고 좌석 전체를 통째로 더블 폴딩하지 않고, 6:4 비율로 나누어 띠로 된 고리를 한 번만 잡아당기면 간단히 앞으로 접게 한 것을 들 수 있다. 좌석과 함께 헤드레스트도 함께 접히고, 일단 접으면 바닥이 짐 공간과 같은 높이가 되는 것도 좋다. 다만 가동구조가 드러나 깔끔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랭글러니까 봐줄 만은 하다.

짐 공간은 제법 넉넉하지만, 5명을 태우고 사람 수만큼의 짐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무리다. 필수 기본장비인 텐트를 싣기에는 길이나 너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라면 뒷좌석 한 쪽을 접고 긴 짐을 실으면 해결된다.

또 하나의 재미 거리는 플라스틱 소재의 프리덤 톱이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지붕 패널은 자유자재로 떼었다 붙일 수 있다. 선선한 가을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써먹을 수 있겠다. 대신 여름 땡볕에서는 조금 난감하다. 열기를 빼자고 지붕을 벗기자니 앉아서 태닝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씌워 놓자니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 놓아도 정수리가 후끈하다. 

2.8L 177마력 엔진이나 5단 자동변속기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필요한 만큼 제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공차중량만 해도 2톤이 넘고 공기역학은 딴 세상 얘기인 차체 때문에 속도에 관계없이 가속은 더디다. 아니, 꾸준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시내주행 속도영역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럭저럭 견딜만하고, 고속 영역으로 올라가면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가 알아서 느긋하게 속도를 붙인다. 

꾸준한 가속은 시속 180km 정도까지 이어지지만, 함께 탄 이들의 불만을 줄이려면 시속 100km 이하로 묶어두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람소리 때문이다. 복식 호흡으로 발성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렵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우퍼 딸린 오디오를 달아놓은 것, 도어 주변에 웨더 스트립도 없고 험로용 타이어의 소음도 심한데 고속에서도 주변 소음이나 타이어 마찰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승차감은 예상 밖으로 시내든 자동차 전용도로든 포장만 잘 되어 있으면 제법 편안한 느낌이다. 온로드 핸들링도 차의 특성을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이다. 물론 험로에 들어서면 반응은 180도 달라진다. 록 트랙 파트타임 4WD를 4L 모드로 놓으면 넘치는 토크를 브레이크로도 주체하기 힘들다. 앞 스웨이바 분리장치를 이용하면 바위산도 넘을 기세다. 캠핑장 가는 데 이런 기능까지 쓸 일은 없겠지만, 주변 험로로 무대를 옮기면 가족용 롤러코스터로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으리라. 물론 가족들이 다 같이 즐겨준다면 말이다.

온 가족을 오프로딩 마니아로 세뇌시킨 다음이라면, 혹은 가족을 등지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면야 이만큼 좋은 차도 없다. 또한 아무리 차를 거칠게 쓰고 다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일상용 차로서는 대단한 매력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패밀리카로서의 가치는? 산골 오지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우리 가족을 설득하기는 어렵겠다. 이 나이쯤 되면 슬슬 허리도 아프고 말이다.

[ 함께 시승한 다른 차들은? ]

  • 볼보 XC60 T6: 탑승공간과 짐 공간, 편의장비 면에서도 가족용 차로는 훌륭하다. 기능성과 안전과도 믿음직스럽다. 무엇보다도 차를 사면 2단 조절 빌트인 베이비 시트를 함께 준다. 다만 연료비가 걱정이라, 그나마 부담이 적은 D5라면 아주 쓸 만하겠다.
  • 혼다 어코드 3.5: 공간, 장비, 꾸밈새, 편리함 등은 딱히 아쉬울 것이 없다. 승차감도 적당히 편하면서 패밀리카 치고는 운동특성이나 성능도 괜찮다. 조금 부담스러운 생김새만 아니라면 한국적(이라기보다 미국적) 패밀리 세단 범주에서 이만한 차가 드물다.
  • 닛산 알티마 2.5: 어코드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면에서 잘 만들고 잘 달리고 잘 꾸민 패밀리 세단이다. 다만 운전하는 사람은 CVT의 오묘한 특성에 익숙해져야 하고, 약간 거친 승차감을 스포티함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족의 아량이 필요하다.
  • 렉서스 ES350: 인기 절정(미국과 한국에서)의 패밀리 세단인 도요타 캠리를 고급스럽게 꾸미고 렉서스 엠블럼을 붙인 차라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일반인들의 취향을 가장 폭넓게 만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패밀리 세단이다.
  • 메르세데스-벤츠 B200: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넉넉한 실내와 짐 공간,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은 물론 짐을 싣고 내리기에도 편리한 설계 등 매력이 많다. 성능 얘기는 이 차와 어울리지 않는다. 겉모습에 대한 선입견만 없다면 대단히 매력적인 가족용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