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as_2007R

[ 오토카 2010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국내 경차 기준이 배기량 800cc 미만에서 1,000cc 미만으로, 차체 길이x너비 3.5×1.5m에서 3.6×1.6m로 커진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경승용차 기준변경에 대비하면서 일찌감치 유럽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기아 모닝이 기준변경과 함께 경차 시장의 오랜 강자였던 GM대우 마티즈를 제치고 단숨에 판매를 끌어 올린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뒤늦게 GM대우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라는 새 모델을 내놓으며 국내 경승용차 시장의 양대 모델은 새 경차 기준을 모두 따르게 되었다.

원래 국내 경차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고 난 후, 정부가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저렴하면서 경제성 높은 차를 널리 보급하자는 의도로 세운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처음 정부가 경차(당시에는 ‘국민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획을 세운 것은 1980년대 초반의 일이고, 첫 국산 경차인 대우 티코, 다마스, 라보가 나온 1991년만 해도 경차를 둘러싼 시장 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1998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잠깐 반짝했을 뿐, 2004년 경차 지원 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내수 시장에서 경차는 썩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수출이 아니었다면 경차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긴 고투 끝에 내수 시장에서도 여건이 갖춰지면서 경차 판매가 늘어난 덕분에 경승용차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내수에서는 상품성 향상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실내 공간 확보를 위해 차체 크기는 법적 기준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커졌고, 소형차의 세컨드 카 수요를 흡수하면서 안전 및 편의장비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오로지 승용차에 국한되어 이루어졌다. 승용차에 비해 판매대수가 적은 경상용차는 이런 발전의 혜택을 거의 입지 못해왔다.

국내 유일의 경상용차인 GM대우 다마스/라보는 독점 시장의 폐혜와 내수 시장에서 경차가 안고 있는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법규에 따라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변화만 이루어졌을 뿐, 지금의 GM대우 다마스/라보는 1991년 처음 등장했을 때와 거의 같은 뼈대를 쓰고 있다. 그 덕분에 너비는 지금의 경차 기준보다 무려 20cm 좁은 1.4m에 불과하다. 길이도 데뷔 때보다 85mm 정도 길어졌지만, 상용차 안전기준을 맞추기 위해 차체 앞쪽만 키워 놓은 기형적인 형태여서, 실질적인 실내 및 짐 공간은 20년째 그대로다. 경제성을 고려해 LPG를 쓰는 엔진은 믹서 타입에서 인젝터 타입으로 바뀌어 출력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티코 시절부터 이어져온 0.8L 블록도 거의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 차의 크기와 용도를 생각하면 힘이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다.

굳이 손대지 않아도 팔리는 차, 그나마도 한 달에 내수 시장에서 몇 백대 남짓 팔리는 차에 많은 돈을 투자할 생각이 쉽게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수 시장에서 1톤 트럭 판매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 그리고 마티즈와 모닝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품성 향상을 통해 판매가 늘어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제대로 된 한국형 경상용차도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개발비가 문제라면, 유럽 메이커들처럼 승용차를 바탕으로 한 경밴의 변형 모델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중국산 상용차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경상용차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대응하느냐는 전적으로 국내 메이커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