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한국판 2010년 1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그랜드 체로키’라는 이름의 이미지에, 이제는 럭셔리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지 브랜드뿐 아니라 크라이슬러 차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꿀 저력이 있다

다임러가 떠나고 남은 크라이슬러가 생존을 위한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위기의 자동차 메이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허리띠를 있는 힘껏 졸라매고,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다시 끌어 모으는 것이다. 회생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 크라이슬러가 처음으로 내놓은 새 모델인 지 그랜드 체로키는 앞으로 나올 크라이슬러 차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그랜드 체로키는 고급형과 오버랜드의 두 가지다. 고급형(이라고 쓰고 기본형이라고 읽는다) 모델에 비해, 시승차로 마련된 오버랜드 모델은 안전 및 편의장비가 더 풍부하고 실내에 가죽 내장재를 많이 써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특히 대시보드 위쪽 전체를 가죽으로 덮고 심심하지 않게 가로로 스티치를 넣은 덕분에, 실내 분위기는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고급형 모델과 확연히 다르다. 내장재 재질, 조립품질, 구성, 디자인 모두 유럽 브랜드 수준에 가깝고, 특히 값을 생각하면 매우 훌륭하다.

전체적인 디자인과 장비 구성은 요즘 많은 차들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어서 특색은 없다. 그러나 개성은 있을지언정 허술했던 구형을 떠올려 보면, 제대로 만든 차의 실내에 앉아있다는 느낌이 뚜렷하다. 훨씬 넓어진 실내공간도 인상적이다. 수치상으로는 2열 레그룸이 구형보다 10cm 늘어났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공간이 위아래로 커졌다. 1열은 물론 2열 좌석의 헤드룸도 구형에 비하면 훨씬 여유가 크고, 앞좌석과 달리 바닥에 튀어나온 부분이 적은 뒷좌석은 폭도 넓어 어른 3명이 앉아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뒷좌석에 앉은 상태에서도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절 레버는 최대한 잡아당기면 등받이를 완전히 앞쪽으로 접는다. 짐 공간은 골프백 여러 개를 넣기에도 충분할 만큼 넉넉하고 마무리도 상당히 깔끔하다. 앞좌석 주변의 수납공간은 깊고 넓어 쓰기 좋지만, 뒷좌석 수납공간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오버랜드 모델에만 들어가는 파워 리프트 게이트는 편리하긴 하지만, 닫을 때에는 짐 공간 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해서 주의해야 한다.

운전석에 오르면 우선 엄청난 굵기의 스티어링 휠에 압도된다. 전동 조절 시트를 적당히 높여 자연스러운 자세를 잡고 묵직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부드럽게 가속을 시작한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시절부터 개발이 시작된 V6 3.6L 펜타스타 엔진은 회전 질감과 반응이 좋다. 다만 공기저항 계수를 낮췄어도 여전히 크고 무거운 차체 때문에 힘의 여유는 크지 않다. 정지가속은 비교적 빠르지만 2단으로 넘어가면 회전수가 많이 떨어져 가속감이 둔해지기 시작하고, 고속으로 갈수록 그 정도는 점점 커진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뿐, 실제 주행속도는 느껴지는 것보다 빠르다. 5단 자동변속기는 변속감이 매끄럽지만 변속시간은 자동과 수동 모드 모두 조금 늘어지는 편이다. 

스티어링 반응은 비교적 묵직하지만 구형에 비해 더욱 정교해졌다. 고속으로 갈수록 센터에서의 반응이 헐거워지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이 역시 구형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 콰드라 트랙 II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의 뒷받침으로 온로드 핸들링은 더 든든해졌고, 급한 코너에서 차체 뒤쪽의 움직임도 안정감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브레이크다. 차의 무게가 느껴지기는 해도 고속에서도 고르고 깔끔하게 제동이 이루어지고, 밸런스도 뛰어나다. 방음도 우수한 편이어서 시속 150km를 넘겨도 풍절음만 어느 정도 들어올 뿐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승차감 역시 미국차 감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차분하고 정갈해 고속도로 주행에도 부담이 없다.

새롭게 추가된 셀렉-터레인 시스템과 오버랜드 모델의 콰드라-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은 온로드뿐 아니라 오프로드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랜드로버의 터레인 레스펀스 시스템과 비슷한 셀렉 터레인 시스템은 복잡한 조작 없이 주행환경에 맞춰 다이얼만 돌리면 되기 때문에, 험로에서의 부담감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시승차에는 온로드용 타이어가 끼워져 있었지만, 모래와 진흙, 돌길이 뒤섞여 있는 오프로드 코스를 달리면서도 멈칫하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일반 SUV라면 망설여질 모래밭을 헤치고, 부드러운 흙 언덕을 아무렇지 않게 슬쩍 올라 보면 새로운 장비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새 그랜드 체로키는 마치 움직임이 조금 둔한 메르세데스-벤츠 M 클래스같은 느낌이다. 주행감각도 많은 부분 닮아 있고, 실내 곳곳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흔적들도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모난 부분이 깎인 느낌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알차진 그랜드 체로키는 여러 모로 매력이 빛나는 차다. 디젤 엔진 모델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평점: 8.0/10

장점: 일취월장한 실내 꾸밈새, 값에 비해 풍부한 장비
단점: 덩치가 조금은 부담스러운 V6 3.6L 엔진, 숙성이 필요한 온로드 핸들링


NEW TECH

콰드라-리프트 시스템

지프 브랜드를 통틀어 처음으로 쓰인 에어 서스펜션이다. 이 시스템은 통합 주행제어 시스템인 셀렉-터레인과 어우러져 차의 주행상황에 알맞게 차체 높이를 자동 혹은 수동으로 조절한다. 노멀 모드에서는 최저 지상고가 205mm로 맞춰지고, 오프로드 주행 때에는 1단계로 33mm, 2단계로 다시 33mm를 더 높인다. 고속에서는 에어로 모드로 바뀌어 노멀 모드보다 차체가 15mm 낮아지고, 주차 때 차에 오르내리는 것을 편하게 해 주는 파크 모드에서는 차체가 노멀 모드보다 40mm 낮아진다. 모드를 수동으로 바꿀 때에는 셀렉-터레인 다이얼 왼쪽의 버튼 두 개를 이용한다. 노멀 모드와 오프로드 1단계 및 2단계는 하나의 버튼으로 조절할 수 있고, 파크 모드는 별도의 버튼으로 분리되어 있어 운전자가 수동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에어로 모드는 별도의 선택 버튼 없이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선택 또는 해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