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1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짬뽕을 먹으러 BMW 그란투리스모를 타고 떠난 길. 시대의 흔적이 뒤섞인 군산에서 맛본 별난 짬뽕은 음식과 도시, 그리고 차에 대한 묘한 감흥을 자아내는 키워드가 되었다

BMW 그란투리스모는 참 요상한 차다. 개인적인 취향을 접어두더라도, 독특한 차라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세단과 해치백, 왜건과 리무진, SUV와 미니밴의 특징이 여기저기에 뒤섞여 있다. 그러면서도 이름은 스포츠카의 한 장르, 즉 GT와 같다. 물론 스포츠카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라기보다 GT의 원래 의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편안하게 달리는 것이 BMW 그란투리스모의 지향점이다.

서울에서 결코 가깝지 않은 도시인 군산으로의 여정은 차의 이름이 제대로 지어진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다만 제약조건이 출발부터 마음에 걸린다. 예정보다 늦게 넘겨받은 차는 그날 중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시간 여유가 없지만, ‘한 번 주유로 갔다 오는 여행’이라는 개념에 맞추려면 빨리 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란투리스모의 정부공인연비는 9.8km/L. 70L가 들어가는 연료탱크는 계산상 700km를 달린 후에 비게 된다. 그러나 실제 주행연비가 어떨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일단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찾아본다. 한글 자모를 입력하기 위해 i드라이브 컨트롤러를 일일이 돌리고 누르는 일은 번거롭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상 주행거리는 250km에 가깝다. 공인연비대로라면 왕복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정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안심하기엔 이르다.

여정의 대부분은 고속도로 위를 지나게 된다.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 그래서 무엇보다 이전 세대 BMW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부드러운 승차감과 8단 자동변속기의 혜택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시트 조절을 몸에 맞게 세부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편한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니 출발하자마자 ‘갔다 와도 몸이 많이 피곤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급한 마음에 속도를 올려도 이런 편안함은 꾸준하다. 유난히 심하게 부는 바람에 차체가 기우뚱대고 넓은 타이어가 노면을 타는 것만 아니라면 거슬릴 것은 없다.

시속 100km로 정속 주행하면 회전수가 2천 rpm 아래를 맴도는 엔진은 실내로 거의 소리를 전하지 않는다. 그 속도 아래에서는 기어가 몇 단에 들어가 있든지 마찬가지다. 덕분에 실내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아늑하다. 그러나 직렬 6기통 3.0L 터보 엔진에서 나오는 306마력의 출력과 40.8kg·m의 토크는 좀처럼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차의 덩치가 만만치 않고, 사람이 타면 무게가 2톤을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적당히 여유를 즐기며 달리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런 성격상,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자꾸 넉넉한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진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다.

목적지인 군산 복성루는 중국음식점이다. 군산은 항구도시고, 짬뽕에는 해물이 들어간다. 항구도시의 해물음식은 아무리 맛이 없어도 기본은 하는 게 정상이다. 짬뽕이 이 집 대표 메뉴라는 얘기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는 아니라도 짬뽕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것은 오후 세 시쯤이었다.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식탁 다섯 개에 방 한 칸이 전부인 단출한 가게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인데도 그렇다. 옆에 누가 앉아 있든지 자리가 하나라도 비면 무조건 앉아야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도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쉬운 점은 천천히 맛을 즐길만한 여건이 못 된다는 것. 얼른 먹고 자리를 비워주는 게 이런 가게에서의 예의다. 잠깐 서서 기다리다 보니 다른 메뉴도 있지만 짜장면을 주문하는 몇 사람을 빼면 역시 짬뽕을 주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가가 올라서인지 지방인데도 5천500원인 짬뽕 값은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눈앞의 식탁에 짬뽕 한 그릇이 올라온다. 그릇이 크지는 않아도 쌓여 있는 홍합, 바지락, 꼬막, 그리고 오징어를 보니 비싸다는 생각은 싹 사라져 버린다. 짬뽕의 진짜 내용물인 면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신기하게도 맨 위에는 돼지고기 고명이 버젓이 올라가 있다. 코를 들이밀자 우선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우선 조개와 오징어부터 차근차근 먹어 치워 나간다. 오징어는 몸통을 그대로 썰어 고리 모양이 살아 있다. 보는 재미와 씹는 재미 모두 쏠쏠하다. 짬뽕과 함께 나오는 빈 양재기는 금세 조개껍질로 가득 찬다. 

이제 국물을 맛볼 차례다. 함께 들어 있는 시금치의 풀이 죽지 않은 걸 보면 재료를 볶은 후 육수를 더하는 식으로 제대로 만든 모양이다. 국물 속에 양파가 별로 없는 것도 유별나다. 한 숟갈 입안으로 들어간 붉은 국물은 매운 맛이 반짝 하지만 오래 남지 않고 금세 사라진다. 짠 맛도 강하지 않다. 국물이 뿌연데도 걸쭉하지도, 뒷맛이 텁텁하지도 않은 것이 신기하다. 한 숟갈씩 감질나게 먹기보다는 그릇을 들고 후루룩 들이켜도 괜찮다. 

이렇게 먹다 보니 면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윤기는 흐르지만 다른 내용물을 먹는 사이에 불었는지, 이를 살짝만 대어도 잘 끊어진다. 조금은 마무리가 싱겁게 됐어도 불만은 없다. 복성루 짬뽕은 풍성한 해물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갔다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복성루는 오후 4시까지만 장사를 한다. 4시 이전에라도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단다.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그 별난 짬뽕은 맛볼 수 없었을 거다.

그냥 짬뽕 한 그릇만 먹고 서울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주변의 명소를 몇 군데 돌아보기로 한다. 군산은 일제시대에 일본이 전라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거점으로 활용한 도시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급격한 성장이 없었던 탓에 구석구석 일제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옛 조선은행 건물과 군산세관, 국내 유일의 일본식 건축양식의 사찰인 동국사, 영화 ‘타짜’에 나와 유명해진 히로쓰 가옥 등 대표적인 명소들이 아니라도 구석구석 일본식 건물들이 눈에 뜨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옛 건물들 사이에는 최신식 건물에서부터 보기만 해도 ‘이건 1960년대, 이건 1980년대’하며 만들어진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건물들이 골고루 뒤섞여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짬뽕’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머릿속을 맴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짬뽕 같은 차를 타고 짬뽕을 먹으러 온 도시에서 시간이 빚어 놓은 짬뽕 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로 가는 길을 다시 서둘러야 하지만 군산은 ‘짬뽕’이라는 키워드로 언젠가 꼭 다시 찾고 싶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내려가는 데 절반이 소비된 연료는 올라오는 동안에도 그만큼이 쓰였다. 사무실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어 연료경고 메시지가 들어온다. 예상 주행가능거리가 100km 남았다는 뜻. 차를 반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체크한 트립 컴퓨터의 수치는 예상 주행가능거리 94km, 평균연비 9.1km/L였다. 하루 동안 508.3km를 달리고 얻은 결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아슬아슬 했지만 짬뽕 같은 차 그란투리스모는 원래 목표를 확실히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