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2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런 틈새 차종이 끼어들 여지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2004년에 메르세데스-벤츠가 CLS 클래스를 처음 내놓았을 때 든 생각이었다. 실물을 보고, 직접 시승해 보기 전까지만 해도 순혈주의자의 의식 속에 ‘4도어 쿠페’라는 표현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차를 타보고 나서 ‘4도어 쿠페’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나는 차의 드라이빙 감성을 차에 탄 네 사람이 거의 같은 수준으로 느낄 수 있음에 박수를 보냈고, 사람들은 내가 메르세데스-벤츠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색다른 스타일을 개성이라 말하며 CLS를 샀다.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독일 브랜드를 중심으로너도나도 ‘4도어 쿠페’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CLS의 아류 취급을 받지 않을 만큼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시장에서 이 파릇파릇한 장르가 자리를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예상을 깨고 크로스오버 SUV의 그것보다 훨씬 짧았다. 그리고 기술은 앞서갈지 몰라도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은 더딘 아우디는 이 장르에서도 역시 다른 브랜드들보다 한 발짝 뒤처져 그들만의 해석을 담은 A7 스포트백을 내놓았다.

있는 차를 활용해 변형 차종을 만든다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겠지만, CLS와 A7은 비슷한 소비자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밀면서도 내세우는 매력은 서로 다르다.
원조 4도어 쿠페인 CLS는 2세대로 진화하면서 1세대와는 또 다른 색깔을 담았다. 근본적으로는 스타일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스포티한 성격을 더 강조함으로써 정통 보수 4도어 세단인 E 클래스와 더 큰 차이를 두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아우디는 ‘이미 A6 세단도 충분히 스포티하다’라고 말하는 듯, 전체적인 스타일에서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서 차체 뒷부분을 바꾸는 것으로 차의 성격을 달리했다. ‘4도어 쿠페’, ‘스포트백’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지만, 순혈주의자의 기준으로는 CLS가 좀 더 멋지게 꾸민 E 클래스 세단인 것처럼 A7은 좀 더 멋지게 다듬은 A6 해치백일 뿐이다.
사실 디자인 때문에 차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점에서 두 차는 차를 보고 오너의 취향을 짐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CLS의 전체적인 차체 형태는 1세대 모델과 비슷하지만, 존재감은 더 뚜렷하다. 얼굴은 더 커졌고, 차체 옆면에는 바퀴 위를 감싼 면이 뒤로 가면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클래식카 분위기를 담았다. 뒤 유리와 거의 비슷한 각도로 매끄럽게 흐르는 트렁크 윗부분은 세단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드러운 느낌이 컸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는 박력 있는 근육질 느낌이 강하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나름의 박력이 느껴지는 A7이 오히려 CLS 옆에서는 여성적인 차처럼 느껴진다. 철저하게 패밀리 디자인의 요소를 따르고 있는 A7은 아무리 캐릭터 라인을 강조했어도 얌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낮고 넓은 차체는 어느 곳에서 보아도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옛 아우디 100 쿠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차체 뒷부분은 1970년대에 유행했던 패스트백 스타일의 흔적이 살짝 배어있다. A7에게 클래식한 느낌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른바 트렌디한 디자인임을 내세우는 아우디 아닌가.
운전석에 앉아보아도 두 차의 분위기 차이는 뚜렷하다.

CLS는 무뚝뚝하다 싶을 정도로 정갈한 분위기다. 수평적인 대시보드에 센터 페시아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정석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특히 크고 넓은 고광택 우드 그레인은 실내 분위기를 지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폭넓게 쓰인 풍부한 질감의 가죽은 매력적이다.
반면 A7의 대시보드는 대담하면서도 절제된 곡선과 곡면을 좌우로 넓게 펼치며 화려함을 진지하게 풀어냈다. 상대적으로 가죽이 덮고 있는 면적이 적은 A7은 깔끔한 반광택 우드 그레인이 매력적이다. 굳이 만져볼 필요는 없지만, 나뭇결이 살아있어 촉감도 좋고 보기에도 좋다.
장비 배치나 구성에는 차이가 있어도 무슨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고 운전하면서 기능을 활용하기 쉬운 것은 두 차가 거의 비슷하다. 그 밖에도 낮게 앉는 운전 자세, 스티어링 휠 뒤에 마련된 변속 패들, 엔진회전계와 속도계를 사이에 두고 컬러 디스플레이가 놓여 있는 계기판처럼 두 차가 닮아있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세부적인 차이에서 두 메이커의 차 만들기와 이런 틈새차종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CLS의 지름이 작고 두툼한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한 느낌이 강하다. 그 너머로 오른손을 뻗어 조작하게 되어 있는 기어 레버는 한편으로는 스포티함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운전하면서 기어 레버를 얼마나 자주 조작하는지 떠올려보자.
한편 계기판과 센터 페시아의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는 A7쪽이 좀 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CLS에는 없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운전의 집중도를 높여주는 훌륭한 장비다. 깔끔하게 배치된 MMI 컨트롤러도 시선을 종종 빼앗기는 하지만 조작방법에 쉽게 익숙해진다. 기어 레버가 빠진 자리를 싱겁게 처리한 CLS와 달리 A7은 다양한 장비를 알차게 채워 놓았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았을 때 A6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두 차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역시 뒷좌석과 짐 공간이다.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CLS는 센터 페시아에서 시작된 센터 터널이 뒷좌석 등받이까지 이어지며 차의 실내를 좌우로 갈라놓는다. 4인승 차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하게 꾸민 초대형 럭셔리 세단들처럼 편의장비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뒷좌석에서도 앞좌석에 앉았을 때와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공간은 물론이고,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의 쿠션 굴곡과 푹신함도 앞좌석과 거의 비슷하다. 지붕선이 매끄럽게 떨어지는데도 머리 위 공간에는 여유가 있다. 등받이 각도도 편안히 기댈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기울어져 있다. 세단과 같은 구조로 열리는 트렁크는 열리는 부분이 좁을 뿐, 트렁크 공간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크다.

두 차 가운데 어떤 차의 뒷좌석에 먼저 앉아 보더라도 여느 해치백이나 세단과 다를 바 없는 꾸밈새의 A7에서 풍요로운 느낌을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수는 있지만, 그 중에서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쿠션은 탄탄하고, 굴곡은 밋밋하고, 등받이 각도는 애매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머리 위 공간이나 어깨 주변 공간도 썩 넉넉하지 않다.
A7의 뒷좌석에 만족하려면 등받이를 접어 짐 공간을 넓게 활용할 일을 자주 만들어야 한다. 넓은 범위가 열리는 커다란 해치는 짐을 싣고 내리기 편리하지만, 짐 공간 자체는 바닥이 높아 큰 짐보다는 긴 짐에 어울린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많은 것을 의식했는지 해치 안쪽도 구석구석 깔끔하게 만든 것은 CLS보다 한수 위라고 인정할 수 있다.
달리는 방식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파워트레인 구성에서도 두 차의 공통점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자리에 모인 CLS 350과 A7 3.0 TFSI 콰트로에는각각 자연흡기 V6 3.5L 306마력과 슈퍼차저 V6 3.0L 310마력 직접분사 엔진이 올라간다. 변속기도 CLS는 7단 자동, A7은 8단 자동이다.
결정적으로 엔진에서 나온 구동력이 전달되는 것은 CLS에서는 뒷바퀴로 제한되지만 A7은 네 바퀴 모두다. 살짝 젖은 도로 위에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면 CLS는 잠깐이나마 헛돌려는 뒷바퀴를 구동력 제어장치가 억제하려 애쓰지만, 같은 상황에서 A7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뻗어나간다.

출발 때의 차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CLS의 자연흡기 엔진은 정점에 이를 때까지 자연스럽게 토크가 커지며 풍요로운 가속감을 만들어낸다. A7의 과급 엔진은 최대 토크가 CLS보다 훨씬 높고 가속되는 정도도 고르지만, 구동력이 네 바퀴로 분산되는 탓에 CLS 같은 후련한 느낌은 적다. A7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시간이 약간 더 짧은데도 CLS와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없는 이유다.
승차감과 핸들링에서는 두 차 모두 돋보이는 부분과 실망스러운 부분이 공존한다. CLS는 이전 세대는 물론 현행 모델의 바탕이 된 E 클래스(W212)보다도 한층 세련되고 탄탄한 승차감과 부드러우면서도 민첩한 핸들링이 돋보인다. 스티어링 조작에 부드러우면서 빠르게 반응하고,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생기 있는 엔진에 힘입어 차를 다루기가 좋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편안함은 남아있다. 그 편안함이 변속기에서도 조금 너그럽게 표현되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변속이 매끄러운 것은 좋지만 자동 모드에서든 수동 모드에서든 변속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어쨌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배기구를 빠져나오는 적당한 중저음이 운전재미를 돋우는 것은 분명하다.

A7은 기계식 콰트로 시스템을 쓴 아우디 차 가운데 S5 다음으로 핸들링이 매력적이다. 쉽게 느끼기는 어렵지만, 크라운 기어 센터 디퍼렌셜은 A6에 쓰인 셀프 로킹 방식보다 토크 배분 조절이 조금 더 빠르고 매끄럽다. 코너 정점을 빠져나오며 가속할 때 새 센터 디퍼렌셜의 혜택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앞바퀴의 접지력이 든든하게 받쳐주면서도 차의 머리는 빠르고 날카롭게 코너 탈출구를 찾아 나간다. 스티어링이 ‘민첩하다’는 표현을 이제 아우디에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지 충분한 토크를 뿜어내는 엔진과 변속충격이 거의 없으면서도 변속이 빠른 변속기도 날렵한 몸놀림을 돕는다. 하지만 차를 다루는 재미의 수준이 높아졌을 뿐, 뒷바퀴굴림 차의 깔끔한 느낌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승차감도 편안함과 탄탄함이 잘 어우러져 있지만, 세련미와 너그러움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철저하게 드라이빙이라는 관점을 중시한다면 이미 2세대로 진화해 숙성 단계에 접어든 CLS의 여유와 매력이 확실히 돋보인다. 차의 크기나 성격을 차에 탄 사람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차다. 그렇다고 A7의 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매력이 다른 부분에서 빛을 발할 뿐이다. A7 3.0 TFSI 콰트로에서 볼 수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파워 트레인과 섀시의 세부 조정이 가능한 드라이브 셀렉트, 완전 정지까지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의 장비들이 CLS 350에는 빠져 있다. 그런데도 값 차이는 거의 없다.
결론은 뚜렷하다. 편안하고 쾌적하면서 잘 달리는 차와 잘 달리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기술이 돋보이는 차 가운데 마음에 드는 쪽을 고르면 된다. 순혈주의자의 선택은 태생이 잡종이기는 해도 자동차의 본질을 더 깊이 있게 보여주는 CLS 쪽으로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