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시로코 2.0 TDI R-라인

[ 오토카 한국판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오토카 코리아 독자 중에는 시로코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첫 탄생은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골프와 비슷한 시기인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2년부터 2008년까지 16년간의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초월한 시로코의 부활은 데뷔 이전부터 인터넷과 각종 자동차 관련 매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물론 우리와는 동떨어진 얘기였다. 해외와 달리 인지도가 낮은 국내 형편 때문인지, 시로코는 유럽에서 6세대 골프보다 조금 앞서 데뷔했지만 국내에는 한참 뒤에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국내에서 골프가 길을 잘 터준 덕분이다.

오랜 공백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시로코는 골프와 제타의 스포티한 형제 모델이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고, 크기 면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물론 스타일과 이미지는 골프에 비하면 훨씬 스포티하고, 해치백이면서도 2도어 모델만 있는 쿠페 개념의 차다. 해외에서는 골프도 2도어 모델이 나오지만 다행히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아 시장이 겹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로코의 뿌리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국내에 들어온 2.0 TDI R-라인 모델은 앞서 국내에 들어온 6세대 골프 GTD와 2.0L TDI 170마력 디젤 엔진과 6단 DSG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공유한다. 0→시속 100km 가속(8.1초)과 최고시속(220km) 같은 성능과 관련된 수치도 똑같다. 시로코는 단지 눈에 보이는 부분만 스포티한 2도어 골프 GTD인 것일까? 이제부터 확인해볼 일이다.

지금 팔리고 있는 6세대의 원형인 5세대 골프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미니밴처럼 덩치가 커졌다고 했다. 어찌 보면 골프가 그처럼 비대해진 덕분에 시로코의 날렵한 모습이 나올 수 있었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헤드램프와 가늘어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시로코의 얼굴에 날카롭고 공격적인 인상을 심어놓았다. 옆에서 보아도 19인치 휠과 낮아진 지붕이 어우러져 간결한 선과 면으로 구성된 차체를 더 납작해 보이게 한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옆 유리도 그런 느낌을 강조한다. 앞 펜더에 붙은 R-라인 엠블럼과 차체색 사이드 몰딩, 크롬 머플러 트림과 도어 스카프 같은 R-라인 고유의 아이템들은 차체의 카리스마에 묻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밖에서 보았을 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속된 말로 ‘엉덩이가 빵빵’한 뒷모습이다. 어깨선 아래는 최대한 바깥쪽으로 벌려놓고 그 위는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차체는 근육질 느낌이 물씬하다. 특히 곡면을 따라 차체 바깥쪽으로 최대한 벌어져 있는 테일램프는 단순한 디자인인데도 차의 분위기를 당당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뒤 범퍼가 허리춤까지 올라오면서 해치 크기를 줄여놓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전체적인 차체 형태는 볼보 C30과 비슷한 방향을 취하고 있지만, 대담한 곡면이 강조된 시로코가 훨씬 더 스포티해 보인다.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꽤나 수수하다. 기본적인 틀은 골프와 같고, 실제로는 이오스의 요소들을 많이 활용했다. 좌석에 앉으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부분에 특별한 구석이 없어 쿠페를 지향하는 차의 스포티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다만 도어 트림과 앞좌석 가운데 놓이는 센터 터널 위쪽 부분은 시로코 고유의 것을 썼다. 특히 도어 트림은 손잡이 부분을 강조해 조금이나마 스포티한 느낌을 살렸다. 그 과정에서 사이드 미러와 파워 윈도 스위치가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다.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사이에 액정 디스플레이가 놓인 계기판도 폭스바겐 여러 차들에서 친숙한 모습이다. 스티어링 휠의 조절장치로 표시내용을 선택하는 액정 디스플레이는 조금은 구식처럼 느껴지는 흑백 도트 매트릭스 방식. 알루미늄 느낌으로 장식한 공기배출구 테두리와 스티어링 휠 스포크를 빼면 화려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 좌우 온도 조절을 개별 설정할 수 있는 공기조절장치 외에 전반적인 편의장비도 빈약한 편이다. 터치스크린 한편으로 DMB, 내비게이션, TPEG 버튼이 마련된 한국형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그나마 심심한 실내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앞 시트는 허벅지와 등 양쪽이 돌출된 세미 버킷 형태다. R 로고가 수놓인 헤드레스트와 쿠션 부분의 모양이 다를 뿐, 골프 GTI나 GTD의 것과 같은 설계인 듯하다. 거리와 각도, 높이는 수동으로 조절되고 허리받침 조절만 전동식이다. 쿠션이 비교적 탄탄한데도 몸 잘 잡아줘 편안하고, 앉는 높이도 비교적 낮은 편이다. 게다가 선루프가 없어 지붕이 낮은데도 머리 위 공간은 충분하다. 차체가 골프보다 넓지만 실내로 반영된 공간 차이는 거의 없다. 물론 어느 쪽도 불만스러울 만큼 좁지는 않다. 

두 명만 앉게 되어있는 뒷좌석은 머리 위만 좁을 뿐 좌우 공간이 넉넉하고 무릎공간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앞 시트 아래로도 발 놓을 공간은 충분하다. 다만 등받이가 곧추서있어 먼 거리를 달릴 때에는 쉬 피로할 듯하다. 앉는 부분이 약간 파여 있고 쿠션이 단단해서 앞좌석만큼은 아니어도 평범한 해치백보다는 몸을 잘 잡아준다. 등받이와 일체형인 뒷좌석 헤드레스트는 구멍이 뚫려 있지만 뒤 유리가 좁아 시야확보에 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뒷좌석에 사람이 앉으면 후방 시야는 거의 사이드 미러에 의존해야 한다. 작은 해치 덕분에 턱이 높은 트렁크는 크기가 골프보다는 작지만 2명분 여행용 가방을 싣기에는 충분하다. 공간이 부족하면 5:5 비율로 나누어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된다.

이제 가장 궁금했던 달리기 실력을 확인해볼 차례다. 보닛 아래에 놓인 2.0L TDI 디젤 엔진은 2.0L TFSI 휘발유 엔진과 더불어 폭스바겐 그룹 전체 브랜드 제품 라인업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수치상의 성능은 골프 GTD와 똑같다. 5천rpm부터 레드존이 시작되는 엔진회전계는 시동을 걸면 바늘이 800rpm 언저리를 가리킨다. 공회전 때에는 디젤차 특유의 소리와 약한 진동이 느껴지지만, 기어 레버를 D 위치로 옮기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하면 이내 사라진다. 시내에서의 승차감은 골프와 큰 차이가 없지만 약간 조여든 느낌이다. 요철을 지날 때에도 경박스럽게 튀지 않고 점잖게 충격을 걸러낸다. 거친 노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여유가 있다. 정지하기 직전에 약간 덜컥이는 DSG 특유의 반응은 다른 폭스바겐 차들과 비슷하다.

정체구간을 빠져나와 고속도로 위에 시로코를 올려본다.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꾸준히 속도를 붙여나가면 그동안 디젤차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굵직하고 특색 있는 배기음을 들을 수 있다. 가장 강한 가속감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은 1천500rpm 부근부터 시작된다. 3천rpm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약화되는 토크는 3천600rpm을 넘어서면 확연히 힘을 잃는다. 대신  6단 1천800rpm을 가리키는 시속 100km에서도 충분한 추월가속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고속에서도 하체는 차분하게 노면을 읽고, 적당한 무게를 유지하는 스티어링 휠과 자연스럽게 따르는 뒤쪽 차체 덕분에 든든한 마음으로 차선을 가를 수 있다. 골프 GTI, GTD와 같은 모양의 스티어링 휠과 기어 레버는 손에 쥐는 느낌이 좋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와인딩 로드로 접어들기 전에 잠시 차를 멈추고 숨을 고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어 레버를 수동 위치에 놓은 후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아 출발한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TCS가 작동한다. 찬바람에 식은 235/35 R19 피렐리 피-제로 타이어를 높은 토크가 헛돌게 하려는 것을 자제시키는 것이다. 굵직한 톤의 배기음처럼 시로코는 자극적이기보다는 후련하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 넉넉한 토크 덕분에 굳이 회전수를 높이 끌어올리지 않아도 필요한 힘을 필요한 시기에 활용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 조작으로 차의 앞머리를 다루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든든한 섀시는 훨씬 출력이 높은 엔진을 얹어도 충분히 감당할 것 같다. 보통 고출력 앞바퀴굴림 차와는 달리 특히 내리막에서 라인을 잡고 달리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폭스바겐의 토크 벡터링 시스템인 XDS에 있다. 코너링 한계에 가까워지면 어쩔 수 없이 언더스티어가 답답함을 부추기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차를 다루는 것이 즐겁다. 휘발유 엔진 차라면 바짝 긴장하며 코너를 헤집었겠지만,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도 날렵한 디젤 해치백은 부담 없이 편하게 다음 코너로 인도한다. 골프에 비해 차체 롤링이 적은 것도 주행감각에서 시로코만의 색깔을 느끼게 해 준다. 

또 다른 재미를 주는 부분은 연비다. 시승거리는 평소보다 짧은 150.3km였고,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다양한 코스를 다양한 주행패턴으로 달렸는데도 평균연비는 15.0km/L를 기록했다. 공인연비인 15.4km/L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치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 구간에서 정속주행할 때 연비가 20.0km/L를 넘나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성격의 다른 차에서 이런 연비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시로코 2.0 TDI R-라인의 실체를 정리할 때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과연 이 차는 그저 스포티하게 꾸민 2도어 골프 GTD에 지나지 않는 걸까? 물론 골프의 흔적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로코에서는 골프에서 기대할 수 없는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그 개성은 겉모습뿐 아니라 주행감각에서도 드러난다. 골프가 쓸모 있는 해치백에 스포티한 감성을 담았다면, 스포츠카의 성격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로코는 이 차가 해치백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부연설명을 모두 지워버리면 정통 스포츠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디젤 엔진은 시로코를 GT의 영역까지 넘보게 만든다. 이 섀시에 고회전 휘발유 엔진을 얹는다면 또 다른 색깔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시로코 R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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