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3년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세단 모델에서는 뒷바퀴 굴림 차 일색인 BMW가 자사의 AWD 시스템인 x드라이브를 5시리즈 투어링에 더해 들여온 것은 아마도 왜건이라는 장르 자체만으로는 쉽게 소비자를 끌어당기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는 덤 하나에 4계절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덤을 얹어야 왜건이 좀 팔리지 않겠나 싶지 않았을까. 왜건 같은 SUV만 잔뜩 늘어놓은 브랜드답지 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이 유난히 춥고 폭설이 잦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뒷바퀴 굴림 차보다는 네바퀴 굴림 차가 엄동설한 속을 몰고 다니기에 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번 겨울은 5시리즈 투어링의 AWD가 그저 덤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좋은 기회다. 나아가 시승차는 계절에 맞게 윈터 타이어를 끼우고 있다. 한겨울에도 여름용 타이어를 끼운 시승차를 버젓이 내놓는 브랜드도 많다. 업체의 차를 대하는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시승차인 525d 투어링 x드라이브는 운전 재미가 뛰어나다고 이야기하기는 망설여진다. 사실 이 차만 그런 게 아니라 몇몇 특색 있거나 고성능이 강조된 몇몇 모델을 빼면 요즘 BMW 차들이 거의 그렇다. 그나마 뒷바퀴 굴림 차들은 전통적인 BMW의 정확한 스티어링 감각이 남아 있어 심심함이 덜하다. 하지만 x드라이브가 들어간 이 525d 투어링은 BMW치고는 주행감각이 꽤나 밋밋한 편이다. 특히 눈길 위에서는 특별한 느낌이 없다.

뒷바퀴 굴림 차의 움직임 특성을 살리기 위해 뒷바퀴 쪽으로 전달되는 토크 배분 비율을 높게 맞춰 놓았다고는 해도 미끄러운 노면이 태반인 겨울철 도로를 달리면서 ‘아, 역시 BMW의 손맛이 살아 있군.’하며 감탄할 일은 거의 없다.

또한 디젤 엔진의 토크가 워낙 높다고 해도, 그리고 엔진에 터보차저를 두 개나 달아 배기량에 비해 큰 힘을 이끌어냈다고는 해도 직렬 4기통 2.0L 엔진은 이 큰 덩치를 밀어 붙이며 운전자가 ‘나쁘지 않네!’라고 하기에 딱 알맞은 만큼의 힘만 낸다. 나아가 가속할 때 앞바퀴로 옮겨지는 토크는 가속감을 깎아먹는다. 그리고 BMW는 x드라이브가 주행상태를 미리 예측해 적극 대응하는 인텔리전트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골치 아픈 빙판 위에 올려놓아 보면 간혹 똘똘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BMW치고는 조금 둔한 주행감각을 반드시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를 희석한 BMW는 다른 쪽에서 즐거움을 준비해 놓고 있다. 아쉬움 속에서도 여전히 BMW의 쌓인 내공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x드라이브 시스템은 전자장비 의존도가 높다는 구조적 한계에 관한 의심을 씻어버릴 만큼 접지력 확보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어차피 지상고가 SUV처럼 높지 않은 이상 본격적인 오프로드에 뛰어들기는 무리지만, 다져진 눈길 위에서는 제법 속도를 높여도 쉽사리 몸놀림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차체 무게가 그리 가볍지도 않은데 차를 다루기가 수월하다. 무게중심이 낮고 동적인 밸런스가 뛰어난 덕분이다.

궂은 날씨에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지상 교통수단은 역시 철도다. 525d 투어링 x드라이브는 겨울에 흔한 얼고 젖고 질퍽한 길 위에서도 마치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올곧게 제 갈 길을 간다. 앞서 이야기한 윈터 타이어가 제 역할에 충실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올드 BMW 마니아들이 요즘 BMW 차에서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인 너그러운 승차감은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는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운전자가 차를 즐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많은 눈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면 이 차의 또 다른 진가가 드러난다. 고속도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반경이 큰 커브를 고속으로 달릴 때,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으면 탄탄한 섀시와 AWD의 시너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른 듯해도 염화칼슘이 남아 있는 아스팔트를 네 바퀴가 움켜쥐고 가속도를 감내하는 차체, 그러는 가운데 동요 없이 깔끔하게 방향을 유지하도록 적당한 무게로 응답하는 스티어링 휠이 든든하다. BMW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525d 투어링 x드라이브는 눈길보다는 아스팔트 위에서가 덜 밋밋하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디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