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매거진 2013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험로주행용 4륜구동 차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를 승용차에 접목하기까지 아우디는 여러 과제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 참신한 기술과 더불어 호쾌한 성능을 지닌 아우디 콰트로는 WRC를 비롯한 세계 여러 주요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7년 2월, 아우디 섀시 엔지니어인 외르그 벤징어(Jörg Bensinger)는 핀란드에서 폭스바겐 일티스의 동계 시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일티스는 엔진 출력이 높지 않아 마른 노면에서 빠른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가벼운 차체와 4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눈길과 진흙탕에서 탁월한 주행능력을 보여주었다. 벤징어는 이것을 보고 승용차에 4륜구동 시스템을 접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티스의 4륜구동 시스템 구성요소는 대부분 아우디 승용차에서 가져온 것이어서, 그는 큰 무리 없이 승용차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정식 개발 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벤징어는 당시 아우디 기술개발 담당 이사였던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ëch)의 지원 하에 아우디 선행개발 담당 이사인 발터 트레저(Walther Treser)와 협력해 아우디 80 2도어 쿠페에 4륜구동 시스템을 얹은 시험차를 만들기로 했다. 4륜구동 1호차라는 뜻을 지닌 A1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은 이 차에는 한스 네드비덱(Hans Nedvidek)이 설계한 4륜구동 시스템이 쓰였는데, 이 시스템은 일티스의 것과 매우 비슷했다.

1977년 9월에 아우디 이사회로부터 개발 개시 승인을 받아 EA 262라는 개발명을 얻은 4륜구동 승용 모델은 폭스바겐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위해 1978년 1월에 오스트리아 트라커 회헤(Turracher Höhe)에서 시험을 치렀다. 유럽에서 가장 가파르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곳은 눈길 주행 시험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작고 가벼운 4륜구동 시스템 만들어

시험차를 받은 폭스바겐 그룹 개발담당 이사 에른스트 피알라(Ernst Fiala)는 부인에게 직접 차를 몰아보라고 내어주고 의견을 들었다. 비엔나로 쇼핑을 다녀온 피알라 부인은 차가 통통 튀기고 주차하기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는 앞뒤 차축 사이의 회전차를 상쇄할 센터 디퍼렌셜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피알라는 개발 팀에게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고, 설계를 맡은 한스 네드비덱과 프란츠 텡글러(Franz Tengler)는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일반적인 4륜구동 차에서는 구동력을 앞 차축으로 전달하기 위해 트랜스퍼 케이스를 사용했지만, 시험차인 아우디 80에는 트랜스퍼 케이스를 놓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이런 난제를 놓고 네드비덱과 텡글러는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는데, 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속이 빈 중공 샤프트 안에 여러 개의 베벨 기어를 맞물려 구동력을 앞바퀴로 전달하도록 한 것이었다. 작고 가벼우며 간단한 설계하게 구동력 배분기구를 만들 수 있었던 덕분에 작은 크기의 차체에 4륜구동 시스템을 얹었고, 이러한 구조는 이후 아우디 고유의 4륜구동 시스템인 콰트로(quattro)의 설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최종 시험은 성공리에 끝났고, 곧 양산이 결정되었다. 엔지니어들은 당시까지 나온 4WD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4륜구동 시스템의 가볍고 간단한 설계에 매료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우디의 첫 4륜구동 승용차 콰트로(Quattro)가 탄생해 1980년 3월 3일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80 쿠페의 차체를 가지고 만들었지만, 바퀴 주변을 부풀린 펜더와 4륜 독립 서스펜션 및 디스크 브레이크, 고급스럽게 꾸민 실내로 80 쿠페와 차별화 했다.. 또한 험로에서 주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운전자가 잠글 수 있는 센터 및 리어 디퍼렌셜을 갖췄다. 엔진은 이전에 쓰이던 직렬 5기통 2.1L엔진에 터보차저를 다는 등 고성능으로 개조했고, 변속기는 5단 수동 한 가지뿐이었다. 아울러 콰트로는 전자제어 엔진제어 시스템을 초기에 도입한 차 중 하나였다.

400대 생산 목표가 1만 1,452대로

아우디는 처음에 콰트로를 경주용으로 개발할 생각이어서, 인증에 필요한 최소 생산량인 400대만 생산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이 뜨거워 유럽에서만도 일반 아우디 쿠페의 2.5배 남짓 하는 비싼 값에도 400대 이상 팔 수 있음이 입증되었다.

FIA로부터 경주차 인증을 얻어낸 아우디는 곧장 세계 랠리 선수권(WRC)에 콰트로를 투입했다. 초기 버전에서는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뗄 때 갑자기 오버스티어 현상이 나타나고 브레이크가 너무 일찍 잠겼다. 이런 단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콰트로는 랠리 무대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WRC에서는 한누 미콜라(Hannu Mikkola), 미셸 무통(Michele Mouton) 등 쟁쟁한 드라이버를 기용해 큰 관심을 끌었다. WRC 출전 첫 해인 1981년에는 종합 순위 5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드라이버 챔피언과 매뉴팩처러 챔피언에 모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탁월한 접지력과 성능으로 WRC 타이틀을 모두 휩쓸게 되자, FIA는 규정을 바꾸어 콰트로의 출전을 원천봉쇄했다. 그러자 아우디는 무대를 북미로 옮겨 트랜스앰(Trans-Am) 및 IMSA 경주에 출전해 마찬가지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1985년에 후속 모델 격으로 나온 스포트 콰트로(Sport Quattro)는 더욱 모터스포츠에서 성과를 거두었는데, 짧아진 휠베이스, 480마력으로 출력이 높아진 엔진 등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특히 스포트 콰트로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에서 열린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서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해 탁월한 성능을 입증했다. 여러 모터스포츠 무대를 휩쓴 아우디 콰트로는 1991년 3월 1일에 마지막 생산차가 출고되기까지 모두 1만 1,452대가 생산되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공장을 빠져 나온 차는 독일 잉골슈타트의 아우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