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5년 5월호에 쓴 글의 원본입니다 ]
럭셔리 세단에 하이브리드 대신 디젤 엔진을 선택한 마세라티의 결정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 모두 디젤 엔진의 특성을 마세라티 고유의 감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율했다. 절대적 성능은 중요하지 않다. 마세라티 디젤은 운전이 즐겁다.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형제 브랜드가 되면서, 사람들은 마세라티를 흔히 ‘도어가 4개 있는 페라리’로 비유하곤 한다. 차의 심장인 엔진을 중심으로 비슷한 색깔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곳곳에 엿보이기 때문이다. 기블리까지 4도어가 된 요즘에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아주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세라티가 세단에 디젤 엔진을 얹기로 결정한 뒤로는 두 브랜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조금 느슨해졌다.
페라리에는 디젤 엔진이 없다. 지난해 디젤 모델을 본격 출시하기 전까지의 마세라티도 마찬가지였다. 페라리는 자동차 시장에 피할 수 없는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디젤 엔진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세라티는 다르다. 바라보는 시장도 그렇고, 차의 성격도 그렇다. 친환경, 고연비라는 과제를 놓고 페라리가 선택한 하이브리드의 길 대신 디젤 엔진이라는 고전적인 대안을 고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히려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마세라티에게는 고유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가 주어졌다.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차의 성격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더욱이 휘발유와 디젤처럼 특성이 다른 엔진의 영향력은 매우 크고, 럭셔리 브랜드의 세단에 휘발유 엔진 대신 디젤 엔진을 얹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 될 수 있다. 소비자의 차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련미와 성능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세라티처럼 개성이 강한 브랜드라면 디젤 엔진의 특성을 개성 속에 녹여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처럼 복잡한 과제를 마세라티가 어떻게 풀어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몰아보는 것뿐이다. 지난해 부산 모터쇼에서의 공식 데뷔에 이어 국내 판매가 시작된 후 시간은 조금 흘렀지만, 디젤 모델만의 특성에 집중하며 기블리를 먼저, 콰트로포르테를 나중에 시승했다.
빠른 페이스를 유지해야 생기를 얻는 차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마세라티의 차들은 빨리 달려야 편안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차의 특성이 제대로 살아나 운전자가 차와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빨리 달린다’는 단순히 속도만 빠른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주행조건이 어떻든 빠른 페이스를 유지해야 차가 생기를 얻는 것이 마세라티다. 운전에 열정을 담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성격의 차다.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도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돌리는 스티어링 휠, 덩치가 부담스럽지 않은 몸놀림을 지녔으면서도 복잡한 시내보다는 한가한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를 내달리는 쪽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디젤 모델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서 있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공회전 상태에서는 디젤 엔진 특유의 끓는 듯한 소리와 더불어 가늘고 묵직한 진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여느 디젤과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보통 V6 디젤 엔진의 배기음에는 고유한 박자가 있다. 마세라티 디젤 엔진은 그 박자가 튀는 부분에 날이 서 있지 않는 것이 독특하다.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가 같은 엔진을 쓰기 때문에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진동이나 소리의 색깔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콰트로포르테쪽이 조금 더 걸러져서 전달될 뿐이다. 정제되고 세련된 맛을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어도, 디젤 세단으로는 나쁘지 않고 운전자를 적당히 자극하는 애피타이저 역할은 충분히 한다.
그러나 차는 서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의 감각이 중요하다. 디젤 엔진은 터보가 힘을 밀어주기 전까지의 저회전에서 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흡기압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갑자기 토크가 커지며 힘차게 가속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토크 변화를 불편해할 수 있다. 마세라티 디젤은 좀 다르다. 물론 저회전에서 반응이 조금 더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토크가 커지는 시점까지 끌고가는 방식이 다르다. 갑자기 큰 토크가 다가오지 않도록 매끈하게 이어간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다음에 이어질 반응이 어떨지 알고 들어가는 것과 모르고 들어가는 것의 차이는 크다. 머리가 방향을 트는 것을 다루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가속이 가팔라지는 시점까지도 점진적으로 커지는 토크는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의 그것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정지가속 시간만 놓고 보면 휘발유 엔진보다 늦지만, 힘 좋게 주욱 치고 나가는 감각은 제법 화끈하다. 차체가 작고 가벼운 기블리와 덩치가 더 크고 무거운 콰트로포르테의 힘이 받쳐주는 느낌에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재미있다. 배기음은 가속할 때만 우렁차고, 전반적으로 굵직한 톤의 소리가 차분하게 실내에 이어진다. 액셀 반응은 일반 모드에서도 시원한 편이지만, 스포트 모드로 전환하고 나면 일반 모드가 부드럽다는 생각이 든다. 페이스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반응이 빨라졌다는 느낌이 뚜렷하게 든다.
두툼한 저회전 토크로 자연스러운 가속감

일반 모드에서 엔진은 깊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3,000rpm 언저리까지 끌고 올라가 변속한다. 다음 단으로 넘어가도 토크가 충분히 살아있는 영역을 바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가속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속도를 유지하게되면 낮은 회전수를 고수한다. 시속 100km에서의 엔진회전수는 1,400rpm 남짓. 정속 주행 때의 실내는 아주 조용하다.
엔진 회전계의 레드존은 4,500rpm부터 시작한다. 요즘 디젤 승용차를 보면 출력에 초점을 맞춰 조율한 엔진에 회전한계가 5,000rpm이나 5,500rpm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에 비하면 고성능 차 이미지가 강한 마세라티의 디젤 엔진이 비교적 회전한계가 낮은 것은 조금 의외다. 한편으로는 수치상의 출력을 높이기 위해 회전영역을 넓히는 대신 저회전 토크를 두툼하게 만들어 자연스러운 가속감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사실 항상 출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대개 디젤 엔진의 출력은 같은 배기량 휘발유 엔진의 것을 밑돈다. 정작 가속에 영향을 주는 토크에 관해서는 단위가 낯설어서인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마세라티 디젤은 수치보다는 실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 대형 세단에서 만날 수 있는 ZF 8단 자동변속기는 마세라티에서도 뛰어난 특성을 보여준다. 디젤 엔진의 높은 토크도 빠르고 매끄러운 변속에 흠집을 내지 못한다. 기어 레버 옆에 있는 M 버튼을 누르면 수동 모드로 전환되고, 기어 레버를 밀고 당기거나 변속 패들로 단을 바꿀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이 아니라 스티어링 컬럼에 놓인 변속 패들은 위아래로 길게 뻗어 있어도 코너링 중에는 조작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러나 손 끝에 닿는 감각도, 찰칵거리는 조작감도 모두 각별하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전자식 버튼을 누르는 밋밋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마세라티의 변속 패들은 운전자에게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이 기계라는 느낌을 준다.
고속에서도 디젤 엔진이 내는 소리는 휘발유 엔진의 자극적인 높은 톤의 목소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우렁차고 갈라진 듯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층 묵직하고 낮은 톤으로 내뱉는다. V6 엔진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박자로 쏟아내는 배기음은 사실 액티브 사운드 시스템이 빚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배기가스 흐름을 조절해 배기음의 낮은 울림을 더 탄력있게 바꾸어 놓는다. 차가 서 있을 때 기어 레버 옆의 스포트 버튼을 누르면 금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속 때 몸으로 전달되는 토크의 묵직함을 귀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프론트 미드십에 가까운 엔진 배치는 디젤 엔진 고유의 단점 하나를 상쇄한다. 디젤 엔진은 구조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차체 중심에 가깝게 배치해 움직임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마세라티의 디젤 엔진은 경쟁 회사들의 최신 디젤 엔진보다 좀 더 무겁다. 가능한 한 엔진을 뒤쪽으로 놓는 것이 더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기블리보다 차체가 긴 콰트로포르테가 코너에서의 움직임이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것도 이런 물리적 특성이 영향을 준 결과다.
뛰어난 움직임의 균형이 운전을 즐겁게 해

몸놀림의 차이일뿐. 차체가 긴만큼 앞쪽이 가볍게 돌아가는 느낌이 약간 덜하지만 콰트로포르테 쪽이 앞뒤의 일체감은 더 크고 전반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기블리가 액셀로 컨트롤하는 느낌이 더 크다면, 콰트로포르테는 몸 전체로 움직임을 잡는 느낌이 더 크다. 긴 휠베이스는 대부분 실내공간에 쓰이고 오버행 차이는 크지 않아, 휘청하거나 휘둘리는 느낌도 별로 없다. 움직임에 진지함이 더해져 있는 셈. 차분함이나 밸런스는 오히려 콰트로포르테쪽이 더 낫게 느껴진다.
이처럼 움직임의 균형이 뛰어난 덕분에 스티어링 휠을 돌릴때 느껴지는 차의 움직임이 좋다. 머리를 돌리는 반응도 빠르고 차체 뒤쪽도 제법 잘 따라온다. 다소 야성적인 승차감과는 또 다른 맛이다. 무뚝뚝하거나 성의 없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아슬아슬한 반발력이 감각을 증폭시킨다. 타이어 단면 프로파일이 조금 더 얇으면 반응이 더 빨라질 듯하다. 승차감은 착 가라앉아 달린다는 느낌보다는 적당히 여유를 두고 타이어가 노면을 누르는 느낌이다. 상하움직임은 억제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살짝 떠 있는듯한 느낌이다. 차체가 단단해서 잘 받쳐주는 스타일이다. 코너링 도중에 요철을 만나면 살짝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차의 움직임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스티어링 휠로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
기블리든 콰트로포르테든, 영국 차의 아슬아슬한 세련미, 독일차의 깔끔하고 정교한 움직임과는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친 듯하면서도 모든 움직임에 생기가 있다. 노면과 차, 차와 사람이 서로 동떨어진 느낌 없이 끊임없는 움직임과 반응을 주고 받는다. 물론 휘발유 모델의 짜릿한 사운드와 화끈한 몸놀림이야말로 마세라티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표현되는 방식이 다를뿐, 자극적이라는 면에서는 지난 세대부터 이어진 마세라티의 특징은 디젤 모델에서도 느낄 수 있다.
경제성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성능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다른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이 세단에 디젤 엔진을 얹으면서 했을법한 고민이다. 그러나 마세라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 과제를 풀어냈다. 경제성과 성능이라는 이성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대신, 달리기의 질감이라는 감성적 관점으로 디젤 엔진의 특성을 활용했다. 이렇게 캐릭터가 살아 있는 달리기를 보여주는 디젤 세단은 마세라티뿐이다. 진짜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이라면 필요가 구매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세라티가 디젤 세단에서도 이성보다 감성의 즐거움을 살리려 애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