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브랜드입니다. 최근까지 그리고 지금 팔리고 있는 모델을 봐도 알 수 있죠. 콰트로포르테, 기블리, 르반떼에 이어 아직 우리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최근 선보인 MC20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중성보다는 상징성을 추구한 MC20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델들은 제법 오랫동안 접해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비교적 새 모델에 속하는 르반떼가 어느덧 데뷔 후 5년이 되었고,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는 몇 달 차이가 나지 않는 8살 동갑내기입니다.

물론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는 머지 않아 신세대 모델에게 자리를 넘겨 줄 겁니다. 그렇긴 해도 마세라티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이산화탄소 감축’이라는 불덩어리부터 치워야 합니다. 게다가 앞으로 몇 년은 더 버텨야 할 르반떼와 조만간 출시될 그라칼레는 모두 덩치 크고 무거운 SUV입니다. 동력계 전동화가 절실하다는 얘기죠. 그러나 소규모 업체로서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만큼 전략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작된 마세라티의 전동화는 지난해 선보인 기블리 하이브리드로 첫 결실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오토 상하이 2021(상하이 모터쇼)에서 두 번째 전동화 모델인 르반떼 하이브리드가 공개되었습니다. 마세라티는 르반떼 하이브리드를 ‘브랜드 첫 전동화 SUV’라고 이야기합니다. 판매 모델 중 르반떼가 유일한 SUV니 당연한 얘기죠.
별다른 수식어 없이 ‘하이브리드’라고 부르는 것은 좀 과장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구동력을 만드는 데 전기 모터의 역할이 큰 일반 하이브리드와 달리, 마세라티는 필요할 때에만 전기 모터가 잠깐씩 엔진에 힘을 더하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쓰거든요. 물론 잘 쓰면 효과적인 기술이긴 합니다.

르반떼가 기블리 설계에서 파생된 모델인 만큼, 르반떼 하이브리드의 기본 동력계 구성은 앞서 선보인 기블리 하이브리드와 거의 같습니다. 브레이크 캘리퍼, 앞 펜더 공기 배출구 장식, C 필러 로고 바탕 등을 파란색으로 칠한 것도 공통점입니다.
핵심인 동력계를 보면, 330마력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에 48V 전기 시스템 기반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최고출력 9kW(12마력)인 벨트구동 스타터 제너레이터(BSG)와 0.35kWh 용량 48V 배터리, 감속 에너지 회수 기능도 있고, 터보 랙을 줄이는 이부스터(eBooster) 전동 슈퍼차저도 쓰입니다.
물론 르반떼에 특화된 기술들도 있습니다. 우선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마세라티의 4WD 시스템인 Q4와 결합한 것은 르반떼 하이브리드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기블리 하이브리드에는 없었던 세일링(Sailing) 기능도 추가되었습니다. ICE 모드로 주행할 때 작동하는 이 기능은 정속 주행 등 엔진 부하가 적게 걸릴 때 엔진 동력 연결을 해제해 구동저항으로 낭비되는 연료를 줄이는 기능이죠.

마세라티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동력계가 여러 장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종합적으로, 르반떼 하이브리드는 V6 엔진을 얹은 르반떼보다는 효율이 뛰어나고, V6 디젤 엔진을 얹은 르반떼 디젤보다는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이 마세라티의 주장입니다. 게다가 동력계 무게가 다른 V6 엔진 모델보다 가볍고 48V 배터리를 차체 뒤쪽에 배치한 덕분에 앞뒤 무게배분 비율이 50:50에 가깝다고 합니다. 즉 다른 르반떼보다 핸들링이 더 민첩하다는 겁니다.
마세라티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V6 엔진 모델들과 몇몇 제원을 비교해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연비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최고속도와 가속 성능,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보면 마세라티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기블리와 마찬가지로 인공적인 소리를 내지 않고 하드웨어 튜닝만으로도 스포티한 배기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직접 들어보고 평가하고 싶네요. 웬만해선 4기통 엔진 차에서 6기통 이상 엔진의 음색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나머지 부분들은 앞서 공개된 2021년형 르반떼와 거의 비슷합니다. 안드로이드 OS를 활용해 새로 개발한 마세라티 커넥트(Maserati Connect)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새로 쓴 것이 대표적입니다. 다양한 앱을 설치해 활용할 수 있고, 일부 기능은 원격 확인 및 관리가 가능하고,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트 등 음성인식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강렬한 브랜드 이미지에 비하면, 기블리는 물론 르반떼 하이브리드도 전동화 수준은 은근한 정도에 머뭅니다. 하지만 급진적 전동화는 이래저래 마세라티에게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추진할 여력이 없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칫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개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죠. 앞서 이야기했듯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시작한 마세라티의 전동화 전략이 원래 의도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기블리 하이브리드와 르반떼 하이브리드를 직접 경험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겠죠. 국내 판매 개시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