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한국판 2016년 9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언제까지 미국 스포츠카가 덩치 큰 허당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새 카마로 SS를 내놓으며, 쉐보레는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독심술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자동차 평론가 류청희는 그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몰아본 뒤 똑같은 소리를 했다

세월이 흐르며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미국 차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의 선입견은 아직 크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스포츠카에 대한 인식은 더 그렇다. 덩치 크고 힘은 세지만 승용차와 다를 바 없이 직선 도로에서만 잘 달리고 기름 많이 먹는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런 성격이 강한 차들이 많았다. 사실 그런 특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미국 스포츠카가 극복해야 할 굴레였다. 미국 이외 시장에서 포드의 머스탱, 쉐보레 콜벳과 카마로에게 주어진 역할이 바로 그런 굴레를 벗는 것이다. 

마침 한국 GM이 신형 카마로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팔리지 않으면 금세 판매를 중단했던 과거 몇몇 모델을 돌아보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전 세대 모델이 국내에서 별로 주목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도 후속 모델을 들여오기로 결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 카마로 출시는 과연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근거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의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겠다는 생각으로 새 카마로를 만났다.

차체 크기는 이전 세대보다 조금 작아졌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커지는 일반 승용차와는 반대다. 물론 전체적으로 크기가 줄었으면서도 여전히 길이는 4.78m에 이른다. 휠베이스도 2.81m로 웬만한 중형 세단에 버금간다. 날을 세워 단단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은 너비는 1.9m나 되면서 높이는 1.35m에 불과한 차체에 입혀지면서 날렵하고 안정감 있는 스포츠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옆에서 본 모습은 머슬 카와 포니 카 전성시대부터 이어지는 3박스 쿠페의 전형적 스타일이다.

오리지널 카마로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디자인 방향에는 이전 세대 모델이 더 충실했다. 새 카마로는 기본적인 틀은 이어받으면서 좀 더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얇아진 앞뒤 램프는 틀 안에 담은 램프와 베젤 디자인에 이전 세대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보닛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를 잡은 공기 배출구는 모양에 그치지 않고 안쪽이 뚫려 있어 제 기능을 한다. 트렁크 리드에 붙은 고정식 리어 스포일러도 디자인은 단순하다. 간결하고 박력 있는 디자인의 5 스포크 20인치 알로이 휠은 낮은 차체에 공격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긴 도어를 열면 두툼해 보이는 앞좌석과 대시보드가 펼쳐진 실내가 맞이한다. 각종 스위치를 포함한 내장재 재질이 고급스러워졌지만,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겉모습처럼 실내도 전통적인 요소를 감추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살렸다. 변화가 스포츠카다운 스타일을 제대로 표현하는 쪽을 향하고 있음은 장비 배치에서 드러난다. 운전과 직접 관련 없는 대부분의 장비를 시선에서 먼 곳으로 옮기고 차지하는 공간도 크게 줄인 것이다.

대시보드 한가운데 돌출된 센터 디스플레이를 빼면 시선이 바로 닿는 곳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다. 계기판 너머 앞 유리에는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HUD 위치와 밝기, 표시내용 조절 버튼은 스티어링 휠 왼쪽 뒤 대시보드에 놓았다. 이전 세대에서 기어 레버 앞쪽에 있던 변속기 온도계, 전압계, 유온계, 유압계는 계기판 가운데 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겨 확인하기 쉽다. 편의장비는 트렌드를 반영해 모바일 기기를 고려한 부분들이 눈에 뜨인다. 쉐보레 마이링크를 쓸 수 있는 터치 스크린은 햇빛 반사를 피할 수 있게 아래쪽으로 기울였지만, 차 위치에 따라 기어 레버 주변이 비치기도 한다. 스마트폰 연결 기능은 우선 애플 카플레이만 사용할 수 있다. 주요 기능 한글 표시나 한국형 DMB 등 국내 실정에 맞춘 부분들도 보기 좋다. 센터 콘솔 뒤쪽에는 무선 충전기능이 내장된 받침대가 있다. 공조관련 버튼은 모니터 아래에 1열로 가늘게 늘어서 있다. 센터 페시아 맨 아래에 놓인 원형 에어 벤트를 돌려 실내 온도를 조절하게 만든 재치도 엿보인다.

차체 크기만큼이나 앞좌석은 공간이 꽤 넉넉하다. 등받이에 SS 로고가 붙은 앞좌석은 보기와 달리 앉는 부분이 낮고 굴곡이 몸을 잘 잡아준다. 전동 조절되는 시트는 앞으로 끝까지 당겨도 약간 멀리 앉게 된다. 선루프가 있는데도 낮은 좌석 덕분에 머리 공간은 여유가 있다. 많은 2+2 좌석구성 쿠페가 그렇듯, 뒷좌석은 사람보다 일상용 소품에 알맞은 공간이다. 측면 레버로 앞좌석 등받이를 쉽게 접을 수 있지만, 뒷좌석은 오르내리는 것부터 불편하다. 앉는 부분도 앞좌석보다 높고 등받이는 직각에 가깝게 서 있다. 어린이라도 키가 130cm를 넘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하다. 트렁크는 넓고 깊은 대신 턱과 바닥이 높아 실용성이 떨어진다. 물론 스포츠카에서 중요하게 여길 부분들은 아니다.

이제 궁금해지는 것은 차 안팎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달리기에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다. GM은 꾸준히 콜벳과 카마로의 주행감각을 다듬었다. 그러나 차츰 나아지기는 해도 결과물은 늘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아쉬움이 어떻게 해소되었는가는 몰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기대가 컸던 이유다.

복잡한 서울 시내 퇴근길 교통 흐름 속에서는 예상보다 편했다. 두툼한 저회전 토크 덕분에 액셀러레이터를 가볍게 밟아도 부담 없이 가속한다. 유격 없는 액셀러레이터와 부드럽게 변속하는 변속기에 엔진도 정교하게 반응하니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큰 토크에도 울컥이지 않는다. 승차감은 거친 노면에서 약간 들썩이지만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웬만한 승용차보다 잔진동이 적다. 다만 올 여름이 유난히 더운 탓도 있겠지만, 발 주변에서 올라오는 열이 대단하다. 에어컨과 시트 통풍 기능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교통량이 적은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서 속도를 올렸다. 저회전 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성긴 비트로 묵직하게 들려오는 배기음이 반갑다. 수입되는 카마로 SS에는 GM의 스몰블록 V8 계열 LT1 엔진이 들어간다. 이는 콜벳에도 올라가는 것으로, 카마로에서는 성능을 조금 낮춰 453마력의 최고출력과 62.9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경쟁차인 머스탱 GT의 5.0리터 V8 엔진과 비교하면 배기량이 크기도 하지만 출력은 30마력 이상, 토크는 9kg‧m 가까이 높다. 

오랜 역사를 지닌 스몰블록 V8 엔진은 밸브계통이 구식으로 치부되기 일쑤인 OHV 방식이고, 일반 승용차에조차 흔한 실린더당 4밸브 구조도 아니다. 그러나 성능과 감각 모두 낡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지지 않는다. 직접 연료분사와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과 더불어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AFM) 기술도 들어 있다. AFM은 실린더 비활성화라고도 불리는 기술로, 엔진 부하가 적을 때 실린더 4개의 연료분사를 차단한다. 4기통에서 8기통 모드로 전환할 때에는 약간의 폭발력 가세가 느껴지지만, 반대 경우에는 거의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고 진동변화를 잘 억제해 위화감이 없다. 8단 자동변속기 덕분에 시속 100km에서 엔진 회전수는 1,400rpm 부근에 머무르고, AFM까지 합세하면 고속도로 정속주행 연비는 10km/리터를 가볍게 웃돈다. 

얌전히 달려도 아쉬울 것 없는 힘은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으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나온다. 굵은 톤의 리듬이 순식간에 빨라지면서 주변의 차들이 순식간에 뒤로 사라진다. 급가속 때 앞쪽이 슬쩍 들리면서 잠깐 앞바퀴 접지력이 희미해지지만, 전반적으로 차체는 착 가라앉은 채 앞쪽에 펼쳐진 풍경을 잡아채듯 눈앞으로 끌어당긴다. OHV가 고회전에서 탁월한 성능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다. 회전한계에 가까워질수록 고개를 숙이는 느낌이 커지기는 해도 엔진은 여전히 힘차게 뒷바퀴를 굴린다. ‘머슬’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함부로 액셀러레이터를 깊이 밟지 않는 것이 좋다.

변속기는 다른 GM 차에 쓰인 것들보다 빠르게 변속하도록 조율되었다. 초반 가속을 고려한 기어비 때문에 저단에서 아랫단으로 내릴 때 약간 충격이 있을 뿐, 전반적으로 변속은 부드럽고 매끄럽다.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은 조작감이 깔끔하다. 대신 너무 가볍게 움직이고 부드러운 변속감과 맞물려 스포티한 감칠맛은 적다. 스포츠카다운 강렬함은 조금 덜하지만, 큰 토크를 감안하면 일반 도로 주행에 불만스럽지는 않다. 기어 레버 뒤의 모드 선택 버튼으로 주행 특성을 바꿔도 변속되는 속도만 빨라질 뿐 변속감에 큰 차이는 없다. 주행 모드는 투어, 스포트, 트랙, 눈/비의 네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모드를 바꿀 때마다 계기판과 실내 무드 조명이 특성을 반영하는 색으로 달라진다.

여기까지는 최근 몇 세대의 미국 스포츠카들에서도 꽤 숙성되어 좋게 느껴졌던 특성이 조금 더 나아진 정도였다. 그러나 국도 고갯길에 들어서 몇 개의 코너를 지나면서 전에 없던 특성이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불필요한 흔들림이나 흐트러짐이 거의 없고, 차의 앞과 뒤가 하나가 되어 매끈한 라인을 그려 나간다. 물론 엔진 힘이 강력해서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차의 무게는 코너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도 운전은 부담스럽지 않다. 끈끈한 굿이어 이글 F1 타이어와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이 뒷받침하는 든든한 접지력, 그리고 한껏 숙성된 알파 플랫폼의 영향이 크다. 섀시는 타이어를 잘 받쳐주고,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조작하는 만큼 세련되게 몸놀림을 조절한다. 세련된 세팅으로 무척 고르고 깔끔하게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의 움직임이 정직하니 굽이치는 길에서도 다루기가 쉽고 재미있다. 스포트 모드와 트랙 모드를 번갈아 바꿔가며 달리는 동안,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정확하게 코너를 파고들고 빠져나가는 느낌은 웬만한 유럽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크게 아쉽지 않다. ‘설마’하며 코너에 들어섰다가도 흐뭇한 마음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된다. 드디어, 이제야, 마침내, 운전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스포츠카를 만났다. 이 차, 제대로 된 물건이다.

곧게 뻗은 길에서만 만족스러웠던 시절의 미국 스포츠카는 이제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통적인 미국 스포츠카의 터무니없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카마로는 그런 색깔 때문에 놓쳐야 했던 근본적인 운전의 즐거움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제는 능력이 부족한 차가 아니라 색깔이 다른 차로 인정할 수 있다. 게다가 안정감과 편안함을 고루 갖추고 최신 편의장비까지 두루 품으면서 이제는 일상에서도 훨씬 덜 부담스럽게 몰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놀랄 만하지 않은가?

다만 우리나라 시장에는 카마로의 발목을 잡을 요인들이 몇 가지 있다. 2+2 쿠페로는 비교적 큰 편인 덩치, 평범한 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자동차세 같은 것들이다. 차의 성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선택이 망설여질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차 자체의 몇몇 단점들이 대부분 그렇듯, 차가 주는 즐거움과 탁월한 값 대비 성능에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비슷한 성능과 운전 재미를 주는 유럽 브랜드 스포츠카의 반값이면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마로 SS는 브랜드 이미지 같은 외적인 가치보다 차 특히 스포츠카 자체의 매력과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반가운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