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생존의 열쇠는 크루즈가 쥐고 있다

[ 2017년 11월 5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한국지엠은 지난 1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언론 대상으로 쉐보레 올 뉴 크루즈(이하 크루즈) 디젤 시승회를 열었다. 연초 데뷔한 올 뉴 크루즈 1.4 터보 가솔린이 한국지엠의 올해 실질적 첫 새 모델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올 뉴 크루즈 1.6 디젤은 한국지엠의 올해 마지막 새 모델이다. 화제는 되었지만 판매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볼트 EV를 제외하면, 올 뉴 크루즈는 올해 쉐보레 브랜드로 나온 거의 유일한 새 모델인 셈이다.

언론 시승회가 열릴 때까지도 한국지엠은 크루즈 디젤의 값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 시장 철수여부와 함께 기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사항은 바로 값이었는데, 한국지엠 관계자들은 ‘다음 주 월요일(6일) 사전계약이 시작될 때까지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여러 여건을 반영해 적절한 수준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여운은 남겼다.

쉐보레 라인업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크루즈는 이미 알려진 대로 실적 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모델 변경을 앞두고 있던 구형 크루즈보다도 덜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구형은 세단과 해치백 두 종류의 차체에 가솔린과 디젤로 엔진 선택의 여지도 있었다. 그와 비교하면 새 크루즈가 포용할 수 있는 소비자의 폭은 상대적으로 좁았다. 물론 해당 차급을 선택하는 대다수 소비자가 선호하는 4도어 세단에 가솔린 엔진+자동변속기 조합을 갖춘 만큼 시장성이 아주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성능이나 주행감각 등 흔히 차의 기본기라 할 부분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적에서 알 수 있듯 크루즈는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악재는 많았다. 출시에 즈음해 우왕좌왕한 가격정책과 품질 문제에 따른 출고 지연 등으로 새차 효과도 거의 보지 못한 영향도 있었다. GM의 대대적 해외 사업 축소 등이 배경이 되어 철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여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파크나 말리부, 트랙스 같은 모델들은 동급 시장 1위까지는 아니어도 의미 있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크루즈가 고전하는 이유는 배경보다는 상품 자체에서 찾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크루즈의 문제는 값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트림별 장비 구성과 그에 따른 값이 동급 다른 모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아무리 상품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소비자에게 납득할 만한 값과 메리트를 제시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르노삼성이 SM5와 SM3 판매를 꾸준히 끌고 나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반면 크루즈는 본격 출고를 앞두고 내리기는 했지만, 초기에 소비자에게 ‘비싼 차’로 각인되기에 충분한 값을 제시했다. 좋은 차가 비싼 것은 당연하겠지만, 쉐보레나 크루즈 모두 브랜드 이미지나 평판 면에서 동급 시장 경쟁 업체나 모델보다 비싼 값을 정당화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한국지엠도 값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을 인식은 하고 있다. 크루즈 디젤 언론 시승회 때 데일 설리번 한국지엠 부사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오랜 업계 관행이지만 업체를 대표하는 임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표현인 권장 소비자가격(list price)과 실 구매가격(transaction price)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이는 연말 프로모션을 강조하려는 의도이기는 해도, 브랜드나 제품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지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대변하는 느낌을 주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가치를 지닌 차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메리트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대폭 할인해야 팔리는 차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프로모션으로 판매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값을 깎아도 안 팔리는 차’로 낙인찍힐 수 있다. 

시승회가 끝나고 난 뒤, 차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발표되지 않은 값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그리고 예고했듯 사전계약이 시작된 6일. 한국지엠은 크루즈 디젤 가격에 대한 보도자료를 따로 배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웹사이트에 조용히 업데이트된 11월 가격표를 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경쟁차종보다 200만 원 남짓 비싸다는 언론 기사가 인터넷을 휩쓸었다. 모델 등급과 장비 구성 면에서 경쟁 모델과 직접 비교가 어려운 측면은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값 발표를 둘러싼 이 같은 흐름은 앞서 크루즈 가솔린 모델 데뷔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좋지 않은 전개다.

올해 초 한국지엠이 발표한 연간 내수 판매목표는 19만 4,000대였다. 최근 몇 년간 실적을 보면 2013년 약 15만 1,000대, 2014년 약 15만 4,000대, 2015년 약 15만 8,000대, 지난해 약 18만 대 등 조금씩이라도 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판매는 10월까지 11만 대를 겨우 넘긴 수준에 그쳤다. 이와 같은 흐름이라면 올해 목표를 채우기는커녕 14만 대 선을 기록한 2011~2012년 수준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높다. 크루즈 가솔린에 대한 대대적 연말 프로모션과 디젤 모델 추가가 연말 판매 증대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한국지엠 내부에서는 여러 면으로 속을 끓이고 있겠지만, 소비자는 그런 것을 일일이 이해하며 차를 사주지 않는다.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상품구성과 값이야말로 한국지엠 생존의 열쇠다. 크루즈에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긍정적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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