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브랜드로 재편된 쌍용, 살 길을 찾아라

[2018년 1월 8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국내 5개 제조사의 실적은 명암이 갈렸다. 2016년에 비해 판매가 늘어난 브랜드는 현대와 쌍용뿐이었고, 나머지 세 개 브랜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업체 수장이 교체된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부진한 실적이 돋보였다. 이처럼 한해의 마무리가 개운치 않았던 탓인지, 여러 브랜드가 새해를 맞는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다르다. 예년 같으면 업체들은 연말에 프로모션을 집중하고, 해가 바뀌고 나면 할인을 비롯한 구매혜택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올해는 1월에도 12월 못지않은 수준의 각종 프로모션을 이어나가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브랜드마다 방어적이냐 공세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시장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1월 초부터 활발한 움직임이 눈에 뜨일 만큼 두드러지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쌍용이다. 새해 첫 번째 주부터 코란도 투리스모의 부분변경 모델을 새로 내놓았고, 두 번째 주에는 픽업트럭인 렉스턴 스포츠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해가 바뀐 뒤 새 모델을 처음 내놓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큰데, 올해에는 쌍용이 새 모델 공개의 테이프를 처음으로 끊은 셈이다. 물론 새 모델 출시의 상징성과는 별개로 쌍용에게는 올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명과 암이 모두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1월에 선을 보이는 두 모델, 코란도 투리스모와 렉스턴 스포츠에서도 그와 같은 쌍용차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우선 배경부터 이야기해 보자. 2018년은 쌍용이 21년 만에 다목적 차(utility vehicle) 전문 브랜드로 재편되는 해다. 1997년에 데뷔해 쌍용의 승용차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오던 체어맨이 지난해 말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 초에 재고 판매가 마무리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체어맨 출시 이전부터 생산했던 대형 상용차와 특장차, 이스타나로 대표되는 소형 상용차도 이미 단종된 지 오래다. 이제 브랜드 유일의 일반 승용차였던 체어맨 W까지 단종되면서, 쌍용은 오롯이 SUV와 SUV 바탕의 픽업트럭만 생산하는 업체가 된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쌍용이 ‘한국의 재규어 랜드로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필자로서는 체어맨 단종이 아쉽다.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국내외 자동차 산업과 시장 여건을 생각하면 시대에 뒤처진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결국 체어맨 단종으로 쌍용은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이라는 이름을 축으로 SUV와 MPV, 픽업트럭 생산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제품 구성을 갖춘 자동차 업체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곧잘 비교되는 지프나 랜드로버 등 SUV 전문 브랜드와도 다르다. 회사 규모 상 이처럼 독특한 구성으로 라인업을 끌어 나가는 것은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징성과 브랜드 가치가 높은 체어맨을 단종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격 차이는 있지만 이처럼 특화된 모델로 제품을 구성하는 것은 쌍용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기술 개발이나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기 좋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브랜드와 라인업을 재편했음에도 구성 자체가 탄탄하지 않다는 점은 쌍용이 해결해야 할 크고 시급한 과제다. 가장 큰 문제는 코란도 브랜드의 위상이다. 이번에 선보인 코란도 투리스모는 2005년에 나온 로디우스를 바탕으로 두 번(로디우스 시절을 포함하면 세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모델이다. 이름과 디자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체어맨 단종으로 쌍용의 최장수 모델 자리를 넘겨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번 페이스리프트는 앞으로 2년 정도는 더 생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틈새 모델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바탕이 낡은 탓에 제품 자체의 경쟁력도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와 더불어 코란도 브랜드에 속하는 또 다른 모델인 코란도 C 역시 페이스리프트가 두 차례 이루어졌지만 이미 기술과 상품성에서 경쟁 모델과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쌍용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코란도 브랜드 차들이 이처럼 경쟁력을 잃은 것은 쌍용 전체의 이미지를 흐리는 일이기도 하다.

렉스턴의 모델 구성과 가격 정책에서도 부정적인 면이 엿보인다. 공식 출시에 앞서 사전 공개된 렉스턴 스포츠의 값은 2,350만~3,090만 원이다. SUV  버전으로 앞서 출시된 G4 렉스턴은 3,350만~4,510만 원이다. 렉스턴 스포츠는 이번에 일반 휠베이스 모델을 출시한 뒤 적재공간을 키운 롱 휠베이스 모델도 추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픽업트럭이라는 모델 특성상 최상위 트림 값은 G4 렉스턴 최하위 트림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거 무쏘 스포츠, 액티언 스포츠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장비 수준이나 구성을 비교하면 픽업트럭인 렉스턴 스포츠가 SUV인 G4 렉스턴의 수요를 적잖이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손익계산을 거쳐 제품화한 것이겠지만, 렉스턴 브랜드 이미지와 대당 수익을 고려하면 G4 렉스턴의 판매 감소로 이어질 제품정책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쌍용은 지난해 내수 판매가 소폭 늘어나기는 했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로 보면 성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쌍용이 앞으로 성장하려면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한 내수 시장보다 수출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 즉 세계 시장에서 먹혀들 수 있는 제품 구성과 정책, 브랜드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다목적 차 전문 브랜드로 재편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충분한 브랜드 역량과 제품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쌍용의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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