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Volkswagen_Bora_2_0-1

[ 한겨레신문 2002년 7월 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수년 전 유행했던 ‘1년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라는 광고문안이 있다. 좋은 옷은 언제 입어도 편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강렬한 인상의 스타일이나 성능을 과시하는 수치만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차보다는, 모난 곳 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차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마련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상표 중의 하나인 폴크스바겐이 이번에 국내에 선보인 보라가 바로 그런 차다.

보라는 폴크스바겐의 베스트셀러 해치백인 골프의 세단형 모델로, 미국에서는 ‘제타’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국시장의 제타는 3년 연속으로 동급 승용차 중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해 왔다. 치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수한 스타일에 선뜻 눈길이 가지 않는 차가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좌석에 앉아보면, 이런 높은 만족도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촉감 좋고 몸을 잘 잡아주는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면,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정돈된 대시보드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급 승용차 못지않은 내장재에 조작하기 쉽게 배치된 각종 편의장비는 독일차답게 꼼꼼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기능이나 성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지만, 세련된 마무리는 차의 감성적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차체 길이는 국산 소형차와 준중형차의 중간 정도지만, 너비는 중형차에 가까워 실내공간이 비교적 넉넉하게 느껴진다.

2.0리터 엔진(SOHC)이 내는 115마력의 힘이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크기의 차체에 적당한 힘이다. 초기가속이 조금 답답한 듯하지만, 탄력이 붙은 뒤로는 제법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다. 실내로 엔진 소음이 다소 전달되기는 해도, 음색이 부드러워 기분 나쁘지 않다. 4단 자동변속기는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충격 없이 매끄럽게 변속이 이루어진다.

급한 굽이에서도 차체는 비교적 정확하게 핸들을 꺾는 만큼 움직여준다. 고급차에 쓰이는 전자식 주행안정장치 없이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한 것은, 뛰어난 기본설계로 인한 정교한 운전감각 덕분이다.

보라의 특징을 짧게 정리하면, 평범하지만 빈틈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매력인 차라고 하겠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몸에 딱 들어맞는 좋은 옷과 같은 느낌을 보라에서 느낄 수 있다. 보라의 판매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실속파’ 소비자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