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2010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그간 몰아본 지금의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W212)들은 조금 종잡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E 클래스는 6기통, S 클래스는 8기통 엔진과 가장 잘 어우러졌던 기억인데, 최근 몰아본 6기통 엔진의 E 300은 뭔가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AMG가 튜닝한 8기통 엔진을 얹은 E 63 AMG를 잠깐 몰아보았을 때의 느낌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자연흡기 엔진 가운데 가장 고성능에 속하는 것을 얹기는 했지만, 동적 특성에서 E 300과의 연관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전혀 다른 차로 느껴졌다. ‘이제는 E 클래스에도 8기통 엔진을 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잠깐. 아무리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라 하더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절약과 고효율, 다운사이징이 대세인 친환경 시대에 ‘이제는 E 클래스도 8기통….’ 차고에 12기통 차들이 널려 있고, 8기통 차는 집에 일하러 오는 아줌마에게 시장 갔다 올 때 쓰라고 내어주려고 마련해 놓는 사람 취급 받기에 딱 알맞을 소리다. 물론 메르세데스-벤츠는 ‘성공한 사람들의 차’다. 어떤 관점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연료소비나 공해배출 같은 것들이 피부에 별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과거의 잣대를 놓고 하는 얘기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시대에 어울리는 성공의 기준에는 ‘몸에 밴 친환경 마인드’도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이제는 E 클래스도 4기통…’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젠장’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쩌란 말인가.

Mercedes Benz neue Antriebe E-Klasse(n)  Efficiency Fahrveranstaltung Deidesheim 2011

차 만들기에 도가 튼(물론 가끔 실수도 하긴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가 이처럼 바람직한 마인드를 가진 이들을 위해 멋진 차를 하나 마련했다. 바로 E 200 CGI 블루 이피션시다. 실질적으로 이전의 E 200 K를 대체하면서 국내에 판매되는 E 클래스 라인업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이 모델의 특징과 의의는 ‘CGI 블루 이피션시’라는 말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비슷한 이름이기는 해도, CDI는 디젤 모델이지만 CGI는 휘발유 모델이다. CGI는 Charged Gasoline Injection의 머리글자로, 간단히 말하자면 직접 연료분사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엔진의 기본 설계는 E 200 K에 쓰인 1.8L 4기통 엔진과 같지만 연료 직접분사 유닛과 함께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더해졌고, 이전 엔진의 수퍼차저를 대신해 터보차저가 쓰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CGI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을 만큼 크고 뚜렷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정확하고 정밀한 연료분사로 연소를 최적화해, 효율을 높이고 공해를 줄인다는 것이 CGI의 기본 목표다.

국내에 판매되는 E 200 CGI는 아방가르드 트림을 갖추고 있다. 엔트리급에 해당되는 낮은 배기량 모델임에도 액티브 라이트 시스템(방향전환 때 헤드램프 각도도 바뀐다), 어댑티브 브레이크 라이트(급제동 때 제동등을 점멸해 뒤차의 주의를 환기한다), 한글화된 커맨드 시스템 등 비교적 풍부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국내 애프터마켓 제품을 연결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여전히 불편하고 거슬리지만, E 클래스 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꼭 있어야 할 편의 및 안전장비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E-Klasse

직선 위주의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하는 실내 디자인은 처음 볼 때 꽤 낯설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지 봐줄 만하다. 그래도 기교 없이 넓게 깔아 놓은 몇몇 내장재들은 여전히 벤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표면처리로 고급스러움을 떨어뜨린다. 벤츠 최대의 미덕인 편안한 분위기는 절도 있는 디자인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낮게 깔린 앞좌석은 스포티한 운전자세를 만들뿐 아니라 머리 위 공간에도 여유를 더한다.

차급을 생각하면 뒷좌석의 앞뒤 공간은 충분히 넉넉하다. 낮은 앞좌석 때문에 발을 놓을 공간이 빼앗기기는 해도 아쉬울 정도는 아니다. 머리와 어깨 주변도 답답하지 않다. 다만 굴곡, 쿠션의 부드러움이 적당한 앞좌석에 비해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굴곡이 적어 밋밋한 편이다. 쿠션도 좀 더 탄탄한 느낌이다. 약간 호들갑을 떨며 열리는 트렁크 리드 안에는 충분히 넓고 깊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좌우 뒷바퀴 사이에는 바닥이 약간 돌출되어 있지만 쓰임새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Mercedes Benz neue Antriebe E-Klasse(n)  Efficiency Fahrveranstaltung Deidesheim 2011

오르간식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비교적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터보차저를 달았다고는 해도, 4기통 1.8L 184마력 엔진을 얹고 넉넉한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최대토크(27.5kg·m)가 일찌감치 터져 나오기 시작해 오랫동안 유지(1,800~4,600rpm)되기 때문에, 힘을 쥐어 짜내는 느낌은 이전의 E 200 K보다 훨씬 덜하다. 엔진의 회전질감도 차분해져(솔직히 말하면 비슷하다), 마치 자연흡기 엔진 같은 느낌이 든다. 크기나 몸무게가 만만찮기 때문에 펀치력이 강하다거나 여유 있는 느낌은 부족하지만, 대단히 답답한 것도 아니어서 일상적으로 달리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다. 오히려 안정감 있는 서스펜션이 뒷받침되어, 무리하지 않으며 달리게 되는 세팅이다. 탄탄한 하체가 만들어내는 적당히 편안한 승차감 덕분에 고속도로 주행 때에는 피로가 적다.

요즘 벤츠 4기통 엔진과 어우러지는 자동 5단 변속기는 변속 충격 없이 매끄럽게 변속되는 것이 매력이다. 물론 매끄러운 만큼 변속을 질질 끄는 느낌이 있기는 하다. 조금 아쉽긴 해도, 수동 기능에 변속 패들이 없다고 썩 불편하지는 않다. 트립 컴퓨터의 수치를 이용해 83km 거리를 달린 후의 연비를 계산해 보니 평균 8.8km/L로 공인연비인 10.8km/L에는 못 미치지만, 차의 크기와 주행조건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연비는 아니다.

Mercedes Benz neue Antriebe E-Klasse(n)  Efficiency Fahrveranstaltung Deidesheim 2011

CGI 엔진을 얹었다는 사실을 접어 두고 생각해 보아도 E 200 CGI는 아쉬울 것 없는, 그럭저럭 괜찮은 차다. 그런 차에 (E 클래스 치고는) 올려진, 크기 작고 효율 높고 공해 적은 CGI 엔진은 E 200 CGI를 요즘 유행에 가장 잘 들어맞는 E 클래스로 만든다. 사실 좋은 기술일수록, 쓰는 사람이 기술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기술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E 200 CGI를 보며, 별 것 아닌 기술을 침소봉대하며 아등바등하는 메이커들과는 격이 다른 메르세데스-벤츠의 ‘대인배다움’을 느끼게 된다.

평점: 7.5 / 10

‘대인배’ 메르세데스-벤츠가 친환경 트렌드에 가장 잘 맞는 차를 내놓았다. E 클래스에 4기통 엔진. CGI 기술 덕분에 이젠 말이 좀 된다.

  • 장점: 비교적 풍부한 장비, 쾌적한 실내 및 주행감각
  • 단점: 별로인 내비게이션 시스템, 차격에 미치지 못하는 일부 내장재, 외형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