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말리부 LTZ 2.0 가솔린

[ 오토카 한국판 2011년 1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중형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된 이래,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용하는 데 필요한 여러 환경들이 미친 영향이 크다. 지금은 구매패턴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여건상 한 집에 차 한 대만 굴려야 한다면 연령대가 다양한 가족구성원들도 고려하면서 ‘사회적 체면’도 세울 수 있기에 오랫동안 중형차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구색으로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것이 현대 쏘나타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기아 K5가 쏘나타의 아성을 흔들고 있다. 어차피 형제차이기는 해도 크고 작은 색깔의 차이가 있기에 소비자의 성향이 바뀌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소비자들이 많이 찾았던 르노삼성 SM5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그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만약 그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가 시장에서의 입지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중형차 시장에 가장 최근에 뛰어든 쉐보레 말리부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게 된다.

말리부는 앞서 선보인 알페온과 마찬가지로 GM의 입실론 II 플랫폼을 쓴다. 다만 알페온은 롱 휠베이스 버전, 말리부는 오펠 인시그니아와 같은 숏 휠베이스 버전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차체 크기는 동급 최대 수준이지만 휠베이스는 가장 짧다. 물론 겉에서 보았을 때에는 휠베이스가 짧다는 것을 의식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3박스 디자인이 보수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역동성이 강조된 앞뒤 모습과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들에서 젊은 감각도 엿보인다. 앞모습에서는 이전 모델인 토스카의 특징이 남아있는가 하면 독특한 디자인의 테일램프는 한국GM이 강조하는 것처럼 카마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내는 겉모습에 비하면 조금 더 보수적인 느낌이 강하다. 역시 카마로의 디자인 요소를 받아들인 계기판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더하기는 했지만, 위쪽이 둥글게 마무리된 센터 페시아나 대시보드를 좌우로 가로지르는 공기배출구 모양의 디자인 요소는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내장재 재질은 국내 중형차의 보편적인 수준에 맞추려 애쓴 느낌이다. 구석구석 재질의 통일감이 떨어지는 부분들도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고 만지기에 좋은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모델들과 공유하는 스티어링 휠은 실내공간에 비해 지름이 작은 편이어서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구석구석 쓰임새를 좋게 하기 위해 고민한 부분들도 눈에 뜨인다. 센터 콘솔 좌우를 비롯해 운전석 주변에 수납공간이 제법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도어 포켓의 폭이 좁은 것을 빼면 대부분 자잘한 물건들을 수납하기에 편리하다. 특히 올란도에 이어 두 번째로 쓰인 센터 페시아의 시크릿 큐브는 열림 레버의 모양과 촉감을 빼면 아이디어와 실용성 모두 훌륭하다. 멀티미디어 스크린 좌우의 터치 감지식 버튼도 첨단 느낌을 더한다. 비스뜸히 누운 센터 페시아 아래쪽에 있는 오디오와 공조장치 스위치들은 배치가 직관적이고 버튼이 커 조작이 편하다.

차체가 넓어 앞좌석 공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다. 좌석도 비교적 낮게 놓여 있어 키 큰 사람이 앉아도 머리 공간이 충분하다. 시트는 쿠션이 비교적 탄탄한 편인데도 몸과 잘 맞아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이런 시트 감각은 앉는 부분이 낮고 등받이 각도가 적당한 뒷좌석도 마찬가지다. 다만 공간적인 면에서는 짧은 휠베이스의 약점이 드러난다. 무릎 공간의 여유가 적고, 일찍 시작되는 뒤 유리가 머리 공간에 제약을 준다. 특히 전반적인 치장이 앞좌석과 차이가 크다. 두드러지는 편의장비를 찾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도어 트림도 밋밋하다. 실내공간의 개념이 앞좌석, 특히 운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동급 차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공간이 넓은 트렁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배터리가 공간을 빼앗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나오더라도 트렁크 공간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듣지는 않겠다.

최상위 트림인 LTZ 디럭스로 마련된 시승차에는 2.0L 141마력 휘발유 엔진이 올라갔다. 수치상으로 경쟁차에 비해 출력이 열세라는 것 때문에 인터넷을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이다. 엔진만으로 차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평소 찾는 경기도 파주 자유로와 주변 일대를 달리며 차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꽤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실내가 매우 조용하다. 저속에서 부드럽게 가속할 때에는 엔진소리는 물론 외부 소음도 거의 느낄 수 없다. 시속 100km 언저리까지도 이런 고요함은 이어진다. 엔진 회전수가 3,500rpm 이상 올라가면 엔진소리가 높은 톤으로 바뀌어 귀를 자극하지만, 그래도 소음은 여전히 걸러진 느낌으로 실내로 전달된다.

차가 의도한 것만큼 빠르게 가속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단순히 엔진 자체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하게 조율된 서스펜션이 차체의 움직임을 적당한 수준으로 잘 억제하는 덕분에 심리적인 가속감을 둔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코너에서도 엔진 회전을 적절히 유지하면 충분히 스포티하게 달릴 수 있다. 스티어링 반응도 차급을 생각하면 빠르고 정확해서 차를 다루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고속으로 달려도 안정감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코너에서 요철을 만나도 차의 움직임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데에서 하체가 잘 짜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전동 파워 스티어링의 세팅만 조금 더 숙성되면 좋겠다.

물론 스포티하게 달리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 변속기가 스포티한 주행 스타일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높은 토크가 필요할 때 빠르게 대응해 아랫단으로 내려주는 센스는 뛰어나다. 하지만 엔진 힘이 넉넉하지 못하다보니 자동 모드에서의 변속은 매우 바쁘게 이루어진다. 변속 시간이 긴 것도 종종 가속의 맥을 끊는다. M 모드에서 기어 레버 위의 스위치로 수동 변속이 가능한 것은 좋은데, 막상 주행 중에는 조작이 어렵다. 한국GM 관계자는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M 모드는 쓰지 않는 데 익숙해질 것 같다. 공인연비는 12.8km/L이지만 185.9km 구간 시승연비는 9.6km/L에 머물렀다. 적극적으로 몰수록 연비하락이 뚜렷해지는 것도 어찌 보면 과격한 주행을 억제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배려(?)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스포티한 주행에 제약조건이 많은 것도 이해는 간다. 실제 중형 세단을 사서 모는 사람들 중에 적극적으로 스포티하게 달리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 때문이다. 굳이 쓰지 않는 기능에 공을 들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지나친 모험을 피하려는 안전제일주의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결국 주행감각의 방향은 뚜렷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휴양지 이름에서 모델 이름이 비롯되었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달리는 것이 말리부를 모는 방법이다. 하지만 스포티하게 달릴 수 있는 밑바탕을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봉인시켜놓은 느낌이다. 말리부는 뛰어난 경쟁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다만 적극적인 표현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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