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현대 그랜저 HG300 로얄

[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

Background

차급별로 항상 내수 시장 최다 판매를 기록하는 모델은 대개 현대 브랜드를 달고 있다. 특히 국내 다른 브랜드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영역인 중대형 시장에서는 현대 그랜저가 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에쿠스 등장 이후 그랜저라는 브랜드의 힘이 좀 약해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넓은 소비자들에게 먹혀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의 그랜저는 1990년대 중반에 나온 마르샤와 비슷한 영역에 놓여 있다. 당시에는 틈새 차급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주류 차급이 되어 버렸다. 오너용 고급 세단이면서 뒷좌석의 쾌적함도 놓치지 않는 차는 우리나라 시장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매력이 크다.

다만 이런 부류의 차는 해외 시장에서의 입지가 애매하다. 최근 현대의 행보를 감안하면 HG 그랜저는 이제 내수 전용차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적잖은 수입 중형 세단이 노리고 있는 것이 그랜저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라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HG 그랜저를 조금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Outside

뭔가 모르게 어설프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쏘나타에 비하면 훨씬 숙성된 느낌이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치장이 지나치다는 느낌이었지만, 자꾸 보니 어색하지 않다. 쏘나타와의 공통분모가 느껴지면서도 윗급 차라는 느낌은 분명하다.

앞바퀴 굴림 대형 차에서 이처럼 스포티한 느낌의 디자인을 가진 차가 있을까? 북미 시장에서의 경쟁차라고 할 수 있는 도요타 아발론이나 뷰익 라크로스, 심지어는 렉서스 ES나 어큐라 RL 같은 차들보다 완성도도 높으면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점은 양날의 칼이다.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디자인이다. 고급차 소비자의 평균연령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는 될 것이다.

다 좋은데, 뒤 펜더 위의 라인은 좀 복잡한 느낌이다. 차체 뒤를 감싸는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디자인도 조금은 오버라는 생각이다. 먼저 나온 기아 K5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K5 테일램프 사이를 빨간 띠로 메웠다는 느낌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체적인 비례는 묵직함이 부족하다. ‘어른을 위한 차’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Inside

전반적으로 잘 된 디자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쭉쭉 힘차게 뻗어나간 곡선에서 마치 붓으로 화선지에 난을 친 듯한 느낌이 든다. 외부와 마찬가지로 실내 디자인의 완성도는 쏘나타보다 높다. 대시보드에서 좌우 도어 트림으로 이어지는 디자인은 실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이 부분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조화의 측면에서 보면 흠잡기 힘들다.

운전석에 앉은 느낌은 세련된 오너 중심 차에 가깝다. 운전석 주변 환경이 그런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다고 항공기 조종석처럼 운전에 몰입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아니다. 너무 화려하고 튀는 센터 페시아 디자인 때문에 더 그렇다. 특히 컬러 디스플레이와 좌우의 공기배출구 등 위쪽으로 뻗어나간 부분은 계기판보다 시선을 더 많이 끈다. 이전 세대 BMW 7시리즈에서도 지적했던 부분이지만, 운전석에서의 시각적인 초점은 센터 페시아보다 계기판 쪽에 맞춰져야 옳다.

센터 페시아의 각종 스위치류는 여러 모로 배치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어수선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 대신 계기판 사이에 놓인 멀티 디스플레이 디자인은 화려하면서도 깔끔해서 좋다. 한글 표시도 뚜렷하고, 필요한 기능에 대한 표시도 눈에 잘 들어온다. 이런 한국적인 배려는 역시 현대/기아차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허리가 길어 앉은키가 큰 나에게 뒷좌석은 색다른 느낌이다. 밖에서 봤을 때에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았지만, 절묘한 좌석 각도 덕분에 머리 위 공간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예상 외로 시야도 답답하지 않다. 물론 뒷좌석의 공간 감각은 XG나 TG에 비하면 쇼퍼 드리븐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났다. 최소한 XG나 TG의 뒷좌석은 쇼퍼 드리븐 카에 앉은 느낌이었지만, HG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앉는 느낌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참 오묘한 감각이다.

시트 쿠션은 앞좌석보다 뒷좌석이 훨씬 무르다. 뒷좌석 승차감이 편안한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들 모시기에도 그리 죄송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전반적인 실내 분위기를 놓고 본다면, 뒷좌석에 모신 어른들은 응당 앉아야 할 자리에 앉았다는 느낌보다 얻어 탄 느낌이 강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랜저를 쇼퍼 드리븐 카로 쓸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난 것 같다. 단순히 뒷좌석 암레스트에서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 많다고 해서 뒷좌석 중심 차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BMW 7시리즈나 아우디 A8이 매번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에 밀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사족이지만 트렁크 바닥재가 차급에 비해 너무 값싼 느낌이다. 부직포 마감재 밑에 깔려 있는 플라스틱 판재 한 장, 그리고 성의 없는 직물제 고리… 비슷한 브랜드 가치를 지닌 미국차나 일본차 수준에 맞추었다면 봐줄 수도 있겠지만, 현대 차 중에서 ‘그랜저’는 프리미엄 브랜드 느낌이 강한 차 아닌가. 최소한 폭스바겐 수준 정도의 마무리는 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 값에 이만한 편의장비를 갖춘 차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칭찬해줘야 할 부분이다. 장비만 놓고 보면 고급차라는 느낌이 확실하다. 수입차 가운데에는 값이 두 배 정도 되는 데도 그랜저에 있는 장비가 달려 있지 않은 차들도 있다. 현대차가 싫어서 사지 않는 사람이 아닌 이상 거부할 수 없다.

물론 쓸모가 의심스러운 장비들까지 쓸어 넣었다는 것에서 거부감이 오기도 한다. 음성인식 부분은 사실 조작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생색내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지정된 명령어는 곧잘 인식하는 것이 기특하긴 하지만. 액티브 에코 기능도 ‘과연 적극적으로 활용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측면에서는 마찬가지다.

On the Road

V6 3.0L GDI 엔진은 수치상의 파워보다 체감 파워가 더 낮게 느껴진다. 270마력의 느낌보다 230~240마력 정도인 느낌이다. 그렇다고 차가 대단히 무거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그랜저는 전부터 그런 느낌이 강했다. XG 3.0도, TG 2.7도 당시 2.4L급 엔진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수치상의 우위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못 된다. 3.0L에 그 정도 마력이라면 조금은 더 시원하게 나가는 느낌이어야 한다. ‘뻥 마력’ 시비를 낳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엔진 회전질감은 좋다. GDI가 거칠거나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잘 만든 엔진이라는 느낌은 분명하다.

변속감각이 매끄러운 것도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변속이 늘어지는 느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그 정도는 훨씬 적다. 동력이 손실된다는 느낌도 거의 들지 않는다. 자동 모드에서나 수동 모드에서나 마찬가지다. 일찍 개입하면서도 강하게 억제하지 않도록 조율한 VDC는 매력이 크다. 답답하기는 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주행감각은 심리적 한계선 아래에서는 너무나도 편하고 부드럽고 안정적이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다. 다만 그 한계선이 그리 높지 않고, 한계선을 넘어서면 너무나도 불편하고 무르고 불안하다. 한계선을 넘으면 누구라도 손에 땀을 쥐게 될 것이다.

Verdict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너무 기대가 컸기 때문에 자꾸 아쉬운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지도 모르겠다. 판단에 갈등을 하게 만드는 참 애매한 차다. 선입견의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갖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과거 그랜저 수준을 생각하면 정말 가장 뛰어난 그랜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비를 제외한 기본기 면에서 보면 아직 어설픈 느낌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발전적 비판을 하자면, 차 만들기의 기준을 좀 더 높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차피 유럽에 나갈 차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우토반에서 숙성된 독일산 동급 차들과 비교하면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 지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기준선을 높여야 한다.

평점: 7.5/10 – 역대 그랜저 중 가장 뛰어난, 편안하고 잘 달리는 최고의 그랜저. 그러나 정체성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 장점: 값 대비 훌륭한 장비구성과 상품성, 부드럽고 매끄러운 GDI 엔진, 넉넉한 공간과 쾌적한 뒷좌석
  • 단점: 수치상 출력 대비 낮은 체감 출력, 아쉬운 고속주행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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