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옹 한국판 2013년 1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BMW X5는 4WD 차에 도구 이상의 의미를 담은 혁신적인 차였습니다. 운전이 즐거운 4WD 차라는 길을 연 선구적인 모델로 숙성되기를 14년. 3세대로 새롭게 변신한 새 X5는 1세대 같은 모험의 결과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내는 시너지를 통해 더욱 빛나는 차가 되었습니다.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까지 4륜구동(4WD) 차는 ‘도구’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험한 곳에서 사람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에 불과했죠. 차의 격을 구분하는 것은 그들이 달리는 험한 곳이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구릉지대냐, 아프리카의 정글이냐, 중동의 사막이냐, 안데스 산맥 허리춤에 있는 고원지대냐, 그도 아니면 지구상 어딘가의 분쟁지역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곳을 달리든지 4WD 차에게 중요한 것은 기능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를 빼면 브랜드에 관계없이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21세기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런 지루함에 반기를 들고 4WD에 뚜렷한 개성을 부여한 브랜드와 모델이 있었습니다. 바로 BMW가 내놓은 X5입니다.

BMW는 X5를 내놓으며 SAV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습니다. 4WD 차의 개념을 도구에서 이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확장시킨 선구적 모델이 바로 X5였던 것이죠. X5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편안함이나 운전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던 이전까지의 4WD 차와는 달랐습니다. BMW는 언제나 운전의 즐거움을 중요시했던 브랜드이고, 도구로 쓰지 않을 때에도 그런 즐거움은 항상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X5를 만든 철학이었던 겁니다. X5의 등장은 4WD 차의 역사를 바꾼 전환점이 되었고, X5는 새로 만든 길을 앞장서 달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X5는 비슷한 성격의 차들이 많이 달리고 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에는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X5의 뒤를 따라 4WD 차의 실용성과 운전의 즐거움을 겸비한 차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BMW 브랜드 안에서도 X3과 X1이라는 형제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죠. X5는 이제 여럿이 다 함께 달리는 길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선두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각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새 X5입니다.

새 X5는 큰 틀에서 보면 그 자신이 대체하는 2세대 X5의 연장선에 있는 모델입니다. 근본적인 뼈대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BMW 자신은 물론 자동차 시장과 기술의 전반적 흐름을 반영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루 세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작은 새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든 시너지 효과 덕분에 구세대의 흔적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은 디자인 측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전통적인 BMW와 X5의 특징들을 이어받았지만, BMW의 다른 최신 모델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실내외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더욱 넓어진 키드니 그릴과 입체적인 느낌의 헤드램프, 박력을 더한 범퍼로 구성된 앞모습은 저돌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형태는 그대로 둔 채 날카로움과 더한 옆모습과 뒷모습이 조화를 이뤄, 전체적인 느낌은 한층 더 스포티해졌습니다. 존재감은 뚜렷하면서도 큰 덩치가 결코 둔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너의 취향에 따라 다른 테마의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도 새 X5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퓨어 익스피리언스라는 테마는 오프로더 느낌이, 퓨어 엑설런스라는 테마는 도시적 느낌이 강합니다. M 스포트 패키지는 스포티함이 두드러지고, 럭셔리 라인 패키지를 선택하면 대형 세단 못지않은 호화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테마에 따라 외부는 물론 실내도 세부적인 요소와 구성에 차이를 두어, X5가 지닌 색깔에 내 입맛에 맞는 액센트를 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테마에 따른 차이는 얼핏 작게 느껴지지만, 분위기 차이는 확실합니다.

실내의 변화도 겉모습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2세대 모델에서 크게 넓어진 실내 공간은 이번 3세대로 넘어오며 더욱 넉넉해졌습니다. 특히 앞뒤 좌석 사이가 더 넓어진 덕분에 뒷좌석의 편안함이 더 커졌습니다. 이제는 X5에서도 5시리즈 GT나 7시리즈처럼 중앙의 콘솔로 좌우가 분리된 2인용 좌석 구성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의전용으로 쓰기에도 손색없는 차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기분 좋게 다가오는 부분은 실내 디자인 그 자체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X5 내장재의 고급스러움과 마무리는 훌륭했습니다. 다만 기능에 치중해 절제된 느낌이 워낙 강하다보니 그런 부분들이 잘 돋보이지 않았을 뿐이죠. 새 X5는 무뚝뚝한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장식만 더했을 뿐인데 말이죠. i드라이브 스크린의 위치를 대시보드 안에서 밖으로 옮기면서 실내 앞쪽이 더 시원해 보이게 된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시승행사에는 3.0L 258마력 디젤 엔진을 얹은 x드라이브30d와 4.4L 450마력 가솔린 엔진이 올라간 x드라이브50i 모델이 시승차로 마련되었습니다. 그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소비자가 선택할 x드라이브30d 모델을 집중해서 몰아보았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뱅쿠버 시내를 출발해 해발 2,000m가 넘는 산악지대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승은 450km 남짓한 장거리 주행이었습니다. 기복이 심하고 커브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내내 운전이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엔진은 충분한 힘을 내고 승차감은 편안하며 차의 움직임은 직관적이었기 때문이었죠. 딱딱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출렁이지 않으면서 너그러운 승차감은 요즘 BMW 차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입니다. 굽이치는 산길을 오를 때에도 크고 무거운 차체의 움직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X5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이전 세대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한 8단 자동변속기에는 이제 드라이브 모드 선택기능이 더해졌습니다. 기어 레버 옆의 스위치로 에코 프로, 컴포트,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모드마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특성이 달라집니다. 빨리 달리고 싶으면 박력을, 편안하게 달리고 싶으면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기능은 X5를 어떤 용도로 쓰더라도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물론 물리적 한계 안에서 말이죠. x드라이브30d 모델은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에코 프로 모드를 선택하면 차의 크기와 엔진 배기량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연비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가속은 전혀 답답하지 않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모드를 선택하면 BMW 특유의 스포티한 운전감각이 더 뚜렷해지는데, 특히 배기음은 쓸데없는 다른 소리들이 잘 걸러진 덕분에 차이가 더 돋보입니다. 

2010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파크에 마련된 오프로드 코스에서는 x드라이브 4륜구동 시스템의 능력도 잠깐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i드라이브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구동력 배분 상태와 차체 기울기 정보를 확인하며 비포장도로를 오르내리는 일은 솔직히 싱겁기까지 했습니다. 간간이 나타나는 험한 구간에서도 운전자만 신경 쓰면 아무 일 없이 지날 수 있었으니까요. x드라이브는 기계구조와 전자장치가 합세해 어떤 상황에서도 운전자의 의도대로 차가 움직이도록 도와줍니다. X5 같은 도시형 4WD 차는 험한 길에서는 맥을 추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X5는 결코 그렇게 만든 차가 아닙니다. SUV의 도구로서의 기능은 X5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두드러지게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것뿐입니다. 

너무 칭찬만 많이 했나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X5는 훌륭한 차였고, 새 X5는 이전 세대에서 거친 부분을 갈아내고 공들여 닦아내어 더 반짝반짝 빛나는 차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파격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다는 걸 들 수 있습니다. 모험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하지만 X5는 처음부터 모험적인 시도로 태어난 차이고, 그 모험은 세상을 바꾼 혁신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새 X5는 새로운 모험을 택하기보다는 선구자의 포용력을 갖춰 나가는 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전히 X5가 열어놓은 길을 달리는 수많은 차들과의 경쟁 속에서 여전히 선두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