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2월 25일에 alook.so(얼룩소) 웹사이트를 통해 먼저 공개한 글입니다 ]
한국토요타자동차가 2월 21일에 국내 시장 주력 모델인 RAV4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동력원을 올린 RAV4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출시하면서 2023년 전략과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전략의 핵심은 ‘모두를 위한 전동화’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됩니다. 쉽게 풀면,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순수 전기차(BEV)를 다양한 차급과 가격대에 내놓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올해 한국토요타는 우리나라에 렉서스는 2개, 토요타는 6개 새 모델을 들여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부터 살펴보면, 순수 전기 SUV인 RZ와 신형(5세대) SUV RX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토요타는 이번에 내놓은 RAV4 PHEV를 시작으로 크라운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일본식 미니밴 알파드 하이브리드, 중대형 SUV 하이랜더 하이브리드, 신형(5세대)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브랜드 첫 순수 전기 SUV인 bZ4X를 들여오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기억은 확실하지 않은데, 토요타가 우리나라에 법인을 세운 2000년 이후로 한해에 새로 내놓은 모델이 이렇게 많은 적은 없었던 듯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인 토요타는 우리나라 정서상 한일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죠.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에 반도체 소부장 관련 수출규제와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 코로나19 이후 표적 입국제한 등 큰 이슈가 터졌을 때에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는데요. 환경이 딱히 나아졌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부정적 여론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일본도 차차 장벽들을 낮추고 있으니 다시 판매를 늘려보겠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그런데 토요타가 우리나라에 올해 새로 들여오겠다는 차들을 보면 토요타와 렉서스 브랜드 모두 BEV 한 가지씩을 빼면 HEV와 PHEV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두 브랜드가 국내에 팔고 있는 차들의 동력계 구성과도 비슷합니다.
사실 토요타는 현대자동차와 더불어 순수 내연기관 차(ICEV), 마일드 하이브리드 차(MHEV), 스트롱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순수(배터리) 전기차(BEV), 연료전지 전기차(FCEV)에 이르는 자동차용 동력계 전반을 모두 만들어 시판차에 얹고 있는 극소수 업체 중 하나입니다. 물론 두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업체가 대부분)는 시장 특성에 따라 어떤 동력계 차는 팔고 어떤 동력계 차는 팔지 않기도 하는데요. 올해 2월 국내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현대는 MHEV와 PHEV를 팔지 않고 토요타는 MHEV, FCEV를 팔지 않고 있습니다.
즉 한국토요타의 우리나라 판매 라인업은 토요타의 가솔린 엔진 스포츠카인 GR86과 GR 수프라, 렉서스 최상위 세단인 LS와 스포츠 모델인 LC의 가솔린 엔진 모델과 소형 크로스오버 SUV인 UX의 순수 전기차 모델을 빼면 모두 HEV와 PHEV입니다. 심지어 중형 세단 캠리나 중소형 SUV RAV4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ICEV 모델도 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ICEV 모델 판매를 중단하고 HEV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는 일부러 우리나라에서 모델 전략을 HEV 중심으로 짜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올해 새로 들여오겠다는 모델 대부분이 HEV와 PHEV인 것도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시피, 토요타는 기성 자동차 업계에서는 순수 전기차에 역량을 쏟아붓는 정도가 좀 덜한 편입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세계 여러 나라 정부가 제도와 규제를 내연기관 퇴출을 압박하는 타임라인을 어느 정도 비현실적으로 보는 듯합니다. 물론 토요타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업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유럽과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정해진 일정대로 내연기관 퇴출이 진행되더라도, 전 세계에서 ICEV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더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BEV로의 전환이 필요는 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도, 제조업체를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BEV로의 매끄러운 전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죠. 자동차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인식과 자동차 사용 환경의 대대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2030년 또는 2035년까지 자동차 업체가 생산하는 자동차 모두를 BEV로 바꾸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대한 BEV로의 전환에 애를 쓰기는 하되, 전동화의 중간 단계라 할 HEV나 PHEV의 역할과 보급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토요타의 전략도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는 한데, 사실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모델이 HEV와 PHEV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팔 수 있는 BEV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토요타와 렉서스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전기차는 현재 렉서스 UX 300e 한 종류 뿐이고, 올해 토요타 bZ4X와 렉서스 RZ가 추가된다고 해도 시장 규모나 브랜드 입지, 상품성 등을 모두 고려하면 공급량이나 판매량 모두 제한적일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보더라도 토요타와 렉서스가 지금 만들고 있는 BEV는 앞서 이야기한 차들이 거의 전부나 마찬가집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친환경차 구매보조금이 없어진 이후로 PHEV의 인기가 시들한데요. 그럼에도 PHEV를 열심히 들여오는 이유는 역시 규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동차 온실가스 관리제도에 따라 자동차 제조 및 판매사들은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을 맞춰야 하고, 단계적으로 배출량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계속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차를 더 많이 팔아야 하는 거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주행 중 배출가스를 내놓지 않는 전기차를 파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팔 전기차가 없는 업체들은 그나마 배출량이 적은 편인 PHEV라도 들여와 팔아야 기준에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토요타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고요.
소비자 관점에서는 HEV나 PHEV가 BEV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간 단계에서 소비자들의 충전 불편이나 불안을 덜 수 있는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공급자 관점에서는 팔 수 있는 BEV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BEV의 대안 역할로 의미가 있는 거죠. 게다가 한국토요타는 제조사가 아닌 수입사라서 선택의 여지가 좁아서, 이래저래 HEV와 PHEV에 힘을 싣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