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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Carmily에 기고한 글 중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

마이바흐라는 브랜드는 원래 메르세데스 브랜드의 산실인 다임러의 기술 책임자였던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휘발유 엔진의 초창기에 가장 우수한 엔진 설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설계 기술자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다임러를 유명하게 만든 메르세데스 브랜드의 첫 차인 메르세데스 심플렉스의 엔진 역시 그가 개발한 것이었다.

1909년에 이르러 빌헬름 마이바흐는 다임러를 떠나 아들인 카를(Karl)과 함께 체펠린 비행선과 항공기를 위한 엔진을 설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 엔진도 개발해 다른 자동차 메이커에 팔고자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카를은 직접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당대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아버지인 마이바흐가 얻은 최고의 기술자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도록, 최고의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당시 자동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품질과 기술을 한데 담은 가장 뛰어난 차를 만드는 것이 카를의 목표였다. 그는 1919년 첫 실험용 차 W1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21년 베를린에서 열린 모터쇼에 첫 판매용 차인 W3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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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를 거치면서 마이바흐가 내놓은 직렬 6기통 엔진의 고급차들은 유럽의 유명 인사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황실과 왕족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카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기술과 독보적인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V12 엔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노력은 1930년에 결실을 맺어, ‘타입 12(Type 12)’라는 이름의 V12 엔진을 얹은 새 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차에는 마이바흐 체펠린 DS 7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름 가운데 체펠린은 마이바흐가 엔진을 설계하고 당시 세계에 독일을 널리 알린 비행선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었고, DS는 직렬 6기통 엔진 2개를 맞물린 엔진 설계를 뜻하는 더블 식스(독일어로 Doppel-Sechs), 7은 엔진 배기량(7L)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어 1931년에는 배기량을 8L로 키운 마이바흐 체펠린 DS 8을 내놓았다. 이 차는 당시 독일이 만든 승용차 가운데 가장 크고 호화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독일 최고 명차의 아버지인 빌헬름 마이바흐는 자신과 아들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29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많은 고급차들이 그랬듯, 마이바흐 체펠린도 엔진과 구동계, 섀시 등은 마이바흐에서 만들고 차체와 내장재 등은 유명한 코치빌더(전문 차체제작업체)의 손에 의해 따로 만들어졌다. 코치빌더들은 구입하는 이들의 취향에 맞게 차체에서 실내에 이르는 모든 부분을 주문제작했다. 특히 최고급 모델인 DS 8의 차체는 독일의 코치빌더들에 의해 주로 제작되었는데, 만들어진 차들은 차체 디자인도 각기 달랐을 뿐 아니라 실내 꾸밈새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처럼 모든 부분이 주문제작되었기 때문에 마이바흐 체펠린은 1941년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10여 년 동안 DS 7과 DS 8을 합쳐 183대만 만들어졌다. 이는 마이바흐가 만든 전체 차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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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마이바흐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육군의 대표적인 전차인 판터와 티거용 엔진을 만들어 공급했지만, 패전 이후 자동차 분야로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상용 엔진 메이커인 MTU 프리드리히샤펜(Friedrichshafen)으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