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언스북스 DK 대백과사전 시리즈 ‘카 북’ 발행에 즈음해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연재한 글입니다. ]

자동차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자동차 회사가 태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회사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회사는 사라지기 마련이죠. 그리고 ‘규모의 경제’나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규모의 회사보다는 큰 규모의 회사가 생존에는 좀 더 유리한 것이 자동차 업계의 속성 중 하나라고 할까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으면서도 수익성이 좋은 편인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무너지는 회사는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누구나 갖고 싶을 정도로 화려한 차들을 만들었으면서도 어느 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럭셔리 브랜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찌감치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지금도 대중차에서 최고급차까지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골고루 팔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시장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고급차의 수요도 일찍부터 많았는데요. ‘카 북’ 80~81쪽 하단에 자세히 다루어진 패커드(Packard)나 피어스-애로(Pierce-Arrow) 같은 회사도 고급차로 유명했지만, 미국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차를 만든 회사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어번(Auburn), 코드(Cord), 듀센버그(Duesenberg)의 세 회사입니다.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한 지붕 아래에서 만들어진 이들 브랜드는 줄여서 ACD라는 애칭으로도 불립니다.

세 개 브랜드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어번으로 190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찰스 에커트가 만든 마차 회사에서 시작한 어번은 1904년부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던 어번은 1924년에 판매상인 에릿 로번 코드에게 경영권을 넘깁니다. 코드는 곧 회사 이름을 코드로 바꾸고 1926년부터 코드 브랜드의 차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2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고급차 회사 듀센버그를 인수합니다. 듀센버그는 어거스트와 프레드 듀센버그 형제가 만든 회사로 1921년에 처음으로 모델 A를 생산해 시판했지만 초기에는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형제는 기술자로서는 훌륭했지만 차를 파는 방법은 몰랐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당시로서는 앞선 기술을 반영해 훌륭한 차를 만들었지만 알려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1926년에 코드가 인수한 이후에야 빛을 보기 시작했죠.

어번-코드-듀센버그는 자동차 회사로서 규모는 작았지만,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면서 예술적인 디자인의 차들을 만들어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코드는 듀센버그를 유럽의 호화 고급차와 경쟁할 수 있는 대형 고급 세단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쉽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928년에 듀센버그의 대표 모델인 모델 J가 나온 겁니다. 모델 J는 ‘카 북’에서도 52~55쪽에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대 공황 시기에 모든 자동차 회사가 그랬듯 어번과 듀센버그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비싼 값으로 어느 정도 수익성을 확보해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1930년대 포드 모델 A가 400달러 남짓 했고 당시 미국 의사 평균 연봉이 3,000달러를 밑돌았는데, 듀센버그 SJ는 섀시만 8,500달러였고 코치빌더에서 제작한 차체 값까지 합치면 약 1만5,000~2만 달러 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번과 코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랜드였는데, 그래도 포드나 쉐보레 등의 대중차 몇 대를 살 수 있는 값을 치러야 한 대를 구입할 수 있었죠.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호화판 듀센버그는 점차 캐딜락과 링컨에게 밀리기 시작하며 판매대수가 뚝 떨어졌고, 어번과 코드가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작은 회사 규모에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1937년에 이들은 모두 생산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역사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혁신적인 기술과 선구적인 개념으로 자동차 업계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듀센버그의 직렬 8기통 엔진에는 당시 미국 자동차에 드물었던 DOHC 방식이 쓰여 동급 최고의 성능을 냈습니다. 어번의 V12 엔진 차들은 다른 V12 엔진 차들보다 훨씬 저렴했고, 1921년에 나온 듀센버그 모델 A에는 네 바퀴에 모두 유압식 브레이크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드 L-29(50쪽)는 미국 최초로 일반에게 판매된 미국산 앞바퀴 굴림 차였고, 인기 모델 중 하나였던 810(92쪽)에는 세계 최초의 리트랙터블(개폐식) 헤드램프가 쓰였습니다.

또한 이들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반한 헐리우드 스타들도 많이 탔습니다.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그레타 가르보, 타이런 파워 같은 헐리우드 스타는 물론, 하워드 휴즈,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같은 기업가, 심지어는 전설적인 갱 두목인 알 카포네도 듀센버그를 샀습니다. 가히 당대 미국 고급차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이런 특징과 역사적 가치, 그리고 멋진 디자인 덕분에 사라진 브랜드이면서도 팬들이 많습니다.

프랑스의 들라이에도 짧게나마 유럽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 메이커로 손꼽힙니다. 1894년에 처음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들라이에는 주로 트럭을 중심으로 소방차, 농기계 등을 생산했지만 1920년대 후반 들어 승용차로 발을 넓혔고, 고급차 생산에 발을 들인 것은 1932년이었습니다. 대공황 이후 겪고 있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수익성이 높은 고급차를 만들기로 한 것이죠. 

국면 전환을 위해 들라이에는 우선 스포츠카 경주에 출전하기로 했는데, 특이하게도 경주용 차에 앞서 개발해 둔 트럭용 엔진을 얹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트럭용 엔진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성능과 특성 모두 뛰어난 덕분에 승용차용 엔진으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었고, 결국 이 엔진을 얹은 경주차가 여러 개의 속도 기록을 세우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회사 이미지가 크게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35년에 경영난을 겪고 있던 또 다른 프랑스 고급차 메이커인 델라지(Delage)를 인수하면서 고급차 만들기의 행보는 더욱 빨라집니다.

이 즈음에 나온 차가 들라이에의 간판 모델인 135(102쪽)입니다. 135는 여러 종류의 가지치기 모델이 더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생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피고니 에 팔라스키, 앙리 샤프론 등 유명 카로체리아들이 135의 차체를 만들었는데, 실용성보다 화려함을 중시한 호화로운 유선형 디자인이 유행이 되어 당대 다른 나라 차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의 차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카 북’ 99쪽에 나온 들라이에 135M 피고니 에 팔라스키 같은 차가 당시 들라이에 차의 화려함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들라이에 같은 고급차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전쟁 중에 트럭 생산으로 전환한 들라이에는 전쟁 이후에도 한동안 트럭 생산에 주력하다가 1948년부터 다시 135의 생산을 시작하고 좀 더 현대적인 175와 235(107쪽) 등을 내놓았지만 시장에는 고급차를 살 만한 소비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프랑스 정부가 경제부흥을 위해 고급차에 높은 세금을 물리면서 시장 자체가 거의 사라지게 되죠. 결국 1954년에 오치키스에 인수된 들라이에는 이내 자동차 역사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만들어진 여러 들라이에 차들은 희소성과 더불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차체 덕분에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콩쿠르 델레강스(클래식카 디자인 콩쿨)와 클래식카 경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독일 브랜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독일의 고급차 브랜드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전통을 지닌 메르세데스-벤츠가 독보적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견줄 만한 브랜드로 호르히(Horch)가 있었습니다. 1899년에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세운 회사에서 시작한 호르히는 나중에 내부 갈등으로 호르히가 회사를 떠나 새로 만든 회사에서 아우디(Audi) 브랜드를 만들면서 호르히와는 관계 없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회사를 떠난 이후, 호르히는 제품 방향을 최고급차로 정하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26년에 선보인 303을 시작으로 당시 독일 차에 흔하지 않던 직렬 8기통 엔진을 개발해 양산차에 얹어 주목을 받습니다. ‘카 북’ 47쪽에 나온 타입 350은 303에서 발전된 모델입니다.

이후 8기통 모델인 500에 이어 1931년에는 V12 엔진을 얹은 670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V12 엔진을 얹은 최고급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770 그로서 메르세데스와 마이바흐 체펠린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호르히 670은 V12 엔진을 얹은 매우 호화로운 차이면서도 비교적 낮은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고급차로서 아우디의 뿌리는 호르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르히는 1928년에 DKW가 인수한 데 이어 1932년에는 반더러, 아우디와 합병되어 현재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호르히 공장이 있던 츠비카우가 전쟁이 끝난 후 소련 점령지인 동독에 포함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우디 계열 브랜드에서 빠지게 됩니다. 동독에서 잠시 호르히의 이름을 단 차가 생산되기도 했지만, 1958년에 새로운 브랜드인 작센링이 만들어지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자신의 회사를 세우기 전에 카를 벤츠의 회사에서 기술 책임자로 일했었고, 호르히가 회사를 떠난 뒤인 1923년에는 고틀리프 다임러의 아들인 파울 다임러가 호르히에서 8기통 엔진 개발을 지휘했다는 점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다임러와 벤츠의 회사가 합병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흥미로운 인연이 아닐 수 없죠. 여담이지만 1950년대 후반에는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모기업인 다임러 벤츠가 아우토 우니온의 대주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태리에는 이조타 프라스키니(Isotta Fraschini)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1900년에 체자레 이소타와 빈첸조, 안토니오, 오레스테 프라스키니 형제가 밀라노를 근거지로 설립한 이 회사는 1902년에 첫 자동차를 생산했고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유럽과 미국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롤스로이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잘 알려진 유럽 럭셔리 카 브랜드였습니다.

이조타 프라스키니는 1909년에 이미 네 바퀴에 브레이크를 단 차를 내놓았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직렬 8기통 엔진을 얹은 양산차인 티포 8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이조타 프라스키니 생산 대수의 1/3이 미국에서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티포 8의 개량형인 티포 8A(46쪽, 65쪽)는 미국에서 듀센버그 모델 J와 거의 비슷한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미국 영화에도 종종 등장했고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배우들도 즐겨 타곤 했습니다. 티포 8A는 당시 가장 강력한 직렬 8기통 7,372cc 엔진을 얹었고, 휠베이스(앞뒤 차축 사이의 거리)가 약 3,700mm나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경차 길이가 3,600mm인 것을 감안하면 티포 8A의 엄청난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티포 8A는 이후 고성능 버전인 8AS와 8ASS로 가지치기를 했는데, 8ASS는 시속 160km를 넘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8ASS는 1927년 밀레밀리아(1,000마일) 경주에서는 6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때 8ASS 경주차를 몬 사람은 빈도 마세라티였습니다. 이태리를 대표하는 고성능 그랜드 투어링카(GT) 메이커인 마세라티를 창업한 4명의 마세라티 형제 중 한 사람이죠.

하지만 다른 고급차 메이커들과 마찬가지로 대공황에 큰 타격을 입어 차츰 내리막을 걷게 되었는데, 워낙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때 헨리 포드가 이조타 프라스키니를 미국에서 생산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이태리 정부가 이를 막아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이조타 프라스키니의 엔진 기술에 관심이 있던 이태리 항공기 회사가 1932년에 인수했고, 이후 자동차 생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다시금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내놓은 8C 몬테로사(106쪽)를 마지막으로 1949년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합니다.

이후 선박용 엔진과 트럭을 생산하다가 1955년에 트럭 생산까지 중단하고 엔진 회사인 브레다와 합병해 근근이 명맥을 이어 오다가 조선업체인 핀칸티에리 그룹에 흡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워낙 이름난 브랜드여서 자동차 브랜드로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결과물은 나온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으로 넘어가 보죠. 스페인의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지금은 폭스바겐 계열의 세아트를 빼면 자생적인 대형 자동차 브랜드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고급차를 만드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파노-스이자(Hispano-Suiza)입니다. 

이스파노-스이자는 스페인어로 스페인-스위스를 뜻하는 말인데, 이는 회사 설립의 주역인 다미안 마튜(Damian Mateu)와 마크 비르키트(Marc Birkigt)가 각각 스페인과 스위스 출신인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회사는 1904년에 스페인에서 시작했지만 부침을 거듭했고, 1911년에 프랑스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고급차 생산을 시작했고,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면서 명성을 얻습니다. 1차대전 중 프랑스의 대표적인 전투기로 많은 에이스 파일럿을 배출한 SPAD S.XIII도 이스파노-스이자 엔진을 썼습니다. 페라리의 프랜싱 호스 엠블럼의 기원이 된 이태리 파일럿 프란체스코 바라카도 SPAD 전투기를 몰았죠.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에 내놓은 H6(46쪽)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H6은 처음부터 유럽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럽고 매력적인, 그리고 가장 값비싼 차를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항공기용으로 개발된 V12 엔진의 절반을 활용한 직렬 6기통 6.5L 엔진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배력식 서보 브레이크를 쓰는 등 혁신적인 면모도 갖췄지만, 무엇보다 호화로운 꾸밈새가 돋보였습니다. 다만 이스파노-스이자는 엔진과 구동계를 비롯한 하체만을 만들었고, 차체와 실내는 코치빌더, 즉 카로체리아가 만들었습니다. 물론 당대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카로체리아들에게만 하체가 제공되어 예술적이면서도 호화로운 차로 만들어졌죠. 덕분에 유럽에서는 부가티, 롤스로이스,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6기통 엔진만으로는 고급차로서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한 이스파노 스이자는 V12 엔진을 얹은 모델도 내놓습니다. V12 엔진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서, 마지막에는 배기량이 무려 11.3L에 이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 대공황의 여파가 유럽에까지 미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1936년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 후 항공기 엔진과 산업용 터빈 생산에 전념하게 됩니다. 지금은 프랑스 사프란 그룹 산하에서 항공기 엔진 관련 부품을 주로 설계하고 생산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과 보잉의 최신형 여객기인 787에도 이스파노-스이자에서 만든 부품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우디, 폭스바겐, 세아트 디자이너 출신인 엘빈 레오 힘멜이 브랜드 상표권을 사들여 이스파노-스이자를 부활시켰지만, 과거 이스파노 스이자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 이스파노-스이자는 아우디 R8 V10에 뿌리를 두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