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보여준 유별난 차 ‘트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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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2014년 6월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될 때, 일자리를 찾으러 서독으로 향하던 동독 주민들의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들은 통독에 따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진 속 동독 주민들이 타고 있던 차가 한결같이 같은 모양새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공산 국가였던 동독의 국민차로 불린 트라반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트라비’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트라반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의 옛 공장이 있던 츠비카우에서 1957년부터 생산되었다. 이 차는 공산 국가의 계획경제와 비효율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 통일 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생산량을 국가가 제한했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도 생산이 충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한 번 주문하면 10년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장 독특한 부분은 철제 구조 위에 올라간 플라스틱 차체였다. 차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른 차들도 있지만, 특히 트라반트에 쓰인 플라스틱은 다른 차에서는 볼 수 없는 유별난 것이었다. 보통 자동차 차체에는 미관과 내구성, 충격흡수 능력을 고루 고려한 플라스틱이 쓰인다. 그러나 트라반트 차체에 쓰인 플라스틱은 순전히 내구성만을 염두에 두었다. 제조과정에서 페놀 수지를 소련이 공급한 목면 섬유와 섞어서 만들어, 제조 방법은 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FRP)과 비슷하지만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트라반트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플라스틱 차체가 철제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고 녹슬지 않는다는 점이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곧 단점이 드러났다. 차체가 너무 딱딱한 탓에 충격이 가해지면 깨지기 쉬웠고, 깨지면 수리하기도 어려웠다. 오래 쓰면 햇빛에 색이 바래기도 했다. 볼품없고 잘 부서지는 이 차를 동독 사람들은 ‘골판지’라고도 불렀다. 낡은 엔진은 성능을 논할 수준도 못 되었고 매연도 심했다. 그래도 1957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된 수는 약 310만 대에 이르러 소련 이외 공산권 국가에서는 가장 많이 생산된 차 중 하나로 꼽힌다.

생산 중단 뒤에도 트라반트는 한동안 독일의 골칫거리였다. 유별난 플라스틱 차체가 재활용은커녕 폐기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속품은 망가져도 차체는 남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오랜 세월 많이 폐차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독일에는 3만여 대의 트라반트가 남아 냉전시대를 떠올리는 추억의 아이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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