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의 상징 터보, 다운사이징을 맞아 고분고분해지다

[한국일보 2015년 8월 31일자에 ‘”연료 절감·배기가스 줄이자” 다운사이징에 앞길 내주는 터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요즘 자동차용 엔진의 기술적 변화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다. 크기를 줄인다는 뜻의 이 말이 엔진에서는 배기량과 연관되어 쓰인다. 흔히 같은 차 또는 같은 이름을 쓰는 새 모델의 엔진이 이전보다 배기량이 작은 것으로 바뀌었을 때에 다운사이징 했다고 한다. 

엔진 다운사이징의 가장 큰 목적은 연료소비와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자동차 업계가 주안점을 두는 것은 배기가스 배출량 감소다. 이는 배기가스 총량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여러 나라에서 자동차 회사가 생산하는 모든 차의 배기가스 총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규제하려는 법규를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생산 차종 중 큰 배기량으로 높은 성능을 내는 엔진을 쓰는 것이 많은 회사들은 이런 법규의 적용을 받으면 불리해진다. 따라서 성능은 배기량이 큰 엔진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려고 다운사이징을 활용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연료 소비량이 적은 것이 매력이겠지만, 실제로 다운사이징한 차들을 보면 연비향상 효과는 획기적일 정도로 크지는 않은 것이 많다. 

다운사이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는 흔히 터보라고도 부르는 터보차저(turbocharger)가 꼽힌다. 터보는 엔진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힘으로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를 압축시킴으로써 성능을 높이는 장치다. 특히 디젤 엔진과 궁합이 잘 맞아, 요즘 디젤 승용차에는 대부분 터보 엔진이 쓰인다. 휘발유 차에서도 V8 엔진 대신 V6 엔진과 터보, V6 엔진 대신 4기통 엔진과 터보를 결합한 것을 쓰는 일이 많다.

터보는 다운사이징 흐름과 더불어 일반 승용차용 엔진에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지만, 과거에는 일부 고성능 차에 주로 쓰였다. 처음 양산 승용차에 쓰인 것은 1962년 올즈모빌 제트파이어였지만 문제가 많아 금세 생산이 중단되었고, 본격적으로 승용차에 쓰인 것은 1973년에 나온 BMW 2002 터보와 1974년에 나온 포르쉐 911 터보부터였다. 이처럼 성능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스포츠카에 쓰이면서 터보는 고성능의 상징이 되었다.

1977년 이후 사브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차 브랜드에서도 터보 엔진을 단 차들이 늘기는 했지만, 여러 자동차 회사가 활발하게 쓰기 시작한지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또한, 과거와 달리 요즘 터보 차들은 성능을 아주 많이 높이는 경우가 드물다. 성능을 지나치게 높이면 그만큼 연료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강력함의 상징이던 터보도 다운사이징이라는 대세 속에서 효율과 경제성을 고려해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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