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7년 2월호 ‘미래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누가 갖게 될까?’ 피처 기사에 포함된 제 글의 원본입니다. 세 명의 자동차 칼럼니스트가 기존 자동차 업체와 신생 자동차 업체 중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게 될 지를 놓고 각자의 의견을 펼쳤고, 저는 기존 자동차 업체가 주도권을 쥘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주도권을 쥐는 이유
자동차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최소 10년 정도는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이어나갈 듯하다.
우선 자동차 동력원의 중심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로 옮겨가기까지 걸릴 시간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다.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생산된 자동차는 약 9,078만 대였다. 그런데 2015년에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약 55만 대(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로, 블룸버그 NEF는 약 46만 2,000여 대로 추산했다. 모두 전기차가 2014년보다는 60퍼센트 이상 늘어났음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5~0.6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IEA의 예측에 따르면, 빠른 성장세에도 2030년 세계 시장에서 연간 생산 또는 판매되는 전기차의 비율은 20퍼센트 전후가 될 듯하고 그중 대부분은 OECD 회원국과 성장 속도가 빠른 경제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세계 규모로 보았을 때 내연기관 차는 2030년에도 저개발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체 연간 새차 판매의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시장이 이미 성숙해 성장이 둔화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선진시장과 달리, 신흥시장은 아직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다국적 컨설팅 업체 매킨지는 신흥시장이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50퍼센트에서 2020년에는 60퍼센트로 늘어나리라고 전망했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관련 인프라를 빠르고 폭넓게 확충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내연기관 차 중심의 시장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다만 중국은 빠른 양적 팽창으로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정부 정책 덕분에 다른 시장보다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중국에서도 내연기관 차가 생산과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적어도 신흥시장 중심으로 내연기관 기술을 갖고 있는 기존 업체의 영향력은 꾸준히 유지될 것이다.
또한 주요 자동차 업체는 이미 나름의 전기차 관련 솔루션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오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도 전기차 판매와 생산 10위 안에 들어가는 것은 대부분 기존 업체다. 테슬라가 두드러질 뿐,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업체인 BYD를 포함해 BMW, 닛산, 르노, 미츠비시, 폭스바겐, 베이징 등 전기차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업체 대부분이 내연기관 차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기술 관련 솔루션도 기존 업체들이 쌓아온 기술을 무시할 수 없다. 도로 상의 수많은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적인 자율주행 시스템을 갖추려면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필드 데이터를 많이 쌓고 알고리즘에 반영해야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기존 완성차 및 유관 업체와 학계가 1980년대 유레카 프로메테우스(Eureka PROMETHEUS) 프로젝트 이후 여러 독자 또는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쌓은 기술과 필드 데이터는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해 왔다. 다만 자율주행이 이슈가 될 즈음에 등장한 신생 업체의 혁신적 이미지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기존 업체가 가장 유리한 부분은 이미 갖춰진 생태계를 바탕으로 자동차라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업체는 자재의 부품과 조달, 제품의 판매와 유통, 사후 서비스 체계 등 실제 소비자가 차를 고르고 사서 쓰는 과정을 모두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각국 자동차 관련 법규와 규정, 기준을 따른 제품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공급할 수 있고, 제품 품질과 내구성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된다. 이는 100년 이상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거쳐 지금에 이른 것이고, 신생 업체가 짧은 시간 사이에 따라잡기 어렵다. 전기차나 자율주행 기술이 패러다임을 바꾸더라도, 기계를 이용해 움직이는 제품이라는 자동차의 특성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행 업체의 혁신이 자동차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놓기 전까지는 기존 업체의 강한 영향력이 이어질 것이다.

신생 업체들이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이유
지난 몇 년 사이에 자율주행 및 전기차 관련 기술과 부품 값이 낮아지면서 신생 업체가 자동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혜택은 신생 업체뿐 아니라 기존 업체도 함께 누리고 있고, 대량 구매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기존 업체가 더 유리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 업체는 내연기관 차를 비롯해 다른 수익기반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수익성과 자금 흐름도 훨씬 더 안정적이다.
공급능력도 신생 업체가 기존 업체를 위협할 수준이 되기는 이르다. 2016년 기준으로 테슬라의 생산능력은 연간 10만 대 수준이다. 물론 2017년 말부터 판매될 예정인 모델 3은 이전의 모델 S나 모델 X보다 대중적인 모델로 대량생산이 필수여서 테슬라의 공급능력을 입증할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지금보다 몇 배 많은 차를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신생 업체라도 기존 업계의 시설을 활용하고 노하우가 있는 인력을 영입해 비슷한 인프라를 갖출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시스템이 최적화되고 품질이 안정되어 높은 수준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특정 자동차 업체가 해외 공장을 지었을 때 대부분 품질문제가 불거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생 업체들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있다. 자율주행 기술도 마찬가지이듯, 전기차는 아직 연구개발비는 많이 들어가지만 상대적으로 수익은 작다. 따라서 다른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이 없으면 차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어렵다. 테슬라가 자동차 부문에서 아직 순이익을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테슬라 CEO인 엘런 머스크가 2018년까지 생산능력을 연간 50만 대로 끌어 올리겠다고 한 것도 그 정도는 만들어 팔아야 이익이 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생 업체들은 흐름을 이끌 수는 있어도 짧은 시간 사이에 시장을 지배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동차 사용 행태나 환경의 변화가 기존 업체의 대량생산 및 공급이라는 사업 모델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화도 당분간은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시장 규모로 본다면 당분간 기존 자동차 업체의 영향력은 유지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