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1월 모 PC통신 자동차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
전통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비수기라는 겨울, 그룹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난 대우의 첫 RV 레조. 매그너스와 함께 비장한 각오로 판매전선에 뛰어든 레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차발표회와 출고시점과의 간격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고가 벌써 1달 생산분을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놀랍기까지하다.
레조는 배기량으로 본다면 기아 카스타와, 가격이나 크기로 보면 기아 카렌스와 비교할 수 있다. 판매전략상으로 보면 카렌스를 타겟으로 삼고있는 것이 분명하고, 2.0리터 엔진으로 성능에서의 우위를, 그리고 다양한 편의장비와 고급스러운 실내공간으로 실용성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유럽식의 레조와 일본식의 카렌스, 어느 차가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지 자못 궁금해진다. 슬슬 2박 3일간 레조를 시승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외관은 한마디로 단단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두리뭉실한 느낌을 주지만 구석구석에 심심하지 않도록 포인트를 주어 싱거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외관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컨셉트카였던 타쿠마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균형감각이 돋보이지만 내놓고 피닌파리나의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이전의 감각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키 큰 차이긴 하지만 승용차를 베이스로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케 할 정도로 범퍼가 낮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때문에 범퍼와 래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가 차곡차곡 쌓인 독특한 형태의 배치를 갖고있다. 옆에서 보면 뒤쪽으로 갈수록 위로 올라가는 사이드 윈도우 라인 때문에 앞쪽으로 쏠려보인다. 라인을 살리기 위해 균형감각을 포기한 느낌이다.
높이 위치한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는 시원해보이고 시인성도 좋은 클리어 렌즈타입으로, 뒷부분은 아토스나 크레도스 파크타운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스마일 사인을 연상시키는 뒤쪽 깜빡이 램프로 포인트를 주었다. 하지만 야간에 보는 뒷모습은 아토스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비슷하다.
외관에 있어서는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동물적인 프론트 페이스를 제외한다면 당차다는 느낌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은 없다. 그냥 찬사도 비난도 어울리지 않고, ‘잘 됐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실내 스타일은 외양에 비해 점잖고 우아하다. 외양에서 피닌파리나의 느낌을 쉽게 느끼기 어려운데 비해 실내에서는 이탈디자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특히 부드러운 곡선으로 원형에 가깝게 처리된 센터 페이셔는 실용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기본형 오디오는 누비라 II에서는 주변이 화려해 조금 엉성한 느낌을 주는데 비해 레조에서는 딱 알맞게 느껴지고, 버튼이 커서 조작하기에 편리하다. 옵션으로 장착된 AV 시스템은 뒷좌석에서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5.8인치 LCD 모니터를 갖추고 있으나 버튼이 작고 직관성이 떨어져 익숙해지기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또한 화면에 표시되는 메뉴의 한글표시가 아쉽다.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여 약간 위쪽을 바라보고있는 공조시스템은 그래픽이 뚜렷하고 보기좋을 정도로 크게 표시된다. 게다가 위치도 적절하여 조작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이만큼 조작편의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인스트루먼트 패널 레이아웃도 보기 드물 것이다.
모든 필러가 상당히 두터워 안전에 구조적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A 필러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보아온 여러 차들 중 가장 두터운 것 같은 느낌이다. 개발자와의 토론회에서 유로 NCAP 테스트에서 최고점인 별 4개를 얻었다고 하며 에어백 없이도 탑승자 상해도가 낮다고 하는 섀시 담당자의 말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실내공간은 꽤 넉넉하다는 느낌이 든다. 2열 좌석의 슬라이딩 기능 덕분에 조금만 조절을 하면 대형 고급차 못지않게 넉넉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2열 좌석은 2명이 타는 것을 기준으로 편의장비를 만든 것 같다. 센터 암레스트와 함께 4륜구동 승용차에서 볼 수 있는 접이식 사이드 암레스트를 내리면 매우 편안한 좌석이 된다. 약간 딱딱한 쿠션의 시트 덕분에 장시간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때문에 시승기간 중 절반 이상을 2열 좌석을 고집했다. 같은 쿠션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석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을 생각하면 운전석 히프포인트를 조금 높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운전석은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시트가 몸에 맞지 않아 조금 고생을 했다. 조수석에 앉아도 비슷한 불편을 느껴지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허리부분 쿠션을 조금 더 보강하는 것이 좋겠다. 운전석의 요추받침 조절장치도 조금 작동범위를 키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페달위치를 비롯한 운전석 레이아웃은 더 조절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페달의 높이와 각도가 조금 애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페달 높이가 낮은 편이라 발 뒷꿈치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페달을 움직여도 발바닥 중간부분에 페달이 놓여 세밀한 페달조작이 어렵다. 움직이는 각도를 조절하거나 페달 높이를 조절하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하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울러 풋레스트의 각도와 폭도 조금 더 손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열 좌석은 접어도 처리가 불편하고, 펴 놓아도 있으나 마나한 걸리적거리는 존재일 뿐이다. 필자의 앉은 키가 좀 큰 편이기는 하지만 3열 좌석에 직접 앉아보니 성인이 앉기에는 무리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더라도 앉기에 불편할 것이다. 특히 2, 3열 좌석을 접었을 경우 헤드레스트의 처리가 애매하다. 카렌스와 같은 사소한 배려가 아쉽다.
사족이지만, 실내공간은 넉넉한 만큼 쓸모없이 비는 공간이 많은 느낌이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보다 더 다양한 편의장비를 배치할 수 있지 않을까.
편의장비는 사소한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우선 공조장치는 그래픽이 커서 상태를 확인하기 편하고 버튼이 커서 다루기 쉽지만 풍량조절버튼과 온도조절버튼은 아래위로 조금 길이를 늘리는 것이 사용하기에 편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뒷좌석 중앙 암레스트의 컵홀더는 뚜껑을 열 때 자칫 잘못하면 손을 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접히는 부분을 고무재질로 마무리한다면 상처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1열 좌석은 좌우공간이 충분한 것을 감안한다면, 워크스루기능이 없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뒤쪽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수용의 사양과 수출용의 사양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7인승 패키지에 맞춘 내수용 모델은 편의장비면에서 수출용에 비해 손해를 보는 것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그 중에서도 트렁크 러기지 스크린은 자리가 만들어져 있음에도 제공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3열 좌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제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엔진은 프린스/레간자에 사용되었던 2.0 SOHC LPG 엔진의 개량형이다. 레이아웃은 일반적인 레이아웃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덕분에 비교적 컴팩트한 엔진룸에서도 정비하기 충분할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레조네이터에서 에어클리너로 이어지는 파이프가 특이하다.
진동과 함께 소음이 작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LPG 엔진이 조용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이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 택시들이 LPG 엔진을 사용하는데도 그다지 조용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승용차에 있어서는 메리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엔진마운트도 독특한 구조로 진동을 억제하도록 되어있어 시동이 걸려있는데도 운전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다시 시동을 거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3천 rpm 이상으로 올라가면 엔진소리가 거칠어지지만, 실용영역에서는 상당히 조용해서 개솔린 엔진은 후드 인슐레이션 패널이 장착되지만 LPG 엔진은 장착되지 않는다고 한다.
풍절음도 시속 100km 이전까지는 거의 들리지 않고, 시속 130km를 넘어서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다. 풍절음이나 엔진소음보다는 노면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1열 좌석보다는 2열 좌석에서 들리는 소음이 약간 더 거슬린다. 빈 3열 좌석 공간에 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보다는 볼록 튀어나온 리어컴비네이션 램프 때문에 와류가 생겨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소음의 정도는 크지 않아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M/T 모델의 클러치 페달은 상당히 부드럽다. 클러치의 연결감은 물론 페달작동 자체가 상당히 부드럽다. 그러나 부드러운 작동감에 비해 페달의 움직임이 너무 커 어색하게 느껴진다. 변속이 잦은 시내구간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캐스터각이 큰 탓인지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 처음 돌리기 시작할 때의 감각과 이후의 감각이 차이가 있다. 이런 감각은 출발할 때에 비해 주행시에는 조금 약해지지만 주행시에도 바퀴가 정확히 앞을 향할 때와 각도를 주었을 때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핸들링이 민감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자칫 조금 큰 각도로 스티어링 휠을 돌리게 되면 차체의 롤이 쉽게 다가온다. 게다가 전후 무게배분이 전륜구동차량으로서는 비교적 잘 되어있는 편이라 회전반경이 큰 코너에서는 약간의 오버스티어가 느껴진다.
미니밴으로서는 비교적 낮은 차체와 약간 소프트하게 셋팅된 서스펜션 덕분에 고속회전시 약간의 롤이 느껴지지만 부드럽게 시작되어 부드럽게 끝나기 때문에 그다지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노면진동도 잔잔하게 전달되며 차급을 생각한다면 충격흡수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A/T차의 경우 킥다운시 변속 후 초기에는 움찔하다가 1~2초 정도 지난 후에 묵직하게 나간다. 가속 역시 가솔린엔진만큼 시원하지는 않다. 4천에서 5천 rpm 영역에서의 페달 느낌이 가장 좋았다. 차량중량이 무겁고 길이 잘 들지 않은 탓인지 액셀러레이터는 그다지 고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페달감각은 1/3에서 2/3정도 밟을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둔한 느낌이 든다. 다른 페달들과 마찬가지로 페달이 움직이는 각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다른 차들의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는 느낌으로 밟아도 2/3 정도밖에는 밟히지 않은 상태다.
M/T 차의 경우 가속시 3천 5백에서 4천 5백 rpm에서 약간 움찔하는 느낌이 든다. 필자의 시승차만 그런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른 시승자도 같은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니 시승차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상적인 도심주행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추월시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쉬프트레버의 연결방식이 로드타입이기 때문에 변속시 기어가 물리는 느낌이 깔끔하다. 다른 대우차들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상대적으로 약간 묵직해서 제법 변속하는 맛이 좋다. 아쉬운 점은 A/T차량도 마찬가지지만 레버의 길이가 조금 짧은 느낌이 든다.

정리하자면 레조는 편안한 4인승 승용차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강하다. 경쟁차인 기아 카렌스도 마찬가지겠지만 7인승은 특혜를 위한 무리수라고 느껴진다. 7인승 LPG 미니밴을 구입한 사람들 중 항상 모든 좌석을 꽉 채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레조의 레이아웃은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여러가지 수납공간과 다양한 편의장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RV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대우가 처음 개발하는 RV였기 때문이겠지만, 조금 편안하고 넉넉한 승용차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RV의 향기보다는 승용차의 느낌이 진하다. 미니밴과 승용차의 중간개념의 새로운 크로스오버라는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는 약간 애매한 위치 때문에 누비라 스패건과 판매간섭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