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M대우 사외보 고객사랑 2008년 7월호에 쓴 글입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패전국이라는 불명예보다 전쟁으로 인한 황폐화와 경제난, 그리고 원치 않은 분단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은 경제재건을 위해 애쓰면서도 전쟁의 상처와 생활의 어려움을 달랠 수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때마침 전쟁의 직접적인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유럽의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 기술개발을 위한 실험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국민들의 자부심도 북돋웠던 모터스포츠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 모터스포츠를 통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던 독일의 다임러-벤츠(이하 벤츠)도 살림살이를 추스르자마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여력은 없었지만, 벤츠는 전쟁 이전에 완성해 놓았던 엔진과 차체 설계를 가지고 경주차를 만들었다. 벤츠는 비교적 전쟁의 피해가 적었던 다른 나라의 메이커들과 경쟁을 벌여야 했는데, 결정적으로 당시의 벤츠 경주차는 자동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엔진의 성능이 다른 차들만 못했다. 기술자들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주차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차체를 가볍게 해 성능을 보완하는 방법이었다.

당시의 자동차는 대개 사다리꼴로 만든 프레임 위에 차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방식의 차는 무게가 많이 나갔다. 벤츠는 이런 방법 대신 속이 빈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하는 방식의 ‘스페이스 프레임’을 쓰기로 했다. 건축물의 철골 구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방식의 구조물은 구조물에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구조의 일부분이나 전체에 가해지는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매우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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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경주차 중의 하나가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이었다. 이 차는 1952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오래지 않아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은 여러 장거리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1,000마일(약 1,600km)의 코스를 달리는 이태리의 밀레 밀리아 경주와 함께 고성능을 내기 위해 개조한 300 SLR 경주차가 프랑스에서 열린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벤츠는 유럽에서 다시금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벤츠의 승전보는 대서양 건너 미국에도 전해졌는데, 미국에서 이 소식을 반긴 사람들 가운데에는 당시 벤츠를 미국에 수입해 팔던 막시밀리안 호프만(Maximillian Hoffman)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호프만은 판매 수완과 함께 제품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직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유럽과 달리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 오래지 않아 고급 스포츠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아가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경주차의 성능을 내면서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차는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내 호프만은 독일 벤츠 본사를 찾아가 300 SL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미국에서라면 그런 차를 1,000대는 어렵지 않게 팔 수 있을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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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벤츠 경영진은 그의 제안에 반신반의 했다. 독일의 경제상황은 여전히 좋은 편이 아니었고, 벤츠 역시 경주차 수준의 차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독일경제는 안정세에 접어들었고, 아데나워 수상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벤츠 차를 구입한 뒤로 독일 내에서의 벤츠의 입지도 든든해졌다. 그러는 사이 호프만의 설득도 꾸준히 이어져, 마침내 벤츠는 300 SL을 일반인을 위한 스포츠카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데뷔 무대도 유럽이 아니라 핵심 시장이 될 미국으로 잡아, 1954년 2월에 열린 뉴욕 모터쇼를 통해 300 SL 쿠페를 세계인들 앞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300 SL 쿠페의 데뷔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경주차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설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300 SL은 직접 차를 사고 몰아보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매료시켰는데, 그 이유는 바로 독특하고 멋진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날개처럼 위로 들어 올려 여는 방식의 도어였다. 경주차에서도 쓰였던 이 도어는 사실 300 SL 쿠페의 스페이스 프레임 설계가 갖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궁여지책이었다. 경주차로 쓰이는 것을 고려해 설계된 스페이스 프레임은 차체가 비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앞뒤 바퀴 사이의 차체 중간부분까지 높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이 때문에 앞을 향해 열리는 일반적인 도어를 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갈매기 날개와 닮았다고 해서 ‘걸 윙’(gull wing)이라는 이름이 붙은 위를 향해 열리는 도어였다. 이 도어는 300 SL 쿠페의 상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많은 스포츠카 디자인에 응용되어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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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는 이후 3년 동안 1,400대의 300 SL 쿠페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해졌다. 호프만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멋진 스타일과 뛰어난 성능을 지녔으면서도 300 SL 쿠페는 완벽한 차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걸 윙’ 도어는 아름답기는 해도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무척 불편했다. 또한 경주차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만큼 운전이 까다로웠는데, 적지 않은 운전자들이 이 때문에 사고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는 일도 벌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300 SL 쿠페는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게다가 실내의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더위에 고생하는 운전자들도 많았다.

300 SL 쿠페에 대한 불만을 들은 벤츠는 결국 3년 만에 300 SL 쿠페의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300 SL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벤츠는 1957년에 지붕이 고정된 형태의 쿠페의 자리를 지붕을 접고 펼 수 있는 로드스터 모델로 대신 채웠다. 300 SL 로드스터는 기본적인 디자인은 쿠페와 비슷했지만 많은 부분이 새로워졌다. 스페이스 프레임의 도어 아랫부분을 개조해 일반 도어를 달아 차에 타고 내리기 편하게 만들었고, 운전하기 쉽고 승차감이 편하도록 뒤쪽 서스펜션을 크게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300 SL은 매력적인 ‘걸 윙’ 도어가 사라지고 경주차에 가까운 민첩한 몸놀림은 사라진 대신, 고급 오픈카의 성격이 잘 표현된 완성도 높은 차로 다시 태어났다. 300 SL 로드스터는 혁신적이었던 300 SL 쿠페보다 장수해, 1963년 2월까지 모두 1,858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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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디자인과 경주차 수준의 탁월한 성능을 모두 갖췄던 300 SL은 1970년대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수퍼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300 SL은 클래식카 애호가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차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1999년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포츠카라는 뜻에서 ‘세기의 스포츠카’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출신의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아시아 처음으로 구입해 타고 다닌 차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