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6년생” – 25년 전에 태어난 자동차 25 모델 (5-끝)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6년에 처음 등장한 차들을 돌아보는 기사의 마지막 다섯 번째 조각입니다. 첫 번째(링크), 두 번째(링크), 세 번째(링크), 네 번째(링크) 글에 이어, 탄생 25주년을 맞은 또 다른 다섯 모델을 하나하나 둘러보겠습니다.


#21. 현대 다이너스티

1992년에 출시된 2세대 그랜저(LX) 즉 뉴 그랜저를 바탕으로 한층 더 고급화한 현대의 최상위 모델로 1996년에 출시된 모델이 다이너스티입니다. 뉴 그랜저가 너무 폭넓은 소비자층을 상대하게 되면서, 상위 모델 수요층의 요구를 충족할 만한 모델을 분화할 필요가 생겨 만든 모델이죠. 출고 후 몇몇 부품만 바꿔 2.0L 엔진 모델이 V6 3.0L 엔진 모델로 탈바꿈하는 일들도 흔했으니, 비싼 돈 주고 산 소비자들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들 필요도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경쟁 업체들도 최상위 모델을 앞다퉈 내놓거나 개발하고 있던 시기여서, 현대 입장에서는 그에 대응할 필요도 있었고요.

외모는 뉴 그랜저의 앞뒤 모양을 바꾼 정도에 그쳤고, 실질적으로는 뉴 그랜저의 V6 엔진 상위 트림만 분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V6 3.0L와 V6 3.5L 엔진 모델만 나오다가 나중에 V6 2.5L 엔진 모델이 추가되었고, 에쿠스 출시 후에는 V6 3.5L 엔진 모델이 빠졌습니다. 뉴 그랜저를 뛰어넘는 ‘물침대’ 승차감으로 특히 이름을 날렸죠.

기술적으로 대단히 특별한 것은 없지만 미츠비시와 공동 개발한 현대 최상위 모델 역사에서 좀 더 독자성을 추구했다는 점, 에쿠스 데뷔 전까지 짧은 기간 현대의 새로운 최상위 모델 역할을 했다는 점, 현대 최상위 모델 역사상 처음으로 롱 휠베이스+긴 뒤 도어를 갖춘 ‘리무진’ 버전이 나왔다는 점, 세계 최초 뒷좌석 전면 에어백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 등도 기억해둘 만한 모델입니다.


#12. 현대 티뷰론

1996년에 나온 현대 티뷰론은 현대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찹니다. 스쿠프로 처음 스포티한 성격의 2도어 쿠페를 시도했던 현대가 ‘스포츠 룩킹 카’를 벗어나 좀 더 본격적인 스포츠 성격의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모델입니다. 특히 근육질 느낌을 강조한 스타일은 앞서 선보인 HCD 시리즈 콘셉트카들의 영향으로 디자인 측면에서도 파격적인 느낌을 주었죠. 당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적 드림카’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개발명 ‘J2 쿠페’에서도 알 수 있듯, 아반떼의 기술적 요소를 바탕으로 만들었죠. 그렇지만 아반떼와 적잖이 달랐고, 스타일도 훨씬 더 스포티했습니다. 스포티한 성격의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는 요소들도 더 많이 갖추고 있었고요. 나아가 현대의 신기술 시험대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현대가 독자 개발한 1.8L 및 2.0L 베타 엔진을 얹었고, 국제 모터스포츠 출전을 염두에 두고 알루미늄 보디 모델을 소량 한정 생산한 것이 대표적이고요.

스쿠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음에도 성능 면에서는 본격 스포츠카 대열에 올리기에 여전히 부족했지만, 당시 글로벌 시장 동급 모델들과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할 만큼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차가 티뷰론이었습니다. 특히 현대의 기술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합니다.


#23. 혼다 스텝왜건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영 생소할 혼다의 미니밴입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에서 MPV는 대부분 흔히 ‘봉고차’라 불리는 상용차 기반 원박스 스타일 미니밴이었는데요. 혼다가 승용차 기반 미니밴 오디세이로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앞바퀴굴림 구동계와 승용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좀 더 공간을 키워 실용적이고 편안한 미니밴으로 내놓은 것이 스텝왜건이었습니다.

한창 지붕이 높고 실내 공간이 넓어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MPV가 붐을 이루던 시절이어서, 스텝왜건은 다른 업체들이 비슷한 성격의 경쟁 모델을 내놓을 때까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기본 모델의 외모는 아주 단순했고, 실내도 간결하고 기능적이었습니다. 물론 좀 더 화려하게 꾸민 모델도 선택할 수 있었고요. 값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고요.

일본이 주력 시장이기는 하지만, 좌측통행 도로인 시장에는 수출도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모델 체인지를 거쳐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고요. 독창적 아이디어와 대중성을 잘 결합해 인기 모델을 여럿 내놓던 시절의 혼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델 중 하나가 스텝왜건입니다.


#24. GM GMT200/U보디 미니밴

쉐보레 벤처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미니밴 시장이 성장하자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었던 GM이 1세대 모델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보편적 성격으로 방향을 바꿔 내놓은 2세대 승용 기반 미니밴들이 GMT200/U보디 모델들입니다. 당시 미국 브랜드 미니밴들이 대부분 그랬듯, 벤치마크가 된 것은 역시 크라이슬러 계열 브랜드 차들이었고, 그래서 조금은 스포티하고 승용차에 더 가까왔던 1세대 모델들보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편적 미니밴의 성격에 가까와졌습니다.

1996년에 쉐보레 벤처가 가장 먼저 선보였고, 순차적으로 폰티액 트랜스 스포트/몬태나, 올즈모빌 실루엣, 뷰익 GL8(중국), 오펠/복스홀 신트라(유럽) 등이 나왔습니다. 미니밴 시장이 성숙기에 이른 시점에 나온 모델들인 만큼, 수요를 폭넓게 끌어들이기 위해 일반 휠베이스와 롱 휠베이스 모델이 모두 나온 것은 크라이슬러 계열 모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플랫폼 기반 모델 중 가장 장수한 것은 중국 시장에서 팔린 뷰익 GL8입니다. 1999년부터 판매되어 나름 ‘럭셔리 MPV’로 시장에서 자리를 잘 잡은 덕분에 후계 모델 등장 이후로도 2016년까지 생산되었습니다.

한창 미니밴이 인기 있던 시절에 나온 모델이어서 어느 정도 판매가 되긴 했지만, GM의 미니밴 판매는 이 시절을 경계로 슬슬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존재감도 희미해지고요. 오히려 GMT200/U보디 미니밴들은 시간이 흘러 유튜브를 통해 전파된 충돌시험 영상으로 이름을 날립니다. 유로 NCAP 충돌시험에서 오펠/복스홀 신트라가 대파되면서 별 다섯 개 등급에서 별 두 개밖에 얻지 못해 화제가 되었죠.


#25. TVR 서베라

영국의 소규모 독립 스포츠카 브랜드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TVR이 만든 모델 중 하나입니다. 1981년부터 2004년까지 23년간 이어진 ‘피터 휠러 시대’ 2기의 대표 모델 중 하나기도 하죠. 휠러는 성공한 사업가기도 했지만 자동차 애호가기도 해서, TVR 인수 후 자동차 개발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베라는 그리피스, 키마이라에 이어 피터 휠러 시대 2기에 만들어진 세 번째 모델입니다. 오랫동안 로버에서 공급받았던 V8 엔진을 BMW 인수 이후 못 받게 되자, 아예 엔진을 독자 개발해 생산해 얹은 첫 모델이 서베라였습니다. V8 엔진 모델은 스피드 에잇(Speed Eight), I6 엔진 모델은 스피드 식스(Speed Six)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죠. 모든 모델이 시속 100km 정지 가속 4초 전후의 성능을 냈고, 가장 강력한 모델은 최고속도가 시속 300km를 웃돌았습니다.

근육질의 세련된 스타일, 낮고 가벼운 차체, 강력한 성능과 준수한 핸들링 등으로 좋은 평을 얻었고,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국 잡지들을 보면서 ‘멋지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차 중 하나로 기억합니다. 물론 소규모 업체가 만든 차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품질 문제는 피하지 못했고, 다른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고질적 문제들이 판매의 발목을 잡고 수익성을 떨어뜨렸습니다. 결국 2004년에 TVR은 매각되고, 서베라의 생산은 중단됩니다.


#번외 – 기아 엘란

우리나라에서는 기아가 생산해 1996년에 출시되었지만, 오리지널 엘란(M100)은 로터스에 의해 1989년에 출시되었기 때문에 번외로 넣었습니다. 로터스가 주인이 바뀌며 라인업을 어쩔 수 없이 갈아엎을 때 기아그룹이 생산설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계열사 기아모텍을 통해 생산한 것이 기아 엘란이죠. 현대 티뷰론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면서 ‘국산 스포츠카’로서 주목받은 모델이기도 합니다.

로터스 설계와 혈통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엔진과 변속기, 브레이크 등 많은 부분을 기아 것으로 바꾸면서 일종의 혼혈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 기아 엘란입니다. 오리지널 엘란부터 장단점이 뚜렷한 차였는데, 현지화 과정에서 단점은 단점대로 뚜렷해졌으면서 장점은 희석되어버린, 안타까운 모델이기도 합니다.

기아는 엘란을 가져와 만들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막상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욕심부려 얻은 것들을 제대로 써먹거나 발전시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국내 시장도 엘란 같은 성격의 차를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고요(지금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만). 국내 출시 후 2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주변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걸 보면, 이렇게 개성 있는 차들의 생명력은 팬심을 얼마나 형성하느냐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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